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영 부천대학교 교수(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부설 고등직업교육연구소 연구위원)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 100여 일이 지났다. 문재인정부의 핵심은 단연 일자리 중심 정책이다. 이와 더불어 고등직업교육정책도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문재인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및 100대 국정과제’가 발표된 지난 7월 이후 전문대학가에서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게다가 실패한 것으로 알려진 박근혜정부의 고등직업교육정책보다도 후퇴했다는 혹평도 나오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고등직업교육정책의 방향성은 물론 구체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고등직업교육의 발전은 대한민국의 미래와 직결된다. 고등직업교육이 탄탄한 뒷받침을 해주지 않는다면 일자리 정책의 선순환 역시 불가능하다. 본지는 일자리 중심 정책의 기반으로 꼽히는 고등직업교육의 발전을 위해 문재인정부의 정책 점검 및 제언을 8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이전보다 후퇴한 문재인정부의 ‘고등직업교육’ 정책
② 4차 산업혁명 대응 위해 ‘수업연한 다양화’ 필요
③ ‘현장실습체제 강화’로 실무중심 직업교육 다져야
④ 날로 어려워지는 전문대학 ‘재정’…그 해법은?
⑤ ‘기울어진 운동장’ 정부재정지원 배분 방식 개선해야
⑥ 평생교육 ‘따로’ 직업교육 ‘따로’?…컨트롤타워 필요
⑦ 직업교육 활성화? 고등직업교육육성법 제정이 ‘답’
⑧ 전문가 간담회

▲ 김덕영 부천대학 교수

지방의 한 도시에 위치한 전문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A교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출근하자마자 e-메일을 열었다. 간밤에 쌓인 스팸메일을 지워나가던 그는 대학 기획처 발신의 학교 메일을 여는 순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대학 구조개혁평가 2주기 보고서 작성 TF의 팀원로 위촉한다는 대학 본부의 통보 메일이었다. 바로 옆방의 같은 과 교수가 지난 학기에 진행된 신규사업보고서 작성 팀원으로 차출돼 새 학기의 학과 일을 거의 혼자 담당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쏟아낸 것이다. TF 팀원이 되면 강의시간을 제외하곤 학교가 ‘특별히’ 마련해준 작업실에서 보고서 작업을 해야 하니 학생 취업 상담이나 학과 홍보 등 학과 일은 소홀할 수밖에 없기에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학과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하곤(학과 전임교수 3명-그중 한 명은 보직교수-이 비상한 대책을 쥐어 짜내야하지만) 다이어리를 집어 들고 터덜터덜 힘 빠진 발걸음을 회의실로 옮긴다. 거의 매년 반복되는 이런 일로 인해 이젠 ‘과연 내가 교육자인가?’하는 회의감마저 들지 않은지 오래다.

이런 일이 일상사가 돼버렸다. 10년 넘게 등록금이 동결되고 학생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등록금만으로 운영하기 힘든 대학의 형편을 고려할 때, 정부의 예산 지원이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교육에 필요한 ‘돈’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이 구상되고, 그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보고서’를 그럴듯하게 써내고, 계속 지원을 받기 위한 평가보고서를 또 써야 하는 소모적인 경쟁체제를 일 년 내내 반복해야 하는 현재의 재정지원방식이 과연 교육에 도움이 되는지,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깊이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전문대학 규모가 크든 작든 어느 지역이나 고등직업교육을 담당하는 전문대학의 효용성은 분명하다. 그 지역의 기업에 필요한 일꾼을 양성하고, 새로운 문화와 산업을 길러내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전문대학을 지원하는 지금의 사업 성격의 공모지원방식(목적성지원사업)은 대학의 규모에 따라 ‘기울어진 운동장’을 생각나게 할 만큼 큰 상실감을 내포하고 있다. 원래 축구 경기에서 유래된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말은 다른 축구팀들이 많은 유명 선수를 보유한 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계속 패배하면서 처음부터 한쪽만을 위한 유리한 조건이 만들어진 불공평한 상태에서의 게임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를 뜻하는 말이었다. 오늘은 고등직업교육을 책임지는 전문대학 예산 지원방식을 이야기하고자 사용했다. 규모가 작지만 그런데도 열심히 해서 성과를 거머쥔, 사업을 따낸 대학도 많다.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작지만 강한 대학’, 이 좋은 문구 뒤에 숨겨진 ‘지쳐가는 대학’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러한 현재의 재정지원방식의 문제점을 두 가지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째, 현재의 재정지원방식은 단발성 목적사업형태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 관점에서 대학 스스로가 목표를 가지고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할 여지가 많다. 이 방식은 정책 관련 지표를 중심으로 사업을 선정하고, 운영 결과를 평가했다. 또한 ‘목적사업’이기 때문에 실질적 대학재정 운영에는 도움이 되지 못해 개별 대학의 특성을 반영하기 힘들다.

둘째, 앞선 이야기처럼 인적 여유가 없는 대부분의 전문대학 경우 사업 준비, 시행, 평가 등 관련된 업무의 상당 부분이 해당 사업 관련 교수에게 부여됨에 따라 규모가 작은 대학일수록 교육에 집중하기 어려운 부작용이 발생한다. 일부 규모가 큰 대학이 정부의 각종 사업에 ‘단골손님’처럼 재선정됨으로써 이런 재정지원의 ‘집중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재정지원방식은 구조적으로 예산을 투입하면서 ‘질 낮은 교육’을 유도하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게 된다. 또한, 같은 대학 안에서도 사업단 중심의 지원으로 인해 사업에 참여하는 학과와 그렇지않은 학과 간의 지원 격차가 발생한다. 이렇게 편중된 지원형태로는 전문대학의 기초체력은 갈수록 약해질 수밖에 없다. 1년 단위로 돌아가는 지원 구조 가운데 계획서 제출, 평가, 선정, 집행, 다시 평가라는 순환을 반복하다 보면 장기적 교육게획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 싶다.

우선 현재의 목적지원사업과 더불어 일반지원사업의 예산을 늘려야 한다. 지난 6월 말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당시 후보자)은 대학 재정지원사업을 대학의 설립 목적과 비전, 교육여건에 따라 지원하는 일반재정지원사업 위주로 재편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현 정부의 교육에 대한 기본 정책으로 판단되며, 이로 인해 일선 전문대학이 기대를 하는 계기가 됐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여기서 한 가지 첨언 할 것은 137개라는 전문대학의 규모를 볼 때 현재 교육부에 편성된 전문대학 관련 목적사업예산은 굳이 일반대학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일반지원사업 예산은 없다. 별도로 일반지원사업 예산 편성을 통해 대한민국의 고등직업교육을 담당하는 전문대학의 기초체력을 키워야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대학 간 경쟁을 유도하고,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실시해온 정부의 고심 어린 정책을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정책을 통해 대학 현장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온 측면도 있다. 다만 예산을 선별적으로 나눠주고 성과를 평가하기에 앞서 전국의 전문대학이 담당하고 있는 ‘직업교육’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직업교육의 공교육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해 봉사의 기회를 얻고자 하루빨리 ‘직업인’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입학한 학생들에게 최소한의 교육 혜택을 받도록 공평하게 지원해주는 것은 새 정부의 진정한 가치를 실현하는 첫걸음이 아니겠는가. 여기에 우수한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 규모가 큰 대학과 작은 대학의 차별은 어울리지 않는다.

전문대학은 두 가지 커리큘럼(curriculum)을 갖고 있다. 하나는 눈에 보이는, 사회현장에 맞추어 개편된 현장맞춤형 커리큘럼이다. 전국의 전문대학들은 국가직무능력표준을 활용하거나 자체적으로 지역산업체 인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직무중심의 교육과정을 죽을 고생을 하며 만들었다. 누구를 위해서? 당연히 당당한 직업인이 되기를 소망하는 학생들을 위해서이다. 또 하나는 바로 ‘히든 커리큘럼’이다. 교육의 패러다임이 티칭(teaching)에서 러닝(learning)으로 바뀐 지금, 눈에 보이는 교육과정에서뿐 만 아니라 직업인으로서 더욱 잘 적응하는데 필요한 인성, 태도, 자존감 등을 자연스레 배울 수 있도록 학교 ‘분위기’를 만들고, 산업현장의 ‘분위기’를 익히기 위해 기업관계자, 산업체 인사들과 교수들이 협업하여 강의를 진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히든 커리큘럼은 대학 혼자 하기가 버겁다. 기업과 정부가 도와주어야 한다. 마치 ‘2인 3각’ 경기처럼 말이다. 조건없는 도움이 아니다. 기업은 필요한 인재를 직접 대학에 요구하며 맞춤형 인재를 키울 수 있으며, 정부는 구인구직의 미스매칭, 사회초년생의 이직률 감소, 훈련비용 절감 등 많은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대학, 기업, 정부가 손을 맞잡으니 소통이 절로 되는 것이다.

일반지원사업을 늘리기로 했으니 아예 ‘틀’도 바꿨으면 한다. 취업진로상담, 기초학습능력증진, 직업기초능력개발, 자존감고양, 인성교육, 기업밀착형 현장실습을 위한 지원 등 기초체력에 해당하는 예산은 구조개혁 등급에 따라 걸러내지 말아야 한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차등 지원은 여기에 적절한 말이 아니다. 일반지원사업을 통한 지원은 최소 기준만 갖추면 이루어져야 한다. 목적지원사업에 대한 경쟁체제만으로도 충분하다.

직업교육에 대한 인식과 재정지원에 ‘선택적’, ‘차별적’이란 말은 없어져야 할 적폐이다. 모든 학생에게 우수한 직업교육을 받을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정과 비리로 회복이 어려운 곳을 제외한 모든 전문대학에 우리나라 직업교육이 전반적으로 성장하고 기본적인 교육여건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것이 새 정부의 교육철학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직업교육’이 계층이동의 튼튼한 사다리가 될 수 있도록 전문대학에 기본적이고 안정적 지원이 이뤄질 수 있는 고등직업교육정책이 제시되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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