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무어 지음, 전소영 옮김 《온 트레일스》

배낭 하나 메고 전 세계를 종주하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벅찬 일이다. 특별한 게 없더라도 내가 속한 곳을 벗어나 다른 나라의 삶과 사람을 구경하는 것으로도 이미 얻을 게 충분하다.

저널리스트 로버트 무어도 어느 날 3200km에 이르는 애팔래치아 길을 종주하기 위해 나섰다. 며칠, 몇 주간 계속된 침묵의 여정 속에서 로버트 무어는 길의 본질과 의미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됐다.

지금 걷는 길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왜 길에 의존하는 것인지, 어떤 길은 흥하고 어떤 길은 쇠락하는지 그 답을 찾고 싶어진 것이다.

로버트 무어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7년 간 전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대장정을 시작했다. 화석과 곤충, 동물 원주민 등 각각의 길을 발견하고 탐험했다. 또한 역사학자, 원주민에게 조언을 구해 길의 의미를 알아갔다.

로버트 무어가 발견한 길 중 ‘개미의 길’에 대한 연구가 특히 주목된다. 개미는 군집으로 뭉쳐 엄청난 효율과 영리함을 보인다. 개미는 먹이를 발견하고 집에 돌아올 때 ‘페로몬’을 남기는데 이 때 먹이의 양이 많으면 많은 페르몬을 남기게 되고 많은 페르몬을 본 개미들이 그 길을 지나가면서 곧은 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반면 먹이가 없을 때는 적은 양의 페로몬을 남기기 때문에 이는 곧 약해지고 휘발되어 이 길은 사라지게 된다.

개미는 지도자도 없고 특별한 의사소통을 나누지도 않고 단순히 규칙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생활할 수 있다. 이를 ‘스티그머지(stigmergy)' 메커니즘이라 하는데 스티그머지로 길이 활성화 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하는 알고리즘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이 알고리즘은 영국의 전자통신 네트워크를 개선하거나 재난 구호물자 공급 과정의 개선을 위해 사용돼 왔다. 앞으로는 더 많은 상황에서 응용될 것이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던 개미지만 트레일을 통해 개미의 길을 발견하고 새로운 지혜를 얻다 보니 우리의 삶까지도 풍성해지게 됐다.

한편 저자는 현대 시대가 인터넷처럼 많은 정보가 범람하면서 길들이 얽히고 설켰다고 말하며 이런 상황에서 장소와 장소 사이를, 사람들의 생각과 생각 사이를 빠르게 이어버리느라 문화적 맥락을 건너뛰는 일을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길이 너무 많은 시대, 발밑 길의 지혜를 읽어내 현명한 길잡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와이즈베리 / 1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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