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신분 안정 악용한다는 편견 때문

교육공무원법 개정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 이혜숙 경상대 교수가 국회에서 열린 양성평등임용 확대를 위한 교육공무원법 개정 공청회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 이지희 기자)

[한국대학신문 이지희·장진희 기자] “현재 국공립대 여성 교원은 ‘토큰 여성(token woman)’에 비유할 수 있다. 남성사회에 형식적으로 여성 몇 명이 추가된 것에 불과하다.”

여성 교원 임용에 소극적인 국공립대의 임용 시스템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교육공무원법 개정 등 보다 구속력 있는 대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 해결을 위한 움직임도 적극적이다. 지난 1일 국회에서 ‘양성평등 임용 확대를 위한 교육공무원법 개정 공청회’가 개최됐다. 이날 공청회에 참가한 국공립대여교수연합회와 서울대 다양성위원회는 국공립대 여성 교원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국공립대 여성 교원 비율은 2016년 기준 15.3%에 그친다. 이는 사립대(25.2%)에 비해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대학에 다니는 여학생 비율이 약 43% 이르고, 여성 박사학위 취득자가 36%를 웃도는 현실에 비춰 봐도 국공립대 여성 교원 수는 이례적으로 적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국공립대 교수들은 국공립대가 공공기관으로서 여성 교원 채용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사립대보다 10%p가량 낮은 국공립대 여성 교원 비율에 대해 “국공립대 교수 사회가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공립대 교원은 사립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신분상의 안정이 보장된다. 전문가들은 여성 교원들이 이를 악용한다는 편견이 대학 사회에 만연해 있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편견이 여성들의 공정한 채용 기회를 박탈한다는 것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교육학)는 “국공립대 사회에는 여성들이 교원이 되면 출산 및 육아 등으로 일을 등한시 할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며 “실제로 국공립대 교수들은 한 번 임용이 되고 나면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당장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사립대에 비해 여성 교수 채용률이 낮다”고 비판했다.

애초에 국공립대 교수 사회가 남성중심적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교수 채용에 가장 큰 입김을 작용하는 학과 교수가 남성 집단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그 벽을 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김혜경 한국여성학회장(전북대 교수)은 "국공립대 교수 사회 자체가 가부장적이다. 성평등 가치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강고한 남성중심적 네트워크를 부수기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여성 교수들은 여성 교원의 비율을 높여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공통적으로 △학문의 다양성 확보 △수직적 학내 문화의 유연화 △학문 후속세대의 롤모델 역할 등을 꼽는다. 보다 다양한 시각을 가진 구성원이 유입돼야 학문 발전과 더불어 사회 발전까지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조은수 서울대 여교수회장(철학)은 “학문이라는 게 한 가지 답이 있는 게 아니지 않나. 다양한 시각을 넓히는데 학문의 다양성이 도움이 된다는 연구도 많이 있다”며 “지금 사회의 진행 방향이나 발전 방향이 남녀가 평등하게 조화돼 나가는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혜숙 경상대 교수(사회학)는 경직된 남성중심의 대학 문화를 꼬집었다. 이 교수는 “교수 갑질 문제도 크게 보면 남성 중심적인 군대문화로 형성된 분위기에서 오는 측면도 있다”며 “여성 교수들이 더 많이 교수 사회로 진출하게 되면 전반적인 대학 문화를 바꾸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정혜 서울대 다양성위원회 위원장(생명과학)은 “학과에 여학생 비율은 남학생과 비슷한데 이곳에서 배출하는 학문 후속세대에는 여성이 없어 이들과 너무나 동떨어지는 게 문제”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중도 포기하지 않는 전문적인 여학생을 학문 후속세대로 길러내는데도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가장 근본적인 대안으로 제시되는 방안은 교육공무원법 개정이다. 2003년 김대중 정부가 실시한 국공립대 여교수 채용 할당제로 당시 국공립대의 여성 교수의 채용이 증가했지만, 정책 수준에 그쳐 이후에는 유명무실해졌다. 법 개정을 통해 보다 구속력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현행 교육공무원법 제11조5에는 “양성평등을 위한 임용을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대학의 교원 임용에서 양성평등을 위해 필요한 정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고 구속력도 미미하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교육공무원법을 개정해 구속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대학 교원을 임용할 때 특정 성별에 편중되지 않도록 목표 비율이 제시된 임용계획을 수립하고, 그 추진 실적을 매년 교육부 장관에게 제출하도록 개정해야 한다”며 “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대학의 추진 실적을 평가해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바꿀 것”을 제안했다.

교육부에서도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양성평등 우수대학에 여성 교원을 추가 배치하는 조치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방법만으로는 대학 내 양성평등추진위원회를 제대로 작동시킬 수 있는 기반이 미약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혜숙 교수는 “각 대학별로 양성평등추진위원회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이 위원회의 활동으로 인한 패널티도 인센티브도 뚜렷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산대가 지난해 우수대학으로 선정됐음에도 여성 교원 1명을 더 배치 받았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 공청회를 주최한 오세정 의원 측은 양성평등 임용에 관련한 법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 의원실 측은 “아직 법안 발의를 한 것은 아니다”며 “현재 오세정 의원이 대표 발의를 하기 위해 동료 의원들의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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