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헨공대, 30년 전부터 산학협력 중심 학풍 유지해”

[한국대학신문 장진희 기자] 최근 한국 사회의 최대 화두인 ‘4차 산업혁명’은 독일에서 첫 타자를 끊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은 이미 2011년부터 ‘인더스트리 4.0’이라는 이름으로 미래 전략을 구축했다. 그리고 ‘인더스트리 4.0’ 정책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독일 대학이 있었다.

특히 독일의 ‘MIT’라 불리는 아헨공대는 산학협력을 통해 ‘인더스트리 4.0’ 구현 수단 중 하나인 스마트 팩토리의 운영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최근 방한한 에른스트 슈마흐텐베르크(Ernst Schmachtenberg) 독일 아헨공대 총장을 만나 ‘인더스트리 4.0’의 핵심 방향과 독일 대학 운영에 대해 들어봤다.

- 독일 정부는 이미 ‘인더스트리 4.0’을 통해 미래 성장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인더스트리 4.0’의 핵심은 ‘소비자 맞춤형’ 제품을 제공하는 데 있다. 독일 정부는 ‘어떻게 하면 대량생산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했다. 독일이 '인더스트리 4.0'을 통해 이룩하고자 하는 변화는 바로 이런 것이다. 예컨대 소비자가 자동차를 구매할 때 자동차 도색, 좌석 개수, 차체 모양 등을 자신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변화를 추구한다. 이런 개인 맞춤형 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생산 과정에서의 네트워크 형성이 필수적이다.”

- ‘인더스트리 4.0’을 발전시키기 위해 독일 대학들이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독일에는 9개의 유서 깊은 공학대학이 있다. 이들을 ‘TU(Technische Universität)9'라 부른다. TU9에서 전체 독일 공학도의 60%를 배출하고 있다. 또 독일 내 공학 분야 박사의 70%가량을 TU9에서 수여한다. 이들은 연구 중심 공학대학이다. 독일 공학대학은 산업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또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주목해서 연구를 진행한다. 독일 대학은 ’인더스트리 4.0‘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연구에 관심이 많다.”

- 아헨공대만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아헨공대는 ‘인더스트리 4.0’을 위해 어떤 교육 방향을 추구하고 있나?

“우리 대학은 ’공학대학(Technical University)‘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지만,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수학도 가르치는 종합대학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10년 전부터 ’융합대학(Integrated University)‘이라고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이는 ‘과학’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개념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우리 대학은 교육은 물론이고 연구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육과 연구가 거의 50대 50의 비율로 이뤄진다. 우리 대학은 ‘연구를 통한 교육(educating by doing research)'을 교육 철학으로 삼고 있다. 학부 때부터 산업체에 바로 적용이 가능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인더스트리 4.0‘에서 중요한 아이디어와 R&D를 대학에서 시작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다.”

- 아헨공대는 산학협력을 바탕으로 한 실용학풍을 가진 대학으로 유명하다.

“아헨공대는 이미 30여 년 전부터 산학협력을 기반으로 대학을 운영해왔다. 사실 실용학문과 순수학문의 경계를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 실용학문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기초학문을 공부할 수밖에 없다. 다만 우리 대학에서는 연구를 하면서 공부하는 환경을 조성한다. 예를 들면 학생들은 학부 시절부터 조교 활동을 통해 하루에 6~8시간씩 기계를 작동시키는 실습에 참여한다. 이런 경험은 한국이나 일본 대학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또 우리는 자연과학이나 수학 전공 학생들에게도 연구를 하도록 가르친다. 그 때문에 기초학문 분야에서도 항상 상위권을 기록한다. 특히 우리 대학은 캠퍼스 내에 산학 연구 클러스터가 조성돼 있다. 그리고 참여 기업 수는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 아헨공대의 슬로건이 ‘미래는 우리에게서 시작 된다(Zukunft beginnt bei uns)’인데, 의미심장해 보인다.

“지난 수 세기 동안의 역사는 ‘우리가 처한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까’라는 질문의 연속이었다. 우리 세대가 조상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과거로부터 쌓아온 노하우가 많다. 우리에게 새로운 통찰이 생길 것이라 확신한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융합대학’이라고 일컬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생활과학, 자연과학, 인문학, 공학 등 모든 분야를 융합해서 세상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

- 머지않은 미래에 과학 기술이 인간 사회를 지배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하는데?

“걱정할 필요 없다. 원래 인간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증기기관을 처음 발명했을 때 대중들은 말보다 빠른 교통수단을 타는 것이 인체에 유해할 것으로 생각했다. 독일에서 비행기 타고 왔는데도 멀쩡하다.(웃음) 사람들은 인공지능 개발이 우리를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인공지능 때문에 우리가 생존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 시대에는 노예들이 있었기 때문에 인류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철학자’들이 존재할 수 있었다. 미래에는 우리가 모두 철학자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하기 싫은 일을 컴퓨터와 기계가 대신하기 때문이다.”

- 아헨공대가 꾸준히 한국 대학과의 협약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들었는데?

“이미 다수의 한국 대학과 협약체결을 통해 학생, 대학원생, 박사후연구원(포스닥), 연구원, 교수 등을 서로 교환하고 있다. 그리고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한다. 토마스 그리스(Thomas Gries) 교수가 좋은 사례다. 우리 대학과 성균관대, 독일ITA(섬유연구소),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공동으로 지난 9월 안산에 ‘스마트텍스로닉스센터’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지능형 전자섬유 관련 전문 연구센터다. 또 이번 방한 기간 한국 지역거점국립대 10개교와 독일 ‘TU9‘과의 추후 협력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내년 10월에 아헨에서 한국독일동문네트워크인 ’아데코(ADeKo)‘와 국제 콘퍼런스를 개최하는데 한국 지역거점국립대 총장들을 초대해서 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 한국과의 협력 방안을 강구하는 특별한 이유가 무엇인가?

“‘인더스트리 4.0’의 중요한 축 중 하나가 바로 ‘디지털화(digitalization)’이다. 한국이 디지털화를 구현할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초미세 전자공학(Microelectronics) 분야에 특화돼있다. 한편 독일은 제조업 중심의 기계를 생산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 한국과 독일은 서로에게 이상적인 파트너다. 또 우리는 ‘인더스트리 4.0’에서 강조되는 것이 바로 네트워크라고 생각한다. 한국, 독일, 미국, 일본이 꾸준히 협력해서 경제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 본지는 한국 대학 총장들과 ‘프레지던트 서밋’을 통해 대학 발전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대비를 위해 한국 대학과 아헨공대을 비롯한 독일 대학과의 만남을 추진하고자 하는데?

“물론 환영이다. ‘인더스트리 4.0’의 가속화에 따라 대학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혁신은 항상 대학에서부터 시작한다. 한국 대학이 독일 대학의 ‘산학협력’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들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대학과 열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슈마흐텐베르크 총장과 이인원 본지 회장이 서울 광화문 서머셋 팰리스 호텔에서 대담을 했다. (사진= 한명섭 기자)

■ 에른스트 슈마흐텐베르크 총장은…

1952년 독일 아헨에서 태어났다. 1981년 아헨공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에는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아헨공대 기계공학부 교수로 재직했고, 2008년 8월 아헨공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 아헨공대는…

아헨공대는 1870년 독일 노르트라이베스트팔렌 주 아헨에 설립된 국립 공과대학이다. 매년 1조원 이상의 예산을 집행하며 독일에서는 두 번째로 큰 규모의 공과대학이다. 산학협력을 통해 독일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으로 명성이 나있다. 독일의 'MIT'라고도 불리는 아헨공대에는 인문사회학부, 기계공학부, 건축학부 등 9개의 학부가 있다.

<대담= 이인원 회장 / 정리·번역= 장진희 기자 / 사진= 한명섭 사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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