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빈(본지 논설위원 / 명지대 교수, 미래정치연구소장)

2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의 명칭이 ‘대학기본역량진단’으로 변경될 예정이지만 대학들의 불만과 평가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교육부는 새로운 방식이 ‘평가’가 아닌 ‘진단과 지원’으로 변경됐고 정원감축 목표가 당초 5만명에서 2만명으로 줄었기에 대학의 부담은 완화됐다지만 피로에 지친 대학 현장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기만 하다.

가장 본질적인 의문은 2014년 1주기 구조개혁평가의 명분인 ‘대학교육의 질 개선’에 관한 것이다. 1주기 평가를 통해 대학정원이 5만 여명 감소했고 정부의 각종 재정지원 사업이 연계·지원됐지만 대학교육의 질이 과연 과거에 비해 나아졌는지 동의하기 어렵다. 입학정원 감축과 등록금 동결, 대규모 교수 충원 등으로 재정 압박에 시달리는 대학들이 평가에 대비한 준비 작업에 교수와 행정인력을 대거 투입해 학생들을 위한 실질적인 보살핌은 뒷전이 되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평가 준비에 시간을 빼앗겨 본연의 업무인 연구와 강의를 소홀히 하게 돼 교육 환경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동원이 쉬운 젊은 교수들이 대거 평가 준비에 내몰려 신진 소장학자로서 연구의 뿌리를 내리는 작업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또한 교수들의 친밀한 학생 지도는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교육의 질은 일차적으로 교수들의 연구·교육의 질적 제고를 통해 향상될 수 있는데 연구실적은 아예 평가의 지표에서 빠져있고 교육영역은 강의의 질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각종 증빙 자료로 평가를 받는다.

정부의 대학에 대한 강제적이고 획일적인 평가는 대학의 학문적 자율성을 말살해 대학교육의 질을 낮추고 대학교육의 미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설립형태별, 규모별, 지역별 특성은 간과한 채 전국의 모든 대학들을 획일적인 잣대로 하나의 모형에 맞추도록 강요하는 것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화 시대에 역행하는 일방주의적인 발상이다. 대학들이 획일적 지표의 평균값 이상의 수치를 만들기 위해 무한경쟁을 하다보면 여타 대학들 또한 동시에 노력해 어느새 평균값은 올라가게 되고 또 다시 무한투입과 무한경쟁을 반복하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이러한 상황에 지친 대학들은 자율성, 미래 투자, 특성화, 교육의 질 등 고등교육의 중요한 가치와 비전에는 관심을 둘 여력이 없어지고 교육부의 정치적 통제와 지배에만 길들여지게 될 것이다.

미래 교육에 대한 비전과 가치가 실종된 대학 평가와 이에 따른 무한경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대학들은 평가를 위한 평가에 매몰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학의 역할과 소명은 소홀히 하고 평가를 잘 받아 정원감축과 재정지원 사업에서 불이익을 피하는 데에 온통 신경이 곤두서 있다. 평가를 통해 강의의 질이 나아지고 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관심보다는 강의계획서와 강의평가 항목이 구조개혁평가 지표에 만점을 맞게 만들어져 있는지, 학생상담이 학생들의 생활·진로지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 보다는 관련 행정조직이 만들어져있는지, 상담건수가 충분하며 보여줄 수 있도록 수치로, 기록으로 남아있는지가 중요하다. 전임교원 확보율 수치를 채우기 위해 신분과 처우가 열악한 각종 형태의 교수직을 양산해 교육 환경은 더욱 피폐해졌다.

수치만을 강조하는 획일화된 대학평가로 대학들은 불필요한 무한경쟁에 내몰리고 대학교육의 질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학문의 자율성을 빼앗긴 대학은 더 이상 대학으로서의 존재의 이유와 가치가 없다. 연구와 교육의 존엄성과 다양성이 존중돼야 대학의 경쟁력이 살아나 국가의 경쟁력이 제고될 수 있는데 관료적 시각의 대학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인한 대학의 위기와 미래 생존은 대학의 자율적 경쟁과 시장 원리에 맡겨두고 교육부는 대학과 법인의 일탈행위를 감시하고 정부가 배정한 예산과 사업을 행정적으로 지원하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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