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국 대학공공성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대다수 비정규교수가 반대하는 시간강사법 시행이 내년 1월로 다가온 가운데, 전국 대학의 비정규교수들이 10월 말부터 청와대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대량 해고와 교원 간 차별의 우려를 제기하며 종합적 비정규교수 대책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시간강사법은 지난 2011년 당사자인 비정규교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됐지만, 개정 후 시행도 하지 못한 채 2017년 말까지 3차례나 유예됐다. 입법부인 국회가 교수의 비정규직화와 강사의 대량해고, 알맹이 없는 처우 개선이라는 입법 취지와는 상반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당사자들의 문제 제기에 결국 강사법의 시행을 스스로 유예했다. 거기에 더해 입법사상 유례없는 3차례의 시행 유예 사실은 이 법의 심각한 결함을 방증하는 것이다.

고등교육의 어두운 그늘인 시간강사 제도는 반세기 전 박정희 정권에 의해 만들어진 대표적 교육적폐 중의 적폐다. 그동안 대학과 학생 수는 늘어났지만 강의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비정규교수의 고용 불안과 저임금 등 열악한 처지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대학들의 예산 규모가 늘어나고 몸집을 불리는 상황에서도 비정규교수들은 방치돼 왔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대우 한 번 받아보지도 못한 비정규교수들이 최근에는 대학 구조조정으로 교육현장에서 밀려나기까지 하고 있다. 1주기 대학구조개혁 과정에서 교육부가 전임교원 강의담당비율을 대학 평가에 반영함으로써 전임교수의 강의 시수는 많게는 2배 가까이 늘어난 반면, 비정규교수들은 설 자리를 잃고 대책없이 쫓겨나고 있다. 그 수가 무려 2만명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비정규교수 문제의 원죄는 오랫동안 이 문제를 방치해 온 정부와 국회에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한 책임 역시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정부와 국회가 져야 할 것이다. 

법률의 시행이 이제 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만큼 비정규교수들의 상황이 절박하다. 문재인정부와 국회는 비정규교수에 대한 종합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국가가 생활 임금을 보장하고, 비정규교수의 처우와 권리, 재계약에 관한 사항을 법률에 명시하는 등 제도적 방안이 구체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법률이 개정되더라도 문제는 또 있다. 하위 법령인 시행령을 통해 책임시수를 주 9시간 이상으로 강제할 경우 강의 몰아주기가 발생함으로써 고용의 안정화라는 입법 취지와는 달리 강사의 대량 해고를 초래하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대책이 사전에 강구돼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재정이 문제다. 비정규교수의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을 위해서는 결국 재정부담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립대학 중심인 한국 대학의 생태계에서 개별 대학에 재정 부담을 떠넘긴다면 애써 마련한 대책의 실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학생 수 감소와 구조조정으로 대다수 대학의 재정적 여력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현실적 대안은 정부의 재정적 뒷받침이다. 

이제 공은 또 다시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는 구조적 결함을 내포한 기존의 시간강사법을 폐기하고 국회 내 특위를 구성해 올바른 방향으로 대체 입법을 추진하기 바란다. 아울러 시간강사법 문제가 단순히 비정규교수의 고용과 처우 개선에 대한 논의로 끝날 것이 아니라 고등교육 재정의 확충과 함께 국가의 책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의 정책적 대전환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한 정부와 국회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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