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홍 본지 논설위원 / 경일대 교수,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평가단장

얼마 전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미국의 일자리 창출’을 거듭 언급했다. 취임 전부터 지금까지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아온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듣는 느낌이 남달랐을 것이다. 미국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거액의 무기 대금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일자리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이 기존의 일자리 구조를 크게 흔들어 놓으리라는 논의가 뜨겁다. 2016, 2017 다보스 포럼의 주제가 ‘일자리와 제4차 산업혁명’이었다. 앞으로 5년간 710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21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고, 국제노동기구는 "로봇 확산으로 아시아 근로자 1억 370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염려의 뜻을 밝혔다." 사라지는 일자리보다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는 낙관론도 있지만, 일자리에 지각 변동이 일어난다는 것은 한 목소리였다.

이런 변화보다도 더 두려운 것은 변화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안이함이다. 과거의 영광에 도취해 밀려오는 변화를 경시했던 노키아와 코닥의 몰락을 우리는 또렷이 기억한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딥러닝 등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첨단기술이 결국 거대한 통합 플랫폼에 커넥티드(connected)될 미래에는 플랫폼 경쟁의 승자 독식 시대가 올 것이란 전망도 있다. 그렇다면 패자는 상상 이상의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인재 양성의 현주소를 걱정하며 대학정책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안타깝게도 새 정부는 그간 지난 정부 때까지 무너져버린 기초 학문이나 인문학의 회복을 기대할 만한 대학정책은 고사하고 많은 문제점이 지적돼 온 구조개혁평가 카드만 만지고 있다. 최근 한국의 대학에서 절망감을 느낀 유능한 젊은 학자들이 외국으로 빠져 나간다고 한다. 단기간의 성과를 재촉하고 획일적 평가 지표로 대학을 줄 세우는 대학정책에 대한 또 다른 경고음이다. 정부는 대학의 제 기능 회복을 위한 정책 수립을 서둘러야 한다. 이런 긴박함에 기대어 우선 대학정책에 관련한 두 가지를 제안한다.

먼저 대학정책의 배를 언덕 위로 끌어올리기 바란다. 1453년 당시 21세였던 오스만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는 72척의 전함을 갈라타 언덕으로 끌어올려 골든 혼으로 진입시켰다. 비잔틴 제국을 무너뜨리고 세계사에 한 획을 그은 기상천외의 발상이었다. 우리도 소수 관료, 학자의 몫으로만 여겨온 대학정책 수립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한다. 실패는 충분히 맛보았다. 이제는 한국 대학정책의 배에 승선한 모든 학생들과 젊은 학자들이 사공이 돼 구태에 안주하는 기득권의 언덕을 넘어야 한다. 배를 산으로 올릴 후속 세대의 목소리를 제대로 수용한 대학정책이 마련된다면 4차 산업혁명을 공략하는 일도 한결 쉬워질 것이다.

다음은 평가지표를 평가자가 만들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는 일이다. 대학이 기본 요건을 갖춰 각자의 발전 방안과 정부 지원 규모를 스스로 제안하도록 하고 정부는 대학이 제시하는 발전계획을 검토 및 그 실천여부를 확인해 지원 규모를 결정한다. 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평가방법이 정착되면 대학은 크기,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각자 최적의 발전계획으로 특성화의 길을 마음껏 걷게 될 것이다.

대학의 역할에 대한 우려가 많아도 정부는 대학을 중심으로 전문인력 양성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한다. 대학이 우리 사회의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면 발상의 전환으로 구태를 벗어야 한다. 새로 생긴 정부의 교육 관련 기구는 당연히 대학이 거듭나기를 도와야 할 것이다. 우리의 노력에 따라 밀려오는 산업혁명이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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