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영 서강대 로욜라도서관 수서정리팀 부장

▲ 정재영 서강대 로욜라도서관 수서정리팀 부장

늦은 저녁 시간 입학팀장의 전화를 받았다. 논술시험문제를 출제하기 위해 급하게 도서관에 있는 책이 필요한데 찾아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11시가 넘은 시간이라 집이 학교 근처에 있는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라며 미안하다는 말과 부탁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 시간에 전화를 한 걸 보면 꽤나 급한 일인 것 같아 마다할 수 없어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입학팀에 들러 책 리스트를 받아들고 아무도 없는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코끝으로 진한 책 향기가 밀려 들어왔다. 서로 어우러진 수많은 책들의 향기가 나로 하여금 말할 수 없이 평온한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모든 책은 저마다 고유한 향기를 갖고 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에서 주인공 그루누이가 가졌던 절대 후각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서관이나 서점을 자주 방문하거나 누워서 책을 읽다 얼굴에 책을 대어 본 사람은 책에 향기가 있다는 말에 동의할 것이다. 특히, 오랜 세월이 지난 책일수록 술이 발효해가듯 잘 익고 숙성된 향기를 발산한다. 혹자는 책 먼지와 곰팡이가 섞인 냄새라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하지만, 수십 년을 맡아 왔는데도 멀쩡하고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걸 보면 책의 향기는 분명 치유의 힘을 갖고 있다. 숨을 들이키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지혜가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만 같고, 서가 사이를 거닐 때면 수많은 향수를 소유한 부자가 된 느낌이다.

기원전 3세기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시대에 세워진 알렉산드리아도서관 입구에는 ‘영혼을 치유하는 곳’ 이라고 쓰여 진 현판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야 말로 그 시대 사람들에게 도서관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말해준다. 전자 자료가 넘쳐나는 디지털시대에 웬 종이책이냐고, 집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치면 수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왜 도서관을 가야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도서관은 당신의 상처 난 마음과 피폐해진 영혼을 치유하는 곳’ 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최근 방학기간을 이용해 1박 2일 밤샘 캠프 행사를 하는 도서관들이 생겨나고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토론하거나 저자와의 대화 또는 시낭송을 하기도 하고, 때론 조용히 눈을 감고 책향기를 맡으며 사색하거나 숲속을 산책하듯 책으로 가득 찬 서가를 거닐기도 한다. 숲속에서 힐링 프로그램을 통해 몸의 건강을 회복하듯, 삭막한 세상으로 부터 받은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이 방법만한 것이 없어 보인다. 책 향기가 흐르는 ‘천년 지혜의 숲’ 도서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치유를 경험했으면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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