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조 전문대교협 역량개발지원실장(동양미래대학 교수)

▲ 오상조 교수

호주는 우리나라에서 NCS(National Competency Standards)를 도입하면서 가장 많이 벤치마킹된 나라이다. 또한 고등직업교육을 논의할 때 선진사례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국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문화나 제도를 우리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힘들 듯, 호주의 고등단계 직업교육 체제를 우리의 시각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전문대학, 폴리텍, 심지어는 일반대학에서까지 형식상 또는 내용상 고등직업교육을 제공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호주의 복잡해 보이면서도 단순한 고등직업교육 체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본고에서는 호주에서의 고등단계 직업교육에 대해 개괄하고, 우리에게 주는 함의를 찾고자 한다.

고등학교 이후의 호주 교육은 직업교육(Vocational Education)과 고등교육(Higher Education)으로 구분된다. 대표적인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은 대부분 국립으로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는다. 한편, 대표적인 고등직업교육기관인 TAFE(Technical and Further Education)는 대부분 주정부의 지원을 받고 운영된다. 사립 고등교육기관이나 고등직업교육기관도 존재한다.

고등직업교육을 담당하는 기관들은 보통 RTO(Registered Training Organizations)라고 불리며 지정된 여건을 만족하고 고등직업교육 품질 인증을 담당하는 호주기술품질기구(Australian Skills Quality Authority, ASQA)로부터 인증을 받아 인가된다.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TAFE 역시 RTO 중의 하나이며, 고등직업교육은 인가만 거치면 누구나 제공할 수 있는, 완전히 개방된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Sandstone University 또는   Group of Eight 등으로 불리는 연구중심대학들을 제외한 일반 4년제 대학에서도 RTO로 인가받고 고등직업교육을 제공하는 경우도 흔하다. 또한 우리나라의 학원과 유사한 기관들도 RTO로 인가받고 고등직업교육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림 1>은 2014년 기준 호주 고등단계 직업교육 제공 기관별 학생 현황이다.

▲ <그림 1> 호주 고등단계 직업교육 제공 기관별 학생 수, (Source: National VET Provider Collection and National VET in Schools Collection, 2014)Trends in public and private VET provision: participation, finances, and outcomes 2014, 2016, NCVER에서 재인용

전체 학생 수가 약 400만 명에 달하는 것은 평생직업교육이 매우 활성화되어 25세 이상 성인학습자와 전일제가 아닌 파트타임 학생 들이 다수 포함된 이유로 볼 수 있다.

전체의 1/4 약간 넘는 학생이 TAFE에서, 절반이 넘는 학생이 사립 RTO를 통해서 교육·훈련받고 있다. 위 보고서에 의하면 TAFE는 전국에 57개가 있으며, 사립 RTO의 수는 2,577개, 일반대학을 포함한 기타 RTO의 수는 1,999개에 달한다. 기관 수 대비 학생 수로 볼 때 많은 수의 학생에게 고등직업교육을 제공하는 주요한 기관은 TAFE라고 볼 수 있다.

언급한대로 TAFE의 재정은 주정부가 담당하며, 따라서 주마다 TAFE 운영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고등직업교육기관, 즉, TAFE 등 RTO에서 해당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수한 경우, 학생들이 “자격(Qualification)”을 수여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학위(Degree)”를 수여할 수 있는 고등직업교육기관이 존재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호주기술품질기구의 고등직업교육 인증과는 또 다른 고등교육품질표준원(Tertiary Education Quality and Standards Agency, TEQSA)의 품질인증을 거쳐야 한다. 우리나라 전문대학의 전공심화과정과 유사한 이 제도는 학생들이 졸업 이전 많은 취업 제안을 받는 등 인기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여건 미비로 인해 아직 그 학생 수는 미미한 수준이다.

호주에서의 고등교육, 고등직업교육, 학위와 자격 등에 대해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AQF(Australian Qualifications Framework)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아래 표는 AQF 수준, 학위 및 자격, 해당 학위나 자격의 범주에 대해 나타내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전에 Level 1 이상의 자격을 수여할 수도 있으나, 일반적인 고등학교 졸업생은 Senior Secondary Certificate of Education을 받게 된다. 

고등직업교육을 제공하는 TAFE 등의 RTO에서는 Level 8까지 교육·훈련과정을 개설하고 자격을 줄 수 있으나, 원칙적으로 Level 7에 해당하는 학사(Bachelor Degree) 학위는 수여할 수 없다. 즉, TAFE 등의 고등직업교육기관에서는 자격을, 일반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에서는 학위를 수여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여기에 고등직업교육기관이 고등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인증(TEQSA)을 거친 경우이거나 고등교육기관이 고등직업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인증(ASQA)을 거친 경우 각각 학위나 자격을 수여할 수 있게 된다.

TAFE 등의 RTO에서 제공하는 고등직업교육 과정들은 모두 산업체에 의해 개발된 NCS로 이루어져 있다. 전문대학의 교육과정 개발 및 편성 권한을 인정하여 자체개발 능력단위 등을 허용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NCS 기반 교육과정과는 차별적으로 모든 교육·훈련과정은 국가가(때로는 주에서) 산업체의 요구를 받아 관리한다. 교육·훈련과정은 필수 및 선택 능력단위로 구성되어 있고, 능력단위요소, 수행준거, 수행준거에 대한 평가지침 등을 상세히 정의하고 있다. TAFE 등의 RTO에서는 능력단위의 수행준거를 교육·훈련하기 위해 각자 적절한 학습모듈을 개발해 사용한다. 교육·훈련과정을 거치고 수행 능력이 입증된 학생을 대상으로 각 기관에서 자격을 부여한다. 이 역시 우리나라에서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을 중심으로 시행 중에 있는 과정평가형 자격제도와는 다른 과정이수형 자격제도이다.

지금까지 호주 고등직업교육기관들, 학생, 교육·훈련과정, 자격 및 학위 등에 대해서 개괄하였다. 호주의 고등직업교육 제도는 우리와 다른 배경을 갖고 있고, 우리가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호주의 고등직업교육 제도를 통해 우리가 앞으로 가야하는 길에 대해 힌트를 얻을 수는 있다.

호주의 고등직업교육 체제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고등직업교육·훈련과정에 산업체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순수하게 산업체의 요구로 만들어진 NCS가 그렇고, 그것을 근간으로 이루어진 교육·훈련과정, 과정이수형 자격제도, 그리고 채용 과정이 그러하다. 요구사항을 교육·훈련과정에 반영하고, 이를 통해 길러진 인력을 채용하는 선순환 구조에 있다. 획일적인 교육에 대해 우려하는 시선도 있을 수 있지만, 표준적인 직무 수행 능력을 갖춘 인력 양성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고등직업교육 기관별 학습모듈 개발 활용 등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교육을 담보할 기제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어 보인다. 또한 필요한 경우 새로운 교육·훈련 과정을 등록할 수 있기 때문에 획일성에 대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

고등단계에서 직업교육과 일반 고등교육을 확연히 구분하고 각각의 요구사항을 따로 정의하고 있는 엄격한 품질관리 체제 역시 인상적이다. 수업연한으로 고등직업교육과 고등교육을 분류하지도 않고, 고등직업교육을 고등교육의 좀 모자란 아류로 여기지도 않는다. 각각의 교육 영역에 대한 적정 수준 이상에 대한 교육 품질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적정 교육 품질이 인정된 누구든 고등직업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구분이고 관리이다. 다양한 고등직업교육 제공자의 진입이 가능하다.

단순하고 효과적인, 그러면서도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호주의 고등직업교육 체제를 보면서 산업체와 학생의 요구 모두에 대응해야 하는 전문대학 입장에서 과연 잘 하고 있는가 하는 반성과 함께 잘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는가 하는 의문도 든다. 직업교육을 하는 일반대학. 수업연한으로 구분하는 고등교육과 고등직업교육. 다양한 수업연한이 요구되는 다양한 산업들. 4차산업혁명이라는 격변하는 시대의 요구들. 고등직업교육, 그리고 평생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무. 호주의 고등직업교육이 만병통치약은 아니겠지만, 산업체와 학생의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 최대한의 다양성을 포괄할 수 있는 체제 중 하나로 우리에게 많은 울림을 주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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