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로 계명대 인문국제학대학 학장(코어사업 발전협의회 회장)

최근 인터넷과 뉴스를 지배하는 대표적인 용어는 4차 산업혁명이다. 한마디로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의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모바일, 로봇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경제, 사회 전반에 융합 및 연결되어 나타나는 혁신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작년 초 이세돌과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 사이에 벌어진 세기의 바둑 대결은 4차 산업혁명이 구체화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양면적이었는데, 한편으로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큰 충격이었다. 인간 이세돌이 분패했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겼다는 점이었다. 인간이 만든 기계가 그 창조자인 인간의 능력을 넘어섰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공지능의 개발자는 결국 인간이란 점이다. 개발자들이 얼마나 창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제품을 만들어 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 2’를 소개하면서 “테크놀로지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테크놀로지는 인문학과 함께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은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를 요구한다. 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학문이 바로 인문학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기술 등은 인문학적 사유에 바탕을 둔 창의적 인재가 개발한 것이지만,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선진국은 인문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창의력과 인간의 본질을 다루는 인문학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해왔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도 4차 산업혁명의 성공을 위해서는 과학기술과 함께 그 핵심기술에 근거하는 인문학적 자산이 뒷받침돼야 한다. 즉, 인문학이 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 서서 인문학적 관점으로 이를 주도해야 할 것이다.

최근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내년도 대학재정지원비가 삭감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아마 인문학 관련 지원사업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ACE사업, CK사업, CORE사업을 통해 인문학을 수강하는 학생들이 대폭 증가하고 있다. 인문학과 IT를 비롯한 공학,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융합전공이 개설돼 인문대 학생들이 창의융합능력을 갖춘 인재로 걸음을 내디디는 등 서서히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한 국내외 산학현장에서 학생들이 인턴 등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자신감도 키워가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인문학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거치면서 형성됐듯이, 우리의 인문학도 4차 산업혁명의 집결지인 기업과 산업현장에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철학자 들뢰즈는 ‘자기 무능력을 느끼는 순간이 사유의 시작’이라고 했다. 이제 우리는 사유를 시작할 때가 됐다. 학생들의 상상력, 감성 그리고 지성이 함께 작용해 사유하는 기술과 배움을 얻게 하는 인문학 교육이 시급하다. 4차 산업혁명의 바탕이 되는 인문학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라도 대학재정지원사업은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