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성(본지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교수·생명공학)

대학입시에서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는 학생부 전형에서 자기소개서는 학생이 자신의 잠재력을 피력할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 그런데, 모든 대학이 자기소개서에는 반드시 3가지 공통 항목을 꼭 적도록 하고 있다. 학생은 자신의 학습 경험, 교내 활동, 그리고 배려·협력 등 사회성 또는 인성, 이 세 가지에 대해 각각을 1000자, 1500자 1000자 이내로 작성해야 한다. 무엇(만)을 써야 할지를 상세하게, 그것도 글자 수까지 정해 지시하고 있다. 또, 소개할 수 있는 내용은 철저히 교내활동 또는 학교장이 허락하여 참여한 활동으로 제한하고 있다. 워낙 치열한 상황에서 소모적인 경쟁을 줄이고 또, 같은 내용을 여러 개 다른 양식으로 써내야 하는 수험생의 수고를 덜어주려는 의도가 이해는 되지만, 자기소개서를 무엇에 관해서만 쓰라고 지정하는 일이 내게만 황당하게 여겨지는 것일까?

사실 자기소개서에서 지정하고 있는 3가지 항목은 크게 보면 교사들이 작성한 학생부 내용 전부이기도 하다. 입학사정관들이 학생부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자기소개서를 또 읽어야 하는 것은 수많은 지원자를 평가해야 하는 상황에서 매우 비효율적인 일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 학생들에게 폐해를 준다는 점이다. 왜 학생들은 자신의 능력과 잠재력을 과시할 소중한 기회를 학생부에 이미 드러나 있는 내용을 재탕해 말하는 것으로 소진해야 하는가? 한 사람의 능력과 소질을 파악하고 평가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스스로에 관해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일진대, 이렇게 천편일률적인 틀로 글을 쓰도록 하는 것이 타당한가? 평가자 입장에서 정해진 틀 안에서 자기소개를 하도록 해 비교평가가 쉽게 이뤄지게 하자는 계산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더욱 큰 문제가 있다. 이러한 학생부와 자기소개서 지침 때문에 공부도, 동아리 활동도, 봉사활동도 모두 잘해야 하는 것으로 고등학교 생활이 정형화돼버린다는 점이다.

바람직한 학교생활이란 것이 이런 것들로 구성돼 있으니까 학생부는 그렇게 작성되는 것이 바르다고 치자. 그러나 학교에서 제공하는 기회 내에서 얼마나 남과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서 나만의 독창성을 만들고 창의적인 생각을 해내겠는가? 안 그래도 지금 아이들은 공부라는 감옥 안에서 살고 있는데 굳이 자기소개도 이 틀 안에서만 하라고 해야 하나? 사교육이나 경제력이 동반되지 않아도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 아이들은 기성세대가 상상도 못 하는 생각을 하고 문화를 만들고 있지 않은가? 아이들이 즐기고 추구하는 삶을 얼마나 잘 알고 있기에 교실 안에서의 학습과 학교 안에서의 활동만으로 아이를 평가할 수 있다고 예단하는 것인가? 내버려 둔다면, 게임을 좋아하는 어떤 아이는 자기가 게임에 대해서 얼마나 큰 열정을 갖고 있고, 게임이 우리 삶에 어떻게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해 설득하는 자기소개서를 쓸 것이다. 시외버스를 타고 전국을 일주하면서 각 고장의 특징을 찾아서 블로그에 올린 학생은 자신이 계획하고 경험한 이 여행에 대한 이야기로 자기소개서를 도배할 수도 있다. 여행을 통해서 자신이 국토를 얼마나 사랑하게 됐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교과목에 대한 자기학습을 얼마나 잘 했는지를 얘기하는 것보다 자신의 능력과 사고를 100배는 더 잘 피력할 수 있다. 또, 교실에서 왕따를 당한 아이가 어떤 희망을 품고 교실 생활을 해냈고 또 어떤 전공을 갈망할 수 있게 됐는지에 대해 기술했다면, 이 아이의 자기관리 능력과 의지는 어떠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분명, 지금의 자기소개서는 아이들이 자신을 훨씬 잘 소개하고, 또, 소개할 자신을 훨씬 잘 준비할 수 있는 길을 막고 있다. 이 문제는 이들의 대학과 사회생활에도 연계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정해진 글을 쓰고 생각하도록 지시받는 일, 즉, 피동적 사고와 선택의 경험이 제한된 틀 안에서만 사고하고 안주하고자 하는 좁은 비전의 청년을 탄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소개하도록 하는 것이 지금 청년들이 너나 나나 눈에 보이는 직업에만 목을 매고 취업하려 달려드는 현상의 원인은 아닐지라도 결코 이에 바람직하게 작용치는 않을 것은 분명하다. 과다한 입시경쟁의 폐해로 생겨난 괴물이지만 그가 일으키는 희생이 너무 크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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