오윤석 계원예술대학 교수

▲ 오윤석 계원예술대학 교수

[한국대학신문 천주연 기자]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전 서울시청 앞 광장 한 켠에 높이 5m의 거대한 청동 조형물이 등장했다. 1970~1980년대 사용된 스피커 200여 개를 청동으로 본을 떠 쌓아올린 김승영 작가의 작품인 ‘시민의 목소리’다.

이 조형물의 특징은 탑 안에서 다양한 소리가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빗소리, 새 소리, 전화 벨소리, 무전기 소리, 사람 목소리, 노랫소리 등 가짓수만도 50개가 넘는다. 10분 간격으로 같은 소리가 반복, 재생된다. 배경으로 사용된 다양한 소리는 사운드 디자이너인 오윤석 계원예술대학 교수(애니메이션과)가 채집, 편집했다. 여기에는 오 교수가 직접 작곡한 곡도 포함돼 있다.

“웃음소리, 흥얼거리는 소리, 대기 오염과 관련돼 의견을 표하는 말소리 등 다양한 목소리를 담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명확한 내용이 전달되는 건 피하려고 했어요. 여러 목소리가 겹쳐지게 했죠.”

이미 작업된 소리들만 흘러나와서는 작품에 한계가 있겠다고 판단한 오 교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바로 작품 앞에 마이크를 설치하는 것. 실제 그 앞을 지나다니는 누구든지 마이크에 대고 말을 하면 그 소리가 변형돼 이미 작업된 소리들과 섞여 나오도록 했다. 일종의 라이브인 셈이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했다.

최근 정치적인 상황 등을 통해 ‘소통’이 화두로 떠오른 탓인지 5900여 명이 참여한 시민 투표에서 서울시민들은 이 작품을 택했다. 때문에 오 교수는 이 작품에 최근 정치적인 상황이나 작년 촛불집회와 연관된 의도가 담겨 있느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다. 그래서인지 기자가 채 묻기도 전에 “아니다”고 답했다.

“개막식 날 기자들이 많이 왔었어요. 혹시 최근 정치적인 상황이나 작년 촛불집회와 연관된 작품 의도가 있느냐는 질문이 쇄도했죠. 그렇지 않아요. 본래적인 광장의 의미에 주목했을 뿐이에요. 광장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소에요. 그 부분에 포인트를 두고 작업을 했죠.”

사실 김승영 작가와의 협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 작가와의 인연은 약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김 작가가 자신이 만든 조형물에서 소리가 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오 교수를 찾아와 부탁했던 게 계기가 됐다. 그 후로도 두 사람은 여러 작업을 함께 해왔다. 1년 전에는 이번 작품과 비슷한 작업을 대구에서 한 적도 있었다. 오히려 그 경험이 이번 작업에서 소심하게 만든 점도 없지 않아 있다고 털어놨다.

“이번 작품과 유사한 작업을 1년 전 쯤 대구에서 했었어요. 현재도 대구 문화예술관 건물 앞 길거리에 설치 돼있죠. 당시 주민들로부터 민원이 발생했어요. 밤늦게 그 길을 지나가다가 어디선가 소리가 나는데 어디서 나는지 몰라 무서워서 그 길을 못 다니겠다는 민원이었어요. 조형물에서 나는 소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거죠. 결국 24시간 소리가 나던 것을 밤에는 작동하지 않도록 조치했어요. 이번 작업할 때는 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느라 소극적으로 되기도 했어요. 근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생각보다 반응이 나쁘진 않아서 좀 더 소리를 키워도 되겠다 싶어요.”

김 작가와의 만남은 오 교수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됐다. 사운드 디자이너라는 생소한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됐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사운드 디자이너의 매력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어느 책을 보니까 내가 보기 싫어도 보게 되는 시각과 달리 청각은 사람들이 취사선택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들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한텐 안 들릴 수 있다는 거죠. 그러나 소리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거든요. 예를 들어 사람들이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감동을 하고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은 음악이 해요. 이처럼 아주 큰 영향을 끼치는 미디어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의식하거나 인식하지 않아요. 앞에서 드러나지 않지만 사실은 굉장히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음지의 영역인 것이죠.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오 교수는 오래 전부터 김 작가와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을 스피커로 쌓아올려 만들어보자는 대규모 프로젝트도 구상 중이다. 그 안에서 세계 여러 나라 언어가 흘러나오도록 하자는 계획이다.

“꽤 오래된 아이디어인데 아직 실현을 못하고 있어요. 그야 말로 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기다리고 있죠.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목표 중 하나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생소한 사운드 디자이너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확대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사운드 디자이너는 여전히 희소하기도 하면서 이 분야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봐요. 다만 여러 미술관, 예술기관 등에서 이런 분야의 전시를 자꾸 기획해주는 등 사운드 디자이너들이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줘서 활성화 시켜줄 필요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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