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최초 신입생 전원 대상 ‘통일’ 교양 필수 교과목 개설

통일한국세움재단 출범해 통일운동 저변 확대

▲ 숭실통일리더십스쿨 분단현장 탐방

[한국대학신문 이현진 기자] 숭실대는 ‘진리와 봉사’의 건학 이념을 바탕으로 ‘함께·같이’ 더불어 사는 리더를 양성해 왔다. 우리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는 인재, 그늘진 곳을 밝히는 리더십이 숭실이 생각하는 진정한 가치이다. 숭실대가 다른 대학이 하지 않았던 파격적인 통일교육에 앞장서며 한민족의 화합을 도모하고 있다.

세계 유일 이산대학인 숭실대는 통일교육을 기존 교육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구축하고 있다. 체계적인 연구기관 설립, 교육행정 운영, 전공트랙 개설 등을 통해 남·북한의 진정한 통합과 상생을 연구하고 제안한다. 숭실대의 가장 중요한 소명은 통일시대의 주역인 학생들이 창의적 리더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2014년 숭실대는 대학 최초로 신입생 전원을 대상으로 한 교양 필수 교과목인 ‘한반도평화와통일’ 과목을 개설했다. 이후, 민간분야 국내 최초 통일교육 전문 연수원인 숭실통일리더십연수원(문경 소재)을 개원하고 2015년부터는 교과목 연계활동으로 3박4일간의 합숙캠프인 ‘숭실통일리더십스쿨’을 실시했다.

숭실통일리더십스쿨을 주관하는 베어드학부대학은 기존 통일교육과는 다른 창의적인 커리큘럼을 개발했다. 온라인 수업을 듣고 현장학습에 참가한 학생들은 3박4일 동안 △통일전망대 탐방 △북한 문화 토크 콘서트 △북한 변화와 통일 한국의 시민상 △통일시대 나의 전공 △숭실의 역사와 통일 등의 수업과정을 거치며 현실적인 통일 방안을 고민하게 된다.

숭실대는 앞으로 이 통일교육 프로그램을 심도 있게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숭실대 학생뿐만 아니라 청년 및 디아스포라 한국인을 포함해 전 국민이 통일 리더십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할 예정이다. 숭실대가 기대하는 통일교육의 방향은 교육과 연구, 그리고 인식운동으로 확대되는 범국민적 교육이다.

숭실대는 2016년 학부과정에 ‘통일외교 및 개발협력 융합전공’을, 일반대학원 석·박사 과정에는 ‘기독교통일지도자학과’를 개설해 통일분야 전문가 양성과 통일 교육 심화과정 운영에 힘을 쏟고 있다.

융합전공인 통일외교 및 개발협력은 남북관계 관리와 통일 외교 전략을 구성하고 북한 및 제3세계 개발 협력을 양성한다. 정치외교학과에서 주관하며 사회복지학부, 행정학부, 정보사회학과, 언론홍보학과, 평생교육학과가 협력하고 있다. 기독교통일지도자학 석·박사 과정은 기독교학과, 행정학과, 법학과 등의 협력과정이다. 기독교학과에서 기본 이념을 세우고 그 가치와 이념 위에 통일과 통합의 제도적 기반을 행정학과, 법학과, 경제학과 등에서 제공한다.

연구분야에서는 숭실평화통일연구원이 주도적으로 분단문제와 각종 통일 관련 사회문제에 지속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 숭실대는 더 나아가 통일운동에 대한 기반확충과 저변확대를 위해 (재)통일한국세움재단(이사장 신대용)을 출범시켰다. (재)통일한국세움재단은 남북 평화통일에 관련한 연구와 교육을 후원하는 각종 사업을 수행한다. 세부 사업으로는 △숭실평화통일연구원 연구활동 △학술교류 및 국제 세미나 지원 △국내·외 청년 통일 교육 사업 등이 있다.

숭실대는 지난해 3월 통일부 선정 ‘통일교육 선도대학’으로 지정돼 연간 4억원 가량의 지원금을 최대 4년 사업기간 동안 받게 됐다. 숭실대는 ‘함께·같이’ 통일 담론을 만들며 통일시대의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고, 국내·외 통일교육을 담당하는 핵심 기관으로 인정받았다.

2014
국내 대학 최초 통일부와 MOU 체결
교양 필수 교과목 ‘한반도 평화와 통일’ 개설
통일 연구와 정책을 연구하는 숭실평화통일연구원 개원
통일 현장교육을 전담하는 숭실통일리더십연수원 개원

2015
‘한반도 평화와 통일’ 현장학습 숭실통일리더십스쿨 운영
통일 연구와 교육을 지원하는 (재)통일한국세움재단 발족
한국 교계와 통일교육비전을 공유하는 MOU 체결

2016
학부_ 통일외교 및 개발협력 융합전공 개설
대학원_ 기독교통일지도자학과 석·박사과정 개설
통일부 주관 통일교육 선도대학 선정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이야기>
숭실과 함께한 반세기… 사회교육 의무 충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은 1967년에 개관해 올해로 만 50주년을 맞이했다. 설립자인 고(故) 매산(梅山) 김양선(金良善) 관장이 최초의 사립 박물관 개관을 준비한 1946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그 역사는 70년이 넘는다.

한국기독교박물관의 전통은 매산 김양선 관장으로부터 시작된다. 매산은 1907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출생했다. 1926년 평양 숭실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해 1934년 졸업했다. 재학시절 비밀결사조직인 청구회(靑丘會)를 조직해 항일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이로 인해 여러 차례 옥고를 치러야 했다. 그의 이러한 헌신은 지난 8월 15일 독립유공자 ‘건국포장’으로 빛을 봤다. 매산은 개신교 목사이자 고고학 교수라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학문적으로 기독교, 고고학, 실학 등 다방면에 많은 연구업적을 남겼다. 그 바탕에는 일제강점기부터 수집한 다량의 우리 문화재가 있다.

▲ 남산박물관(1948)

매산은 일제 강점기부터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면서 박물관 건립의 꿈을 키웠다. 이러한 그의 소명 의식은 1946년 4월 16일 남산박물관(1946∼1950 : 기독교박물관 및 매산고고관)으로 결실을 맺었다. 남산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이자 종교박물관이었다. 특히 박물관 건립에는 천주교는 물론 개신교의 모든 교파, 기독교 재단에서 설립한 학교 등 기독교 관련 단체들이 모두 참여했다.

매산이 박물관 유물을 생명과 같이 생각한 데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 있다. 해방 이후 평양에 모아 놓은 유물을 서울로 옮겨오는 도중 부인 한필려 여사와 딸 경숙이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매산은 이 사건을 평생 동안 가슴에 슬픔으로 묻고 살았다. 따라서 유물을 자식과 같이 아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우여곡절 속에 개관한 남산박물관은 6·25 전쟁으로 인해 문을 닫아야만 했다. 피난을 떠나면서 매산은 모든 유물을 포장해 땅 속에 숨겼다. 전쟁 후 돌아와 보니 건물은 모두 폐허가 돼 있었고, 유물이 휴지가 돼 버린 것이 1310여 점에 이르렀다. 이를 본 매산은 데굴데굴 구르면 슬퍼했다고 한다.

박물관의 재건 노력은 전쟁 직후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그리고 드디어 1954년 3월 1일 남산에 해방기념기독교박물관(1954∼1958)을 재건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당시 한국은 전쟁으로 인한 폐허 속에 많은 국민들이 상실감으로 희망을 찾지 못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민족적 자부심과 용기를 불어넣은 유일한 장소가 한국기독교박물관이다.

그러나 1958년 1월 20일 남산의 박물관터가 국회의사당 신축부지로 선정됨에 따라 박물관은 다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지금의 신길동 자택(1959∼1963)에 모든 유물을 옮겨와서 임시 박물관 형태로 운영했다. 1964년 12월부터는 숭실대학의 대학본관(1964∼1966)에 임시 전시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1967년 7월 21일 드디어 매산은 평생 동안 수집한 유물을 모교인 숭실대에 기증함으로써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의 시대를 연다. 매산의 숭고한 기증 정신은 기증식 당시 그가 남긴 말에 잘 남아 있다.

“이 일을 위해 나는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여기에 전시된 모든 것들은 내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의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저로 하여금 이 일을 하도록 하신 것뿐 이지요”

▲ 웨스트민스터 채플 박물관(1967)

박물관의 공식 개관일은 1967년 10월 10일이다. 숭실 창학 70주년 기념식과 동시에 박물관 개관식이 거행됐다. 당시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1층에 전시실을 마련해 박물관을 운영했다(1967∼1975).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대학박물관으로서 기능을 다하기 시작했다. 특히 유물분류, 유물대장, 유물카드 등을 체계적으로 작성해 근대적인 박물관 관리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정착시켰다. 이 시기는 한국기독교박물관의 내실을 다지는 시기였다. 매산은 단독박물관 건립을 보지 못하고 1970년 10월 11일 영원히 숭실의 품에 잠들었다. 이후 박물관의 운영은 그의 제자인 고(故) 임병태(林炳泰) 관장에게 맡겨졌다.

▲ 단독박물관(1976)

1976년 1월 19일 드디어 단독박물관(1976∼2003)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단독박물관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박물관의 외연을 넓히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임병태 관장 주도하에 전국의 매장문화재 발굴조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한국고고학회(舊 한국고고학연구회) 창설에 깊이 관여하는 등 고고학 분야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기 시작한다.

이와 더불어 다양한 전시회 개최 및 유물 출품을 통해 국내 뿐 아니라 해외까지 한국기독교박물관의 이름을 폭넓게 알렸다. 임병태 교수는 1995년 안타깝게도 연구 활동 중 과로에 의한 뇌출혈로 소천하게 된다. 박물관 운영은 다시 그의 제자인 최병현(崔秉鉉) 관장에게 넘겨졌다. 이후 많은 우여곡절 끝에 2004년 4월 8일 지금의 박물관으로 신축 이전 하면서 새로운 박물관의 시대를 열게 된다.

한국기독교박물관은 숭실과 함께한 반세기에 더해 이제 함께할 반세기를 준비하고 있다. 매산이 처음 품었던 박물관의 꿈을 소중히 여기며 한국기독교박물관은 사회교육기관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특히 숭실 구성원,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한다.

한국기독교박물관은 개관 50주년을 맞아 오는 9월 28일 오후2시 박물관이 걸어온 발자취를 조명하는 특별전 <숭실 품안에서의 반세기, 한국기독교박물관>을 개최한다.

숭실대는 “올해는 숭실이 창학한 지 120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기도 해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며 “전시회에는 해방 이후 처음 건립된 남산박물관 자료부터 지금의 신축박물관에 이르는 자료를 시기별로 정리하여 숭실의 품안에서 자란 한국기독교박물관의 반세기를 조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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