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호(본지 논설위원 / 연성대학 교수)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지 3개월 남짓 지났지만, 예정에 없던 갑작스런 정권교체로 인해 분야에 따라서는 아직 정권교체 과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교육 분야도 그런 것 같다. 교육의 문제는 초등교육부터 고등교육까지 스펙트럼이 너무 광범위하고, 관련된 이해관계자들도 다양하기 때문에 정책적 결론에 도달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전문대학으로 대표되는 고등직업교육 분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고등직업교육 교부금 확보 등 고등직업교육 재정지원 확대, 고등직업교육의 컨트롤 타워 기능 수행을 위한 교육부 내 조직 위상의 강화 등이 이슈화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이슈는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다. 왜냐하면, 정권교체기를 맞아 새로운 국정과제를 설정하는 시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이기 때문이다. 이슈가 반복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책으로 실현되지 못하고 이슈로 그쳤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는 데에는 정책당국의 의지 부족이 한 몫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만 가지고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면이 있다.

최근 특성화전문대학발전협의회에서 주관한 북유럽 벤치마킹 연수에 참가했다. 핀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국가이며, 교육시스템과 학생의 학업성취도 또한 높기로 유명하다. 핀란드 제2의 도시 에스푸에 위치한 옴니아(OMNIA) 직업학교를 방문했다. 인문교육과 직업교육 간의 자유로운 이동성(mobility), 교육 단계에 따라 학위(degree)와 자격(certificate)이 잘 어우러진 국가적 역량체계(National Qualification Framework), 일과 학습이 생애주기에 걸쳐 병행되거나 순환되는 평생학습체계(Life-Long Learning) 등이 인상 깊었다. 스웨덴 도시 외레브로에 소재한 SKY 직업학교와 YH 스웨덴 고등직업교육청(Swedish Higher Vocational Education)을 벤치마킹했는데 지역노동위원회를 통한 지역 직업교육 수요의 적극적 반영, 지역 직업교육과정에 대한 엄격한 인증관리(인증률이 25%이며, 불인증 시 재정지원 전무)가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선진제도를 우리나라에 바로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핀란드나 스웨덴의 경우, 중등교육 단계에서 인문교육과 직업교육 중 진로를 결정하게 되는데, 반반 정도의 선호도를 보인다고 한다. 실질적으로 직업의 귀천이 없고 가스공, 배관공과 같은 기술직이 오히려 높은 대우를 받는 사회이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의 직업에 대한 인식은 이와 다르기 때문에 직업교육이 인문교육의 차선책 정도로 생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문교육과 직업교육 간의 원활한 이동성이 실현되기 힘들다. 전직(轉職)의 경우도 북유럽 국가들은 주당 근무시간이 짧고 실업급여제도가 잘돼 있어서 전직이나 경력개발을 위한 성인학습이 활성화돼 있으나 우리의 현실은 이와는 거리가 있다.

새로운 교육 정책이나 사업을 기획할 때, 해외 선진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회·문화적 환경이 다른 상황에서 해외사례의 직접 대입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결국, 교육의 문제는 사회·문화적 환경의 문제와 함께 풀어야 할 것이다. 최근 새 정부는 공공기관에서부터 블라인드 채용(능력중심채용)을 확산시키려 하고 있다. 이는 고용제도의 변화를 통해 학벌주의 풍토를 깨고 교육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의미한 기제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례가 교육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사회·문화적 제도 개선과 공감대 형성이 병행돼야 할 이유를 잘 말해주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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