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실 (본지 논설위원/ 교육정책학자,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근래 들어 일상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에 버금가게 많이 쓰이는 신조어가 ‘NATO’이다. 실천하지 않고 말만 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비판은 20년 전 외환위기 때 해외 컨설팅사가 한국은 스스로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나,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빗대어 만들어 낸 말이다. 이러한 성향은 교육정책 연구에서도 나타난다. 우리나라 교육정책 연구 대다수는 정책 입안이나 의사결정에 대한 것으로 도입된 정책의 집행이나 안착을 주제로 한 연구는 드물다. 새로운 정책이 구안돼 일단 도입되기만 하면 그 정책에 대한 관심은 정권 차원에서 특별히 밀지 않는 한 급격하게 사그라진다. 한마디로 한국의 2차 산업화시대 남성들이 아이를 낳기만 하고 기르지 못했듯이, 우리 교육계도 정책을 낳기만 하고 기르지 않는 관행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공표된 세계경제포럼의 국가경쟁력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2007년 11위를 정점으로 지난 10년간 지속 하락해 4년째 26위에 머무르고 있다. 반면 중국은 35위에서 27위로 우리를 바짝 추격해 턱밑까지 와 있다. 중국은 10년 전 24순위라는 커다란 국가경쟁력 격차를 우리가 말만 하고 있는 와중에 1단계 오차범위 내 미세한 차이로 좁혀버렸다. 물론 기대치가 높은 한국 설문응답자들의 야박한 답변이 국가경쟁력 순위를 끌어내리는데 일조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는 서구 선진국을 중심으로 18세기 중반 이후부터 추진해온 1-2차 산업혁명을 20세기 중반에 들어서 축약적으로 따라잡으면서 빠른 추격자로서 괄목할만한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우리가 빠른 추격자의 면모를 보이는 사이 선발국들은 정보통신기술과 신소재 및 생명공학의 획기적 발전을 주도했고, 이러한 국면에서 벼락치기 산업화의 폐해를 뼈저리게 체감한 한국은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특유의 ‘빨리 빨리 정신’에 시동을 걸어 2012년 세계에서 7번째로 인구 5000만명이 넘는 국가 중 국민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가 넘는 나라로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20-50클럽’은 우리가 만들어낸 프레임으로서 비교하며 경쟁하는 사회 풍토와 선진국 콤플렉스를 반영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국가든 개인이든 모름지기 목표가 있어야 노력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으므로 진정한 선진국을 향한 우리의 열망과 목표를 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3차 산업혁명의 터널을 비교적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며 극한 불확실성을 특징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와 마주하게 됐고, WEF 슈밥 의장도 감탄했듯이 4차 산업혁명을 가장 많이 말하고 있는 나라가 됐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회가 강렬한 만큼 부작용도 클 것이며 그 최종 목적지는 불확실한 잠재력이 최대한 시너지를 발현하도록 만드는 우리의 능력과 실천에 좌우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축적지향의 문화와 사회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고부가가치 경험지식을 축적하려면 그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와 교육 그리고 정책구안과 집행과정 모니터링 등에 참여하면서 깨지고 넘어지고 실패도 경험하며 다시 일어선 축적의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축적된 경험지식이 창조적 개념 설계 역량 배양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문제를 논하다 보면 교육정책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축적의 시간이 없는 경우에 더 단언적으로 교육의 문제를 재단하며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당면 이슈의 해결책을 세게 주장하는 사례를 매우 자주 접하게 된다. 수십 년간 교육을 학습하고 연구하며 교육혁신정책을 고민하며 방안을 구안하고, 집행과정에서 컨설팅에 참여하며 모니터링과 평가작업을 수행해온 교육정책학도로서 우리 교육의 미래를 위해 딱 한 가지만 제안하라고 하면 교육정책 축적의 시간에 주목해 익숙한 관행과 결별 가능한 교육거버넌스를 구축하라는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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