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일 대원대학교 사무처장 / 전국전문대학사무처장협의회장

▲ 권영일 대원대학교 사무처장

바둑계의 세계적 고수들을 차례로 굴복시킨 알파고의 능력은 경이로우면서도 큰 충격이었다. 특히 알파고를 가능케 한 인공지능이 향후 수많은 직업을 사라지게 할 거라는 전망 앞에 직업교육을 담당하는 전문대학으로서는 큰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상의 위기는 늘 기회를 잉태하고 있는 법이다. 영국의 언론인 사라 바인은 한 칼럼에서 ‘이제 아이들은 의사, 변호사, 회계사가 되기보다는 배관공, 건축업자, 전기기사가 되기를 열망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도래와 함께 지식인 전문직이 풍미하던 시대는 끝나가지만, 먹고 입고 거주하고 어울리며 살아가는 변함없는 인간 삶의 양식에 연관된 직업은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칼럼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예견되는 전문대학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흔히 4차 산업혁명시 대에 요구되는 능력으로 창의력, 문제해결 능력, 융합적 사고력, 인성 등이 제시되고 있다. 지식의 양으로는 개인이 인공지능을 도저히 능가할 수 없지만, 급변하는 기술과 삶의 현장에서도 인간이 가진 지적, 감성적, 신체적 유연성이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로봇이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도 대단하겠지만, 인간적 유연성을 바탕으로 인간적 손길이 담긴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이 광범위하게 존재할 것이란 의미이다. 전문대학의 가능성도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전문대학은 이제 각 전공교육 영역에서 창의력, 문제해결 능력, 융합적 사고력, 인성 교육을 위한 핵심 역량을 갖춰야 한다. 그것이 다양한 학제 도입과 함께 전문대학이 고등직업교육의 중심으로서 위상을 확고히 하는 길이다.

그러나 전문대학 내부를 들여다보면 결코 녹록지 않은 장벽들이 있다. 교수들은 여전히 주입식, 암기식 교육에 익숙해 있고, 학생들은 입시 위주 학습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창의력, 문제해결 능력, 융합적 사고력, 인성의 중요성은 교육역량강화사업, 특성화사업 등에서도 늘 강조돼 왔다. 그런데 지금 전문대학은 그런 교육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역량의 축적보다는 아직 기존 교육방식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고등직업교육의 실현을 위해서는 교수, 대학본부, 전문대학협의회, 교육부 등 연관된 주체들 모두 의식 전환과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그동안 전문대학의 교육 및 발전 방향을 좌우하는 중요 모멘텀으로 작용한 재정지원사업의 운용 측면에서 두 가지를 제안한다.

우선, 교육부와 전문대학교육협의회 차원에서 양질의 교육콘텐츠 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양질의 교육콘텐츠는 좋은 교육을 위한 기본이며, 교육 주체의 변화를 가능케 하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의력, 문제해결 능력, 융합적 사고력, 인성에 관한 콘텐츠 개발을 단기간의 대학 간 경쟁을 통해 촉진하려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 개설된 전공학과 특성상 전문대학은 관련 분야의 심도있는 연구 인프라가 부족한 여건에서 대학 간 경쟁을 할 경우, 콘텐츠의 질적 수준과 다양성에 한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와 전문대학교육협의회 차원에서 연구단을 구성해 양질의 콘텐츠를 개발하고 대학이 공유하도록 해주기 바란다. 그와 아울러 개발된 교육콘텐츠에 연계된 교수 연수를 보다 적극적으로 실시하면 좋을 것이다.

다음으로, 재정지원사업 예산의 운용과 관련해 대학의 재량권을 확대해주길 바란다. 행정편의주의나 단기적 평가우선주의에 치우치면, 예산을 정확한 곳에 투입할 수 없게 된다. 그동안 각종 사업에서 재정 운용상의 제약 때문에 외부업체에 위탁한 캠프나 이벤트성 프로그램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해 일선 학과에서는 교육과정 수행과 재정지원사업 수행이라는 이중의 부담을 감당해야 했다. 정부가 지원하는 예산이 대학의 핵심 기능인 교육과정 수행 자체의 질적 향상에 정확하게 투입돼야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핵심 교육역량의 축적을 앞당길 수 있다고 본다.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대두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전문대학은 직업교육의 품질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정부의 재정지원 확대와 아울러 효율적인 운용을 통해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해 산업발전에 더욱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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