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고려대서 ‘제2회 미래대학포럼’ 개최…서울 주요 10개 대학 총장들 머리 맞대

▲ '제2회 미래대학포럼'이 15일 고려대에서 열렸다. 이날 서울 주요 10개 대학 (부)총장을 비롯해 교무위원들이 참석했다. (사진=고려대)

[한국대학신문 천주연 기자] “대량생산 체제의 산업구조에 걸맞는 20세기형 인재를 배출해온 대학의 역할은 이미 그 한계에 다다랐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대학은 엄청난 시대적 변화의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21세기 지식사회에서 대학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대학들이 미래사회를 개척하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함께 길을 찾아가야 한다. 이것이 곧 대학의 책임이다.”

서울 주요 10개 대학 총장들이 21세기 문명사적 대전환기를 맞아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고 한 차원 높은 성장을 위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미래대학의 길을 찾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15일 고려대 백주년기념삼성관 국제원격회의실에서 열린 ‘제2회 미래대학포럼’에는 염재호 고려대 총장, 조인원 경희대 총장, 박종구 서강대 총장, 정규상 성균관대 총장, 강정애 숙명여대 총장, 김용학 연세대 총장, 김혜숙 이화여대 총장, 김창수 중앙대 총장, 김현택 한국외대 대외부총장, 이승철 경영부총장 등 서울 주요 10개 대학 (부)총장을 비롯한 교무위원들이 참석했다.

먼저 ‘전환시대의 대학의 본령-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주제로 기조발제를 맡은 조인원 경희대 총장은 대학의 본령 즉, 무엇을 하는 곳이며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급속한 산업화가 초래한 기후변화와 환경 위기, 인공지능과 같은 첨단기술이 상징하는 문명사적 전환 앞에서 대학의 역할과 책무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 총장은 대학은 학문을 하는 곳이며, 크게 △학문을 위한 학문인 순수학문, 기초학문으로서의 가치 △인간과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인간적 가치 △사회가 요구하는 실용적 가치 등을 추구해왔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학문의 세 층위의 가치가 얼마나 조화를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결국 대학의 미래가 결정되고 대학의 본령이 지켜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 총장은 “사회는 대학에 당장 일터에 투입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 달라, 직업교육을 시켜 달라 등의 기능적 요청을 한다. 각종 프로젝트와 산학협력을 활발히 할 것을 요구한다”면서 “학생들을 지도할 때 이론과 철학, 사상에 대한 얘기를 하면 간혹 학생들이 굉장히 따분해하면서 이 내용들이 (자신이) 취업하고 직장생활 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실용적 가치가 강조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학은 사회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될 책무를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만 하는 곳은 아니”라면서 “전통적으로 대학은 무엇보다 학문을 하는 곳이다. 현실의 단기적, 기능적 필요를 넘어 균형 있는 가치의 배분과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대학의 미래는 더 나은 개인과 사회, 세계의 미래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특히 조 총장은 환경은 나날이 훼손되고 지구는 인류의 소비를 감당할 수 없는 ‘지구환경 초과일(Earth Overshoot Day)’가 다가오고 있는 이 시점에서 결국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대학은 학문과 평화, 공영의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것이 대학이 품어야 할 근본 책무이며 미래의 대학의 역할과 책임이라는 것이다. 그는 “적지 않은 석학과 문명전망 기관이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100여 년의 기간 내 인류는 기로에 서게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면서 “기성세대, 기성사회는 그간 누려온 문명의 혜택보다 더 많은 혜택을 미래사회에 물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명의 지속가능한 번영을 위해서는 학문의 실용적 가치도 좋지만 우리 미래세대도 함께 학문의 인간적 가치를 고민할 수 있게끔 여러 가지 지식과 지혜, 또 21세기가 요청하는 지식 패러다임의 큰 전환이 시급히 요청되는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 조인원 경희대 총장(왼쪽)과 염재호 고려대 총장이 기조발제자로 나서 발표를 했다. (사진=고려대)

이어 염재호 고려대 총장의 ‘대학의 미래와 사학의 미래’라는 주제로 두 번째 기조발제가 이어졌다. 염 총장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교육밖에 없다, 즉 교육구국’이라는 정신에서 출발한 고려대를 포함한 우리나라 사학들이 지난 20세기 큰 역할을 담당해왔다며 정부의 사학 정책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의견을 개진했다.

염 총장은 “지난 50년 동안 전 세계 경제가 평균 6.6배 성장한 반면 우리나라는 400배의 경제성장을 이뤘다. 정부의 역할도 있었지만 우리 스스로 교육을 통해 나라를 일으켜야 된다는 생각로 출발했던 사학의 역할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국가가 취학 전 아동과 고등교육에 대해 전적으로 지원하고 부담하는 것이 기본적인 철학인데 우리나라는 국가가 힘이 없었기 때문에 사학이 이 일을 담당해왔다. 그러나 지금 사학의 현실은 규제와 무지원으로 점철돼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IT기업들이 전 세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가운데 그 기반이 되는 이공계에 대해서도 국립대학과 사립대학 구분 없이 정부가 나서서 조건 없는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1980~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교육용 기자재, 기초실험장비에 대해서는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을 구별하지 않고 다 지원해줬다. 지금은 경쟁을 통한 사업비 지원으로 이에 대한 지원은 현재 전무하다”면서 ”8년 동안 등록금이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사학 자체적으로 교육용 기자재 등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정부가 아니라면 기업에서라도 나서야 한다고도 했다. 특히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 같은 경우는 기술이 없으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해 있는데 자체 연구소를 열 수 없는 경우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대학 안에 랩을 만들고 연구실을 만들어 같이 연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럴 경우 건물이나 인프라 투자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100% 세제혜택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염 총장은 21세기의 대학의 역할에 대해서도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만들어야 되는 곳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대학에서는 토론하고 문제를 제기, 풀어나가는 곳으로의 획기적인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형화된 지식을 전달하는 데는 이미 MOOC 등 다양한 온라인 교육이나 다른 소스를 통해 충분히 얻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구체적인 실행방안에 대해 10개 대학이 공동캠퍼스를 구축, 디자인 씽킹·시스템 씽킹·크리에이티브 씽킹 같은 미래지향적인 과목 개설을 함께 하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겠다고 말했다.

▲ 김용학 연세대 총장의 사회로 진행된 좌담회에서 김혜숙 이화여대 총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인원 경희대 총장, 염재호 고려대 총장, 김혜숙 이화여대 총장, 김창수 중앙대 총장, 김용학 연세대 총장. (사진=고려대)

이어진 좌담회에서는 김용학 연세대 총장이 좌장을 맡았으며 김혜숙 이화여대 총장과 김창수 중앙대 총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김창수 중앙대 총장은 사학의 미래가 곧 대학의 미래고 국가의 미래이며, 대학정책의 출발점이자 종착점, 근간 또한 사학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총장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들은 일제강점기 하에서 민립대학 설립운동을 통해 민족교육이나 구국운동을 하기 위한 차원에서 설립됐다. 일제로부터 해방, 산업화의 과정, 최근에는 민주화의 과정에서 사학의 역할은 컸다”면서 “이제 국가가 과거 사학에 진 빚을 갚을 시점이 된 것이 아닌가. 국회, 정부가 나서서 사학에 진 빚을 진정 인정하고 어떻게 갚을까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국가와 지역사회에 필요한 대학의 사회적 책무성도 강화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미국대학은 대학과 국가 간의 사회계약을 통해 발전했다. 1세대는 국가안보를 위한 연구중심대학, 2세대는 교육을 위한 대학과 국가의 동반자적 관계 형성, 3세대는 시민사회나 학습사회 육성을 위한 평생학습형 대학으로 발전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지구온난화 문제, 인구절벽 문제, AI 등 사회적 난제들을 대학과 국가 간의 계약을 통해 문제 해결의 해법을 내놓는 등 대학이 사회적 책무성을 수행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의 실용적인 학문 중심의 근대 학문체계를 유연화 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혜숙 이화여대 총장은 “산업사회가 열리면서 정착된 공학, 의과대학, 법학 등 실용학문 중심의 학문체계, 혹은 학과단위 구분 등의 하드웨어적인 시스템이 앞으로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데 적절한가 생각해봐야 한다”고 문제제기를 했다.

또한 근본적으로 대학이 무엇을 하는 곳인가에 대한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데서는 조인원 총장의 발제에 깊은 공감을 표했다. 김 총장은 “대학은 크게 교육, 연구, 봉사 등 3대 기능을 갖고 있다. 최근 MOOC를 비롯한 온라인 교육 등 다양한 종류의 교육 시스템들이 등장하고 있다”면서 “대학이 독점적으로 누려왔던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앞으로도 지속할 것인가. 만일 다르다면 어떤 교육을 담당할 것인가”라고 화두를 던졌다.

이어 “연구 부분도 굉장히 강조해왔지만 이미 유수한 첨단의 기업들은 자체 내 연구소를 갖고 있는 상황이다. 산학협력이나 기업의 필요에 의해서 대학에 연구비를 주고 연구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잘못하면 대학이 기업의 연구하청기관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면서 “대학 본연의 혹은 인류 사회나 미래사회를 선도할 수 있는 지식 생산 기능에 비춰봤을 때 인간의 창의성 등이 근간이 되는 새로운 연구들이 과연 가능한 조건을 우리가 갖고 있는가 생각해봐야 한다. 그런 종류의 연구가 대학 안에서 가능하게 되기 위해선 어떠한 노력을 해야 될 것인가가 미래대학이라는 화두 안에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겠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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