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한 서울시립대 교무처장

한국 대학 학부교육의 개혁을 목적으로 한 ACE 사업이 2010년부터 실행되기 시작했으니 학부교육 개혁에 정부 주도의 드라이브가 걸린 지 어느덧 8년이 됐다. 2010년 이 사업 지원 계획서를 밤을 새워 쓸 때 필자의 기대와 풋풋함은 이제 어느덧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과 노련함으로 바뀌었다. 2010년 사업에 선정된 대학들이 첫 포럼을 열었을 때 여러 대학이 보여준 신선함은 이제는 원숙함으로 바뀌었고, 믿는 것은 패기밖에 없었던 엉뚱함은 이제 현실감으로 바뀌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학부교육 개혁의 측면에서 보자면 참 긍정적인 모습도 많았다. 각 대학에서 열리는 성과발표회에는 그 대학의 성취를 배우고 자신의 대학에 적용해보려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발표가 끝난 뒤 밀려드는 질문은 진정성으로 넘쳐났으니 말이다. 또한, 학부교육 개혁의 노하우는 카피레프트의 정신으로 다른 대학으로 금세 전파되어 회수를 넘은 탱자가 귤이 될 때도 빈번하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기 마련이다. 빛을 찾아 나선 학부교육 개혁의 모험가들은 어떤 그림자에 맞닥뜨리게 되었을까? 안 되는 것은 안 되고, 그래서 되는 것만이라도 되게 하려면 안 되는 것은 두고 갈 수 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 바로 이 그림자 일터이다. 무슨 말일까?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일까? 필자가 보는 것은 새로운 시도는 어떤 이들에게는 즐거움이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두려움이다. 자존감 강한 교수가 두려움을 갖는 순간 그 교수는 새로운 시도의 적극적인 반대자로 변하게 된다. 변화를 거부하는 여러 이유를 조리있게 밝히기는 그렇다. 하지만 다 안다. 변화가 두렵고 본인은 따라갈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또한 필자의 경험상 변화의 선도, 수용 혹은 거부는 능력의 차이라기보다 DNA 차이에서 비롯된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어두운 공간이 누구에게는 답답하고 퀴퀴하지만 누구에게는 한없이 아늑한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능력은 키울 수 있지만 DNA를 바꾸기란 불가능하기에 변화에 모든 이들을 동참시키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안 되는 것은 안 된다.

그럼 되는 것만 하면 되지 않을까? 이마저 그리 쉬운 대안은 아니라는 데 필자의 고민이 있다. 8년 간 학부교육 개혁 사업을 하면서 의지가 되는 동료를 많이 만났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고 계속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고 그 성과를 나누어왔던 동료들이다. 죽이 잘 맞아 좋았지만 그러다보니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멀리 와버렸다. 처음에는 같은 학문 전공자들이 비슷한 장소에 있었는데,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되는 것만이라도 일단 하자라는 생각으로 달려오다 보니 예전에 같이 있던 사람들이 이젠 까마득하게 보이지도 않게 됐다. 예전에 뭉쳐 있던 그룹이 이제는 길게 늘어져 버렸고 길게 늘어진 줄이 이러다 끊어져버릴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인문학 교육에 이런 것 접목하면 정말 재미있어요’, ‘학생들과 새로운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매우 흥미로워해요’, ‘그리 안 어려워요’, ‘워크숍 하는데 한 번 와보시죠’하며 끊임없이 대화는 시도하지만 대답없는 메아리가 되어 간다. 예전에 똑같이 책과 분필만 들고 수업하던 시절에 사이좋던 사람들이 이제는 불편해져만 간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정답은 없다. 다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조금씩 접점을 찾아가는 길이 현재로서는 유일하게 보이는 길이다. 전통적인 교육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동시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도 인정하면서, 그래서 학부교육에 정답은 없다는 것을 공유하고 다양한 교육이 학생들에게 득이 된다는 것을 인정해 간다면, 빛과 그림자가 확연히 구분되는 것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대학교수 임용하는 데 DNA를 조사하는 방법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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