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열(고려대 연구기획팀장)

2008년 출간된 베스트셀러 <넛지(nudge)>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리처드 탈러(세일러) 교수가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탈러는 책에서 ‘넛지(Nudge)’를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는 뜻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사람들이 보다 건강하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방향으로 결정하도록 넛지를 가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또한,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 배경이 되는 정황이나 맥락을 만드는 사람, 즉 넛지를 가하는 사람을 ‘선택 설계자(Choice Architect)’라고 한다. 투표용지를 디자인하는 사람, 환자에게 선택 가능한 다양한 치료법들을 설명해 줘야 하는 의사, 직원들이 회사의 의료보험 플랜에 등록할 때 작성하는 서류 양식을 만드는 사람, 자녀에게 선택 가능한 교육 방식들을 설명해주는 부모, 물건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세일즈맨 모두 선택 설계자다.

필자는 평소에 “대학행정(인)은 ‘무엇’이다”라는 방식의 생각 훈련을 많이 한다. 문장 안에 들어갈 ‘무엇’에 대한 다양한 은유적 개념을 찾아 생각해보면 대학행정에 대한 격물치지(格物致知)가 되고 대학행정 현장에서 큰 힘이 된다. 필자의 개념정의 노트에 “대학행정은 넛지이고, 대학행정인은 선택 설계자이다” 라는 문구가 있다. 필자는 이 생각을 항상 마음에 두고 대학행정을 해 왔다. 그래서인지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 소식이 특히 친근하게 느껴진다.

대학에서 행정은 목적이 아니다. 궁극적인 목표 분야는 교육과 연구이고, 행정의 구체적인 대상은 교수와 학생이다. 행정의 결과가 행정인 자신이 아니라 교수와 학생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대학에서 행정인은 선택 설계자로서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 즉 넛지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위계적 관료조직에 몸담고 있으면 넛지가 아닌 다른 방법, 즉, ‘직접적인 개입’을 통한 행정을 하기가 쉽다. 하지만 이 방법은 행정이 교수나 학생을 직접 통제하는 방식으로 작용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대학이 획일화되고 경직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부드러운 개입, 넛지는 선택의 주체가 행정인이 아니라 교수와 학생이 된다. 행정인은 그들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정황이나 맥락을 만들고, 교수와 학생은 각자 최선의 선택을 통해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스스로 역동적인 변화를 하게 된다. 넛지는 대학행정뿐만 아니라 강의실 안팎에서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강의자는 일방적 지식 전달보다는 학생이 스스로 진리를 찾을 수 있도록 멋진 넛지를 발휘할 수도 있다. 나아가 정부도 대학정책을 넛지 관점에서 되돌아보고, 넛지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한다. 학문의 자유가 생명인 캠퍼스는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넛지가 가장 어울리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