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봉 대덕대학 교수협의회 공동대표 (사교련 이사)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 선고 하루 전 2017년 3월 9일, 교육부는 ‘2주기 대학 구조개혁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그 후 대학가에서는 대학 정체성 훼손, 대학 서열화, 일괄적 평가방식 및 지표설정, 교육 연구와 무관한 업무 폭증 등 1주기 때 드러난 총체적 부실이 반복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이의 중단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지난 8월 25일 교육부가 내놓은 것은 1주기 평가 틀을 그대로 유지한 채 일부 지표의 수정•보완에 그친 미봉책이었다. 고압적이고 일방적인 태도, 밀실기획에다 요식행위에 불과한 의견 수렴 같은 교육부의 고질적 행태도 변함이 없다. 새 정부 100일의 업적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유독 교육 분야에서만 인색한 연유를 이해할 수 있다.

대학구조개혁평가를 중지해야 하는 이유를 몇 가지 꼽아보자. 박근혜 정부는 학벌사회를 타파하고 능력중심사회를 구현하겠다고 했지만, 지금의 대학평가는 대학을 등급으로 서열화함으로써 학벌위주 사회문화를 더욱 공고히 했다. 교육부는 2013학년도 대비 2018학년도 입학정원 감축을 초과 달성했다고 자랑했지만 이는 주로 지방대 및 전문대의 정원 감축 결과였다. 자율개선대학 선정 시 권역별 균형을 고려하겠다고 하지만 교육여건 지표들은 절대값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어서 그저 대학의 순위를 정할 뿐이다.

또한, 평가지표들은 여전히 대학교육의 참다운 목적이나, 교육의 질을 평가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지난 정권에서 대학을 짓눌렀던 학생 충원율, 취업률 위주의 일률적 평가는 학생선호도라는 새 탈을 쓰고서 기초학문 소멸과 일반대와 전문대 간의 영역 파괴를 지속시킨다. 오죽했으면 지방대들이 할 수만 있으면 수도권으로 진출하겠다고 갖은 무리수를 동원하겠는가.

더욱 심각한 것은 대학들이 좋은 등급을 받으려고 온갖 편법과 부정한 방법들을 동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유력 인사들의 초청 특강에 열을 올리고 지표를 속이는 부정행위가 비일비재하다. 전임교원 확보율을 높이기 위해 정식 교수채용을 꺼리고 짧은 계약 기간과 낮은 임금의 비정규직 교원을 충원한다. 전임교원 강의담당 비율의 점수를 높게 받으려고 시간강사들을 강단에서 내쫓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이전 정부의 적폐정책을 연장한 평가로는 대학구조를 개혁할 수 없다. 평가의 결과적 피해를 학생과 교직원에게만 돌리고, 대학을 살리기 위해서는 부정행위도 마다않는 습성을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이 새 정부의 교육정책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자리 잡고 있다.

교육부는 2차 공청회를 준비할 것이 아니라 원점에서 대학정책을 재검토하고 대학과 고등교육의 공공성, 국가의 책무성을 강화하는 정책을 새롭게 제시해야 한다. 또한 학령인구가 감소하면 대학이 어려워진다는 발상을 바꿔야 한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면 오히려 국가의 고등교육재정에서 학생 1인당 지원액이 늘어나고,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줄어들며, 전임교원 확보율이 높아져 대학 교육의 질적 향상을 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러려면 재정지원이 뒤따라야 효과를 낼 수 있다. 더더욱 정부재정지원 사업에 대한 근본적이고 혁신적인 전환이 요구된다. 고등교육예산을 늘리면서 교육 공공성을 높이고 대학의 정체성과 자치를 정립하는 방향으로 재정이 활용되도록 사업의 방향을 재검토하고 재설계해야 한다. 대다수 OECD 국가에서는 정부 지원이 국립대는 50%를 넘고 있다.

한편으로는 지원만이 능사는 아니다. 혈세를 낭비하지 않도록 철저한 감사와 관리 감독이 요구된다. 특히 고등교육의 8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사립대의 부정비리부터 과감하게 척결해야 한다. 이것이 새 정부가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는 교육 적폐청산의 시작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사립학교법을 개정하고, 사립대학의 경영책임을 지고 있는 재단법인에 대한 평가를 일반대 전문대 구분 없이 전면 실시해야 한다. 재단 평가항목에는 이사회 운영, 재정 건전성, 법인 책무성 등이 필수 항목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의 공약처럼 장기적인 대학 개혁의 방향과 계획이 모색돼야 하고, 그 방향은 대학의 공공성을 확대‧강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교육부의 밀실기획과 일방적 추진이 아닌 교수와 교직원, 학생과 학부모 등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큰 틀의 사회적 논의를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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