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 (본지 논설위원/ 초파리 유전학자, 캐나다 오타와대 교수)

초파리 유전학자 셋이 또 노벨상을 받았다. 물론 한국사회는 별 관심이 없다. 적폐 청산은 다르다. 국민 대다수가 매일 그 뉴스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 하지만 그 칼날을 더욱 깊숙이 찔러, 정치권력 아래 견고히 버티고 있는 사회의 하부구조를 청산해야 한다. 엘리트 정치권력이 정초한 한국사회의 병폐는, 우리 모두에게도 깊게 드리워져 있다. 모두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이기에 우리는 유전자를 물려준 자식과 유전자를 공유하는 가족에게 공정할 수 없다.

굳이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꺼내지 않아도 세습의 본능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지난 몇 년간 펼쳐진 굵직한 사건들만 일별해도 충분하다. 승마도 잘 못하면서 결국엔 엄마를 배신하고 자기 자식을 선택한 정유라에 대한 최순실의 무조건적인 사랑, 그 사랑이 박근혜 국정농단의 단초다. 대통령에게 자식이 없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그 대통령 친구의 딸에게 말을 사준 자는 이 나라 가장 큰 기업의 총수다. 그의 아버지는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주기 위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편법을 동원했다. 대기업 총수일수록, 세습의 본능에 더욱 충실하다는 건 일종의 법칙이다. 어떤 자는 자신의 아들이 맞았다고 아들의 친구를 폭행했다. 조폭이나 총수나 자식 사랑은 보편적임을 증명하는 사례다.

어떤 거대 종교들은 사제의 결혼을 금지하는 것도 모자라, 성행위 자체를 금지한다. 사제의 결혼과 출산이 허용되는 한국 개신교의 교회 세습을 보면 천주교와 불교의 원칙이 위대해 보인다. 종교의 신성한 교리도, 인간의 세습 본능을 제어할 수 없다. 거대 교회 목사들은 이기적 유전자를 꼭 읽어야 한다. 자신의 행동을 성경보다 더 잘 설명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관료들이 움직이는 사회다. 정권이 바뀌었어도 그 적폐에 조용히 봉사했던 관료들은 그대로 남았다. 외교부의 현대판 음서제는 유명하다. 변호사와 의사라는 한국 엘리트의 두 양대 직업은 다른 어떤 직업보다 세습이 유리하고 강하게 나타나는 분야다. 정치인의 세습은 그보다 훨씬 역사가 오래됐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한국사회 최초로 대통령이 세습된 것이다. 한국사회 상류층일수록, 세습의 본능은 더 강렬하다.

교육학자 박남기는 학벌사회에 대한 잘못된 대안들이 한국의 세습사회를 고착시켰다고 말한다. 학벌사회의 대안으로 제시된 실력주의가 과도하게 적용되면서 오히려 세습이 강화되었다는 논리다. 그럴 듯하다. 왜냐하면 실력주의는 그 실력을 갖추게 된 사람의 배경과 외부 요인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실력을 강조할수록 제도를 역이용한 소수의 권력층이 자식을 더 유리한 고지에 올리기 쉽다. 그는 학력을 기준으로 역차별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정 대학군 졸업자 비율의 상한선을 도입하고, 소위 SKY대학의 입학 정원을 대폭 축소하고, 특정대학 승진비율을 묶어야 한다.

유전학자로 살아가면서 흥미로운 일은, 유전의 원리를 공부하는 사람보다 일반인들이 더 유전학을 신뢰한다는 데 있다. 자식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자식의 어떤 부분이 자신을 닮았는지 혹은 배우자를 닮았는지 분석하는데 능한 통속 유전학자다. 성격과 공부하는 두뇌 등은 유전보다 환경적 요인이 더 큰 형질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부부 간에는 이견과 다툼이 있다. 괜찮다. 통속 유전학이 이런 작은 다툼에만 쓰인다면 좋겠다. 문제는 본인 유전자의 절반 혹은 그 이하를 물려받은 자식을 통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권력에게서 온다. 바로 그 지점이 유전학과 사회학이 만나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고, 한국사회의 적폐청산의 노력이 사회과학의 지식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다.

우리는 자주 인간이 생물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잊는다. 또한 우리 모두가 유전학의 분석 대상이며, 그 법칙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자명한 진리를 외면한다. 인류의 문명은 그 본능을 때론 거스르고 때론 조화시키며 흐른 역사다. 모든 권력형 비리에 세습의 왜곡된 욕망이 녹아 있는 지금, 한국에 필요한 건 유전학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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