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희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평소 나는 텔레비전을 자주 보지 못한다. 어떤 소신이 있어 안 보는 것이 아니라 바쁜 일상에 쫓겨 못 보는 편이다. 그런 내가 가끔 챙겨보던 프로그램이 있는데 얼마 전 종영한 ‘효리네 민박’이다. ‘제주도에서 사는 사람이 모두 저렇게 살 수 있다면 그 누가 ‘제주 살이’를 꿈꾸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대리 만족 차 가끔 보게 되는 프로그램이었다.

물론 제주 도민의 이효리에 대한 호불호는 조금 나뉜다. ‘이효리 효과’가 너무 커서 제주 도민의 생활에 불편함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울적할 때 거닐던 한적한 바닷가 산책길과 내 발자국 소리만 울리던 인적 없는 오름은 ‘효리네 민박’에 등장한 순간 이미 예전에 내가 알던 그곳이 아니어서 꽤 서운해 했다. 이제 제주는 시간과 요일을 가리지 않고 차가 막히고 관광객들로 인한 쓰레기 대란에 모두 골머리를 썩고 있다. 또한, 이효리가 사는 동네의 작은 초등학교는 육지 이주민으로 인해 한 학년에 두세 반씩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 학교 선생님이 해 주신 이야기이다. 육지에서 온 엄마들은 사교육에서 벗어나 아이를 자연친화적으로 키우기 위해 애를 쓰는데 순하디순한 그 아이들은 예전에 비해 점점 창의력도 떨어지고 사고력도 떨어져 이상하다는 것이다. 아마 자연친화적 놀이라는 것이 자연 속에서 아이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기보다 정해진 프로그램과 규칙 안에서 진행되는 또 다른 사교육의 형태를 지니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라고 추측해 본다.

‘이효리 효과’에 대한 크고 작은 불만의 목소리가 있긴 하지만 나는 ‘효리네 민박’을 보며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즐겼고 그 중 잊혀 지지 않는 한 장면이 있다. 음악을 하는 여대생 둘이 효리네 민박을 방문하였는데 거실 창가에 앉아 평온히 햇볕을 쬐다 느닷없이 눈물을 터트리는 장면이었다. 제주의 여유롭고 따뜻한 햇살 아래서 서울의 긴장된 생활이 무장해제 된 것이리라.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이어서 대학 입시가 매우 치열했던 모양이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만을 바라보며 참을 수 있었는데 대학에 와서도 경쟁과 연습에 얽매여 생활할 줄 몰랐단다. 국민 언니 이효리는 여대생을 토닥토닥 다독이며 자신도 가수로서 성공만 하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고,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놓여나면 행복은 찾아온다고 가만히 일러준다. 옆에 있던 남편 이상순은 자신도 군대에서 제대만 하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효리네 창가에서 울고 싶은 건 그 여대생뿐일까?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효리에게, 혹은 제주의 자연에 위로받고 싶어 한다는 건 그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말해 준다. 그렇다면 우리를 가장 불행하게 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 이효리의 일상을 보며 우리는 어떤 대리만족을 느끼는 걸까? 표면적으로는 여유롭고 단조로워 보이는 그녀의 일상인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감정과 마음의 움직임에 정직하게 직면하는 그녀의 용기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제주의 자연을 오롯이 누리며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그녀는 참으로 멋지다. 그건 타인의 시선과 경쟁에서 한 걸음 물러나 ‘연예인 이효리’가 아닌 ‘인간 이효리’로 온전히 살아가려는 그녀의 노력에 의해 맺어진 결과물일 것이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우리는 매료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녀 또한 감정의 흔들림은 당연히 있을 것이다. 마음이 요동칠 때 그녀가 선택한 해결 방법은 요가이다. 흔들리는 마음이 문제가 아니라 그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는 것이다.

제주가 그녀로 인해 들썩이며 불편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삶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그녀에게 용기를 얻고 위안을 얻는 사람이 많다면 우린 그녀에게 더 많은 것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제주 도민이라는 것만으로도 친근감이 가는 그녀를 혹시 오일장에서라도 우연히 부딪히게 된다면 이렇게 얘기해 주고 싶다. “고마워요, 효리 씨!”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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