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 서정대학교 교수(산학협력단장)

▲ 조훈 서정대학교 교수

2001년 시카고대에서 행동경제학의 대가이자 우리에게 넛지(Nudge)와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의 저자로 알려진 리처드 탈러 교수의 '의사결정론'을 수강한 적이 있다. 탈러교수의 첫 수업은 인상적이었다. A와 B팀으로 나누어 몇 가지 설문조사를 하고 수업에서 바로 설문결과를 갖고 케이스 수업을 진행하는 형식이었다. 그가 첫 수업에서 반복적으로 이야기 한 단어는 ‘휴리스틱(Heuristics)’이었다. 휴리스틱을 우리말로 하면 ‘의사결정을 할 때 기준이 되는 가장 중요한 잣대’ 또는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하지 않고 심리적 편의에 따라 결정하는 편향성’정도로 이해되는 단어이다. 사람들이 갖는 휴리스틱에는 ‘대표성 휴리스틱’이 있다. 20대 80을 정의한 파레토법칙에서 마케팅의 80%는 상위20%에서 나오니 ‘대표성을 가진 20%에 집중한다‘라는 전략적 행동 같은 것이 그것이다.

중요한 교육정책을 결정하는 정부 관료나 정치인이 가지고 있는 ‘대표성 휴리스틱’은 얼마나 될까? 그들이 대학정책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때 판단의 준거는 객관적인 지표일까? 아니면 심리적 편의성에 근거한 것일까? 아쉽게도 많은 부분에서 그들은 ‘대표성 휴리스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전체 대학졸업자의 35%를 차지하는 전문대학에 전체 고등교육예산의 6.5%만을 주면서 국가가 함께 담당해야 할 고등직업교육을 전문대학이 담당하라는 발상이나, 일반대학 졸업자의 30% 이상이 하향 취업을 하고, 지난 5년간 4년제 졸업자의 6759명이 전문대학을 다시 진학하는 모순된 지표 속에서도 여전히 교육정책은 현실과 괴리된 일반대학 중심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교육 관료나 정치인들의 눈에 대학은 여전히 일반대학-전문대학의 서열화 구조 속에서 각각의 교육기관이 담당해야할 본질적인 역할에 대한 고민보다는 이미 고착화되어버린 ‘대표성 휴리스틱’이 정책 판단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대선전부터 최근까지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와 한국고등직업교육학회, 고등직업교육혁신운동본부에서는 이러한 전문대학에 대한 편향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수차례 포럼과 정책간담회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객관적인 수치에 의한 공정한 의사결정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별 효과가 없는 것 같다. 이러한 노력 역시 교육관료나 정치인들에게는 ‘우는 아이 젖 주는 문제’정도로 밖에 인식이 되지 않는 것 같다.

탈러 교수의 ‘넛지’에 실린 ‘암스테르담공항 남자 소변기의 파리 한 마리 그림’을 기억한다. 소변기 밖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려놓은 소변기의 파리 한 마리가 소변기 밖으로 소변이 튀는 것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을 말한다. 탈러교수가 강조한 넛지 전략은 ‘직접적인 화법보다는 옆구리를 슬쩍 찌르면서 마음을 바꾸게 하는 전략’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전문대학이 처한 차별적 현실에 대해 객관적인 수치를 보여주면서 이를 제도적으로 개선해 달라고 교육당국과 정부 부처에 호소하는 전문대학의 전략은 여전히 하수로 보인다.

보다 한 수 위의 전략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과 인구 고령화로 인한 구조적 실업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대부분의 OECD국가에서도 ‘청년취업 완전고용’이라는 과업을 씩씩하게 달성하고 있는 독일과 일본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크다. 제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2010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독일의 인더스트리 4.0과 일본의 중소제조업 기반의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직업교육은 미래 변화를 준비하면서도 공유경제와 경제민주화의 건강한 경제체제를 구축하는 데 큰 기반이 되고 있다.

전문대학은 독일식 인더스트리 4.0과 일본식 경쟁력 있는 중소제조업 기반을 만드는 데 중요한 팜(Farm)이 된다. 한국사회가 보다 건강한 경제로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정권이 바뀔 때 마다 포장지를 바꾸어 가면서 똑같은 대학과 4년제 대학 중심의 재정지원이 아니라 당면한 청년실업의 미스매치를 해소하기 위한 산학협력을 통한 중소제조업 지원과 중소기업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방향으로 교육재정의 물꼬가 바뀌어야 한다.

인식의 변화 없이 패러다임 변화를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 하다. 전문대학에 가지고 있던 ‘대표성 휴리스틱’을 바꾸어야 한다. 정부 관료와 정치인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전문대학은 끊임없이 옆구리를 살짝 찔러가면서 변화를 유도하는 노련한 넛지 전략을 구사해야한다. 숫자로 들이밀 것이 아니라 현상으로 이해하게 끔 유도해야 한다. 그래야 바뀐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