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역학·인터넷윤리학·도시재생학

“사회 변화 가속…신생학문 탄생 추세 더욱 거세질 전망“

[한국대학신문 이지희·장진희·주현지 기자] 세계적으로 사회 양극화와 세계화, 4차 산업혁명 시대 등 변화의 파고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런 동향 속에서 국내 학문의 갈래도 점차 세분화되고 있는 추세다. 의학에서 질병의 불평등 현상을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 끝에 갈라져 나온 사회역학이 대표적이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이 가시화됨에 따라 로봇 윤리 등 새로운 가치관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탄생한 인터넷윤리학도 있다. 앞으로 이런 ‘신생학문 탄생’ 추세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 강영호 서울대 교수. (사진= 이지희 기자)

■사회적 요인의 촘촘한 그물망을 파헤치는 ‘사회역학’ = 한 사람이 자살했다. 누군가는 그가 오로지 개인적인 선택에 의해 자살을 했다고 말하겠지만, 누군가는 이 사람의 자살을 둘러싼 사회적 요인을 규명하고 분석한다. 그게 바로 사회역학이다.

알 듯하면서도 생소한 사회역학은 역학의 한 분야다. 그렇다면 역학의 정의부터 설명해야겠다. 역학은 질병의 분포나 발병의 원인을 기술하고 질병의 원인을 탐색한다. 그것에 기초해 질병을 막거나 예방하는 치료에 도움이 되는 학문이 바로 역학이다. 사회역학은 그 질병을 둘러싼 사회적 분포와 사회적 결정 요인을 규명하고, 질병을 일으키는 사회적 구조나 문제에 접근하는 학문이다.

사회역학의 연원을 찾자면 아주 과거의 공중보건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과거 공중보건 활동은 질병의 원인을 사회적 요인에서 보려는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학문으로써의 사회역학이 자리 잡기 시작한 시점은 1990년대로 거슬러간다. 1980년대 성행했던 신자유주의 흐름에 따라 의학에서도 기술 중심의 생의학적 모델에만 몰두한 채 사회적 힘과 영향에 대한 관심은 소홀했다. 1990년대 중후반에 들면서 이에 따른 반성의 움직임이 있었다. 사회의 다양한 위험 요인이 얼기설기 엮여 하나의 질병을 유발한다는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역학을 연구하는 주요 분야는 예방의학이다. 의과대학 중에서도 예방학은 사회적인 의제나 정책을 다룬다. 예방의학은 △역학 △환경 및 산업보건 △의료관리 3가지 분과로 나뉘는데 국내에서는 역학보다 의료관리 쪽에서 사회역학에 대한 연구가 많이 다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약 15년 전부터 사회역학 분야의 박사학위 수여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도입배경은 1997년 외환위기였다. 사회적 양극화가 대두되면서 건강 문제에 있어서도 사회적 요인이 개입될 수 있다는 관심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오랜 시간 이 분야의 연구를 지속해 온 강영호 서울대 교수(의료관리학)는 ‘건강 불평등’에 주목했다. 2001년만 해도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띈다는 이유로 민감하게 받아들여졌지만 이제 불평등이란 단어는 아주 자연스레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그만큼 사회역학이라는 학문도 제법 인프라를 갖췄다. 특히 불평등에 관한 연구는 세계 최고를 자부한다. 이는 우리나라가 인구총조사 ‘센서스’나 사망자료 등 공공데이터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사회역학은 물론 아직 의학 분야에서는 비주류라 볼 수 있지만 보건학이나 예방학의 카테고리에서는 더 이상 비주류라 할 수 없을 만큼 상당 수준에 도달했다는 게 강 교수의 설명이다. 강 교수는 이 분야에 뛰어드는 연구자들에게 보다 도전적인 체제의 문제나 세계화의 문제에 천착하라고 조언한다. 거시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 연구자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역학은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사회역학 연구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1차적 목적은 질 높은 연구자를 키우는 일이다. 사회학·인류학·정치경제학·법학 등과 결합해 사회요인을 둘러싼 다변적 접근을 하게 될 때 이 학문의 폭 역시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 신용태 숭실대 교수. (사진= 이지희 기자)

■‘인터넷윤리학’, 익명성·비대면성의 인터넷 공간에 윤리를 접목하다 = AI가 악성 댓글을 남긴다면? 자율주행차가 과속으로 교통사고를 낸다면? 이건 기계의 잘못일까, 사람의 잘못일까. 4차 산업혁명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술의 윤리에 대한 논의도 덩달아 주목을 받고 있다. 기계는 스스로 윤리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만드는 인간의 윤리가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학문을 연구하는 게 바로 인터넷윤리학이다.

인터넷윤리학은 말 그대로 윤리학에서 비롯됐다. 흔히 사람이 살아가면서 하는 도리를 윤리라고 한다면 물리적 공간, 온라인상에서도 이 도리를 행해야 한다는 게 인터넷윤리학의 시작이다. 사이버 공간은 기본적으로 익명성과 비대면성을 가지기에 윤리의 가치가 더 필수적으로 다가온다.

신용태 숭실대 교수(컴퓨터공학)는 인터넷윤리학을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지는 일을 하지 않고 삼간다’는 뜻의 신독(愼獨)의 가치라고 표현한다. 홀로 있을 수밖에 없는 공간에서도 나름의 윤리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신 교수가 판단하기에 한국은 인터넷 인프라는 최고 수준이지만 인터넷윤리는 낙제점에 가깝다. 그는 이를 물질의 가치를 더 우선시하는 한국 사회의 특징으로 분석했다. 기술만 좋으면 된다는 물질적 가치가 윤리의 가치를 넘어섰다고 보는 것이다.

2009년부터 시작된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비로소 연구 필요성이 대두됐다. 공급자와 수요자 경계가 사라지면서 분별할 수 없는 콘텐츠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기존 온라인 공간에서부터 이어져 온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은 스마트폰의 사용으로 더 확장되고 파급력도 커졌다.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 △신상 털기 △잊힐 권리 등은 이런 논의 속에서 탄생한 사회적 문제들이다.

신 교수는 이런 온라인상의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선구자적 노력을 벌여온 공학자다. 인터넷 보급을 위해 1996년 키드넷 캠페인을 주도 했지만 그만큼 인터넷 윤리 확대의 끈을 놓지 않았다. 2012년 법제화를 주장했던 잊힐 권리 등이 그런 노력의 결과다. 인터넷 신뢰지수를 개발하려고 했던 시도도 있었지만 이는 재정적인 문제로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잊힐 권리는 지금도 꾸준히 연구하고 있는 분야다.

현재 시점에서 ‘개발자의 윤리’는 인터넷윤리학의 가장 큰 화두다. 4차 산업혁명의 파고 속에서 사용자의 윤리보다 만드는 사람, 즉 개발자들의 윤리가 중요하다는 문제가 계속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윤리학은 개발자의 윤리에 대한 연구 활동은 물론 기술 시대의 문화를 바꾸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신 교수는 우리가 인터넷을 이용하는 한, 사이버 공간이 존재하는 한 인터넷윤리학에 대한 연구와 필요성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 전망한다. 마치 언론계에서 평판관리사가 생겨난 것처럼 인터넷윤리 연구 분야에서도 이와 관련된 직업이 탄생할 수도 있다.

▲ 김호철 단국대 교수.

■낙후된 도시의 효과적인 재정비에 기여하는 ‘도시재생학’ = 신생학문은 사회적 요구에 의해서 등장하기도 한다. ‘도시재생학’이 그렇다. 우리나라는 이미 1960~70년대에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었고, 이때 개발된 도시 중 일부는 현재 쇠퇴하는 추세다.

바로 이런 낙후된 도시를 성공적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연구하는 분야가 도시재생학이다. 지난 2015년에 출범한 한국도시재생학회의 초대 학회장인 김호철 단국대 교수는 “도시재생학은 단순히 도시 계획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경제·사회·문화·복지 분야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한 도시의 전반적인 기능을 회복시키는 데 기여하는 학문”이라고 설명했다.

김호철 교수는 도시재생학 연구가 주민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국내에서 ‘주택난’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지 오래다. 난개발된 도시를 잘 재생시키기만 하면 지역 주민들의 실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도시 재창조에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소요된다. 이를 효과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도시재생학자들이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 도시재생학은 주차장, 공원, 녹지 등 주민들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된 인프라 구축 방안에 관심을 갖고 있다. 고령화로 인해 지방 도시들이 소멸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이렇듯 도시 개발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고려해, 가장 적합한 도시환경을 제공하자는 것이 도시재생학 연구의 주된 목적”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추후 도시재생학 연구가 ‘지역주민’과의 연계를 통한 도시 발전을 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동안 도시 재개발은 건설사 등 기업이 주도적으로 해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도시재생에 앞장서고 있다. 각 지역 특성에 맞는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 연구자들이 노력 중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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