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래 단국대 교수(도시지역계획학)

[한국대학신문 이지희 기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도시적 동물’은 도시의 정치를 통해 포용과 공존, 행복을 추구하는 내면의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도시 밖 사람들을 야만인이라 불렀죠.”

최근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린 장애 아동의 어머니 사진 한 장이 엄청난 파장을 가져왔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도시적 동물과 야만인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는 지난 2000년의 도시 역사에서 문명과 문화가 퇴행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시, 그리고 주거는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주택이나 집의 개념으로 보면 끊임없는 논쟁이 생겨요. 내 것, 내 소유, 곧 모든 게 돈으로 귀결되죠. 재개발, 뉴타운 등이 다 그런 논리에서 시작 돼 사람을 가르고 구분하게 돼요. 결국 이 논리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사람은 도시에서 배제되는 거죠.”

조명래 교수는 부동산과 주거 이슈에 대해 가장 활발하게 의견을 내는 학자 중 한 명이다. 특히 도시에서 발현되는 인간의 이기심을 강하게 질타한다. 조 교수는 강서구 주민들의 특수학교 설립 반대가 대학가 주변 주민들의 기숙사 반대 움직임과 궤를 같이 한다고 봤다. 대학과 지역사회가 분리돼 있고 이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면적이 넓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그 접점을 찾아야 지금과 같은 갈등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조 교수는 말한다.

“이기적 시민이 아니라 공공에 맡겨야 해요. 여기서 공공은 정부와 같은 ‘관’뿐만 아니라 재산의 주체에 시민사회든 공동체 등 구성원을 대표하는 공공성이 담보 돼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임대주택은 그런 공공성을 반영한 정책이다. “건설을 하는 기업형 임대주택이 아니어도 임대주택이 가능해요. 새로 집을 짓지 않고, 정부나 지자체가 집을 사거나 빌려서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면 되죠. 그게 바로 다품종 임대주택 방식입니다.”

그러나 임대주택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초등생의 입에서도 ‘휴거(휴먼시아 거지,·임대아파트 거주자들을 비하하는 신조어)’라는 단어가 오르내리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조명래 교수는 "한국의 주거정책은 임대차 관계를 방치하고 있습니다. 헌법이나 민법에는 국가가 세입자 권리를 보호하도록 돼 있어요. 이를 현실 제도로 끌어와야 합니다.” 집 주인의 권리에 힘이 실려 있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조언이다.

“아직까지도 사람들은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한 관심이나 의미를 모르는 것 같아요. 하지만 분명한 건 헌법 23조에도 재산권에 관한 규정이 있습니다. 헌법은 재산권 보호를 보장해준다고 돼 있지만 재산권 행사는 공공복리에 맞도록 헌법에 규정하고 있어요. 정부가 임대주택을 지을 때, 특수학교처럼 공공시설을 지을 때 사람들은 재산권 침해를 쉽게 얘기하지만 헌법에 따르면 재산권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이처럼 철학과 도시, 법과 환경 문제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조명래 교수에게 도시와 환경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그는 사단법인 환경정의의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가 말한 거주의 개념은 건축하기, 거주하기, 존재하기로 구분됩니다. 무언가를 짓는다는 것은 자연과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이고, 이건 환경을 훼손하는 게 아니라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것을 뜻해요. 과거 우리의 주거 방식을 보세요. 초가집 재료는 자연에서 왔거든요. 지붕의 모습은 산세와 비슷하죠. 기와집도 마찬가지에요. 여기엔 상생의 가치가 들어 있습니다.”

그가 현대의 도시역사는 퇴행했다고 평가하는 배경이다. 그런 조 교수가 꿈꾸는 미래 도시, 미래 환경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진보도시’를 언급했다.

“산업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를 진보도시라고 표현합니다. 사람이 중심이 된 도시를 위해 포용과 분배적 정의, 행복을 실현하는 도시라고 할 수 있죠. 4~5년째 싱가포르 교수들과 이 이론을 발전시키는 연구를 하고 있어요.”

과거 도시와 농촌을 비교하던 불평등의 규모는 이제 강남과 강남을 제외한 서울을 비교하고, 내가 사는 동네와 옆 동네를 비교하며 그 범위를 좁혀가고 있다. 조 교수는 이를 ‘도시의 밀도가 높아졌다’고 묘사한다.

“밀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도시 시민이 점차 개인화되고 파편화 된다는 의미거든요. 여기서 바로 도시 소외의 문제가 비롯됩니다. 이 때문에 포용력과 상생이 더 필요해요.”

조명래 교수가 말하는 행복한 도시, 진보도시는 언제쯤 가능해질까. 그래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그의 소회에는 희망이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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