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직 인하대 명예교수

▲ 서승직 인하대 명예교수

‘대학졸업장=실업증, 취업 9종 세트, 반값등록금보다 심각한 반값졸업장, 능력보다 학벌이 우선인 사회, 기술·기능의 멸시천대 풍조, 일자리 미스매치, 구직난(求職難) 속에 구인난(求人難)’ 등은 우리의 직업교육과 대학교육의 심각함을 대변하는 말이다. 이는 교육의 모든 것이 대학으로 통하는 만연한 대학만능주의와 혁신으로 포장한 포퓰리즘 교육정책의 부메랑이다. 2000년 통계가 작성된 이후 청년실업률 두 자릿수 기록과 청년 체감실업률이 최악의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는 역대 정부의 잘못된 교육정책의 반복이 쌓인 결과다. 특히 교육양극화 심화, 대학의 경쟁력 저하, 직업교육기관의 정체성 실종 등은 교육 백년대계를 간과해버린 포퓰리즘 정책이 망쳐놓은 한국 교육의 실상이다.

특성화고교는 산업인력 양성의 산실로 산업화의 기적을 이룩한 빈곤 탈출의 동력이었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학벌만능주의 추구로 ‘못사는 집 아이, 공부 못하는 아이가 가는 학교’라는 편견이 멸시·천대의 낙인(stigma)을 찍은 것이다. 이상론을 내세운 선진 직업교육제도가 학벌만능주의 타파에 주효하지 못한 것은 풍토를 고려하지 않은 조림사업처럼 실상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성과주의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기능올림픽 성과 뻥튀기’ 논란은 기능인의 자긍심에 상처를 준 기능한국의 수치일 뿐만 아니라 기능선진국 실현의 걸림돌이다. 기능올림픽은 지나친 성과주의의 기능강국보다는 특성화고교의 정체성을 회복시킬 기능선진국을 추구해야 한다. 기능선진국 실현은 산업인력 확보 등 일거다득의 국가경쟁력을 갖추는 일이지만 편견타파의 혁신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

고등직업교육인 전문대학이 강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안타깝다. 수업연한과 교명 자율화 그리고 학장을 총장으로 바꾸는 등의 변화를 했다지만 오히려 전문대학과 4년제 대학 간 갈등을 만들었다는 논란을 불러왔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창의적인 인재 육성을 외치면서도 정부의 재정적 지원에만 몰두한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기반의 획일적인 맞춤형 교육만을 추구하는 것은 전문대 강점을 스스로가 포기한 것이다. 절실한 것은 단기대학의 존재가치와 강점을 키울 수 있는 차별된 혁신이다. 4년제 대학 때문에 전문대 발전의 걸림돌이 됐다는 것과 전문대 때문에 특성화고가 직업교육의 완성학교가 되지 못했다는 관계자의 토로는 부인할 수 없는 정체성 실종의 방증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국력에 걸맞은 글로벌 대학이 없다. 4년제 대학은 취업을 위한 도토리 키 재기식의 스펙과 간판 취득기관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명문대 졸업생 64%가 A학점을 받고 대학문을 나서도 쓸 만한 인재가 없다는 기업의 목소리는 안타까운 대학 경쟁력의 실상이다. 현실로 다가온 학령인구 감소는 입학정원 1000명인 대학의 100개교가 문을 닫아야하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위기는 글로벌 대학으로 도약할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대학을 대학답게 생명을 불어넣는 혁신 없이는 불가능하다. 실업자가 될지언정 무조건 진학하는 대학만능주의의 풍토를 바꾸는 것은 실종된 직업교육의 정체성을 회복시키는 본질이기도 하다.

인재는 교육시스템의 차별된 수준에 준하는 인재만을 육성할 수 있을 뿐이다. 종지 같은 평범한 교육시스템에서 결코 항아리 같은 인재가 육성될 수 없다. 미래의 가치 있는 유·무형의 강점을 지닌 인재는 특성화고교, 전문대학, 4년제 대학이 각기 제대로 된 교육시스템을 갖추고 정체성을 회복할 때 육성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프런티어 개척에서 주역이 될 국가경쟁력의 핵심은 각 분야별·직능별 차별된 인재다.

새 정부에 바라는 것은 당장의 일자리 창출도 시급하지만 교육 백년대계의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혁신이 청년실업 해결의 본질임을 깨닫기 바란다. 국가경쟁력 제고는 물론 J노믹스 실현의 동력 또한 차별된 인재의 역량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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