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리스트는 없다” 김상곤 부총리는 지난 8월 고현철 부산대 교수 2주기 추도식에서 이렇게 발언했다. 고현철 교수는 2015년 총장 간선제 전환을 반대해 대학본부 건물에서 투신 사망했다. 이는 정부가 국립대 총장을 입맛에 맞춰 임용한다는 의혹이 공론화되는 데 불을 지핀 사건이었다.

당시에는 비통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국립대 총장 선출방식 때문에 투신까지 할 사건인지 의구심을 표하는 시선도 소수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대학의 민주주의와 총장선출 방식의 중대성에 대해 얼마나 무뎌져 있었던가.

과연 문재인정부는 아무 정치적 의도 없이 국립대가 자율적으로 선출한 총장을 임명할까. 대학들은 궁금해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취임 후 처음으로 5개 국립대 총장을 임명했다. 그 중에서도 교육부가 지난 이명박정부의 핵심 인사를 그대로 국립대 총장으로 임용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한 사실은 여러모로 화제가 됐다. 당사자에게 큰 결격 사유만 없다면 대학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메시지를 보여줬다는 점 때문이다.

그렇게 2년 만에 국립대 총장 선출 권한은 다시 대학으로 넘어왔다. 대학 민주주의의 원칙을 바꾸는 시도에 결코 타협하지 않았던 학자의 희생이 있은 후에야 말이다.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블루리스트’ 의혹은 여러모로 대학을 황폐하게 했다. 1순위 총장후보자로 선출됐으나 명확한 이유 없이 임용제청이 거부당한 교수들은 각종 확인되지 않은 지라시 보도로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토로했다.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교육부에 소송을 제기했고, 총장 자리가 수개월, 1년, 3년 이상 텅 비어 발전 동력을 잃은 대학이 허다했다.

2순위 후보자로 총장이 된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블루리스트 의혹에 당시 정권의 나팔수처럼 비치며 의심의 눈길을 받아야 했다. 당연히 대학을 이끄는 지도자로서의 권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총장 선출을 앞둔 국립대들이 속속 직선제 전환을 검토하고 있지만 뇌관은 남아있다. 대학의 구성원들은 “총장 선출 권한을 남의 손에 맡길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임교원 위주로 뽑던 직선제가 아니라 비정규교수, 직원, 학생들도 각자 투표인원 수와 투표 반영비율을 높여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국립대 교수들은 대학의 교육과 연구 전반을 관장하는 만큼 교수들의 권한이 가장 크다고 주장해왔지만, 촛불정국을 거쳐 정권 교체를 이뤄낸 국가에서는 공허하게 들릴 공산이 크다. 만약 이 논의가 원만하게 해결되지 못한다면 ‘대학 민주화’를 앞세운 총장 직선제는 다시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될 지 모를 일이다. 다시 ‘대학이 정치판 됐다’는 비판을 직면하게 될 수 있다.

직선제를 사수했던 부산대도 교수 외 구성원들의 참여비율을 미약하게나마 높였고, ‘미래라이프대 및 정유라 부정입학 사태’를 겪었던 이화여대에서도 직선제를 도입하면서 직원과 학생들의 참여 비율을 늘렸다. 대학 안에서 교육·연구하는 구성원뿐 아니라 근로·학습을 하는 구성원들을, 대학을 내 손으로 바꿔보고 싶다고 아우성 치는 이들을 인정하는 ‘다원 민주주의’는 대세이자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이다.

총장 직선제 전환 바람 속에서 대학은 학내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성숙시킬 수 있을까. 첨예한 이해관계 속에서 각자 어느 선까지 양보할 수 있을까. 모두가 귀와 마음을 열고 소통과 협력의 자세를 갖춰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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