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혁 숭실대 교수(법학)

한국연구재단 “동의 받은 일부만 공개하며 저작권 침해 아냐”
임상혁 교수 “정책 추진 방식에 깃든 저작권 침해 소지...연구자 경시”

▲ 임상혁 숭실대 교수

한국연구재단의 한국학술인용색인(KCI) 원문 무료 공개 정책이 시행된 것은 지난 2012년이다. 한국연구재단은 KCI에 수록된 일부 논문의 원문을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오픈 액세스(Open Access)에 무게를 둔다는 취지다.

한국연구재단 통계에 따르면 올해 현재 KCI에 등록된 논문은 138만여 편이다. 원문 공개가 시행된 2012년 당시 이들 중 10만여 편만이 공개됐으나, 올해는 57만여편으로 늘어났다. 논문 공개 방식을 놓고 한국연구재단과 민간 학술 정보 서비스 기업들이 논쟁을 벌여 오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은 KCI를 통해 공개하는 논문은 “국민의 세금으로 구성된 연구비 지원 사업을 통해 작성된 논문과 학회로부터 공개 동의를 받은 논문에 한정한다”며 저작권 침해 주장을 부인한다. 오히려 오픈 액세스를 통해 학술 정보를 사회에 공개하고 학술 발전을 이끌어나가는 방식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연구재단의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 논문이 최근 발표됐다. 임상혁 숭실대 교수(법과대학)가 쓴 <학술논문의 오픈 액세스와 저작권 양도>는 학술 논문의 주인이면서도 이를 둘러싼 논쟁과 대립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버린 연구자의 입장에서 접근한다. 그는 오픈 엑세스 운동을 지지하지만 한국연구재단의 정책은 오픈 액세스의 본 취지에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임상혁 교수를 지난 21일 숭실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아래는 임 교수와의 일문일답.

- 연구에 착수한 배경이 무엇인가.
“한국연구재단의 정책을 비판하는 연구를 하는 것은 한국의 학자로서 그리 유익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어쩔 수가 없었다. 한국연구재단이 연구자들의 논문 저작권을 양도 받아 학술 저널을 공개하는 정책을 ‘오픈 액세스’라고 말하는 데 대하여 ‘설마 그럴 리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다페스트 선언을 보더라도 오픈 액세스는 연구자들이 학술 논문의 저작권을 스스로 지키려는 운동이라 할 것이지 그것을 버리자는 방식이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벌어지는 이른바 오픈 액세스는 저작권을 포기시켜 논문을 공짜로 보자는 것이 오픈 액세스의 기본 목적인 양 논의되고 있다.”

- 부다페스트 오픈 액세스 선언의 의의가 무엇이라고 보는지.
“오픈 액세스에 대한 방향성을 표명한 것으로 평가받는 대표적인 문건이다. 이에 따르면 저널의 자비 출판과 아카이브를 통한 자율적인 공유를 들고 있다. 오픈 액세스는 생산자가 논문을 쓰는 과정과 출판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다 지불하고 소비자는 그냥 이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연구자들에게는 힘든 ‘출혈적 선택’이다. 세계에서 손꼽는 대형 출판사들이 유명 학술지를 독점하고 가격을 높게 책정하여 연구 환경을 어렵게 만드는 탓에 하게 된 것이다. 이는 학자 집단이 학술 논문의 생산자이면서도 가장 주요한 소비자이기에 해 볼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 저작권에 제약을 받지 않고 누구나 학술 논문을 이용한다는 게 오픈 액세스가 아닌가.
“돈 문제를 떠나 저작권이라는 것은 연구자의 창의성과 노력으로써 생성되어 연구자의 학문적 인격을 표상하는 권리이기도 하다. 이것을 주변의 압력 때문에 포기되도록 하는 것이 오픈 액세스 운동일 리가 없다. 저작권을 저작자가 그대로 지니면서 무료로 누구나 마음대로 이용하도록 할 수 있다. 카피레프트(Copyleft)’ 운동도 있지 않은가. 한국연구재단의 원문 공개의 문제는 권리자의 이러한 자발적 운동을 기초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권리가 없는 기관이 평가 권력을 기반으로 하여 권리자들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한다는 데 있다.

- 한국연구재단의 원문 공개가 학술지 평가와 맞닿아 있다는 것인가.
“한국연구재단은 학술지와 논문을 평가하는 데 있어 SCI 등의 저널에 실리는 것을 제일로 매긴다. SCI급 학술지에 논문을 실어야 하는데, 작년까지 이를 관리하는 곳은 독점 출판사로 꼽히는 톰슨 로이터스 계열이었다. 중요한 것은 SCI로 가는 순간 오픈 액세스 학술지에서 이탈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100여 개가 넘는 최우수 학술지가 국외 대형 출판사로 넘어가고 이들 대부분이 오픈 액세스 하지 않는 저널로 바뀌었다. 결국 이러한 한국연구재단의 평가 정책은 역행할 뿐 아니라 오랜 동안 오픈 액세스의 주적인 국제 독과점 출판사를 도와주고 있는 셈이다. 시작은 선의였겠지만, 오픈 액세스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은 뚜렷하다.”

- 학술논문은 비영리 목적이므로 저작권이 제약된다는 주장도 있지 않나.
“영리 목적인지 아닌지는 저작권과 관계가 없다. 비영리 출판물에 대한 저작권이라 하여 유린해도 된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공적 자금이 투입되었기 때문에 저작권 행사가 제약된다는 주장도 있다. 영화 등 많은 예술 분야에 공공기금이 투입되는 예가 적지 않은데, 어느 누구도 그 때문에 저작권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는다. 예술품의 본질은 작가의 창의성에 있다고 할 것이지 자판기처럼 돈만 넣으면 당연히 나오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학술 논문도 마찬가지이다.”

- 부다페스트 선언 취지에 맞는 오픈 액세스를 가로막는 시급한 문제가 무엇인가.
“평가가 문제다. 원칙적으로 한국연구재단은 전문적 평가 능력을 가진 기관이 아니기에 SCI 등을 객관적 기준이라는 명목으로 절대시한다. 해외에서도 SCI, SSCI 등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 예는 없고 참고 자료로 쓴다. SCI 등에 대해 공정성이나 적절성 시비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제일로 삼는 바람에 학자들이 정작 우리의 문제에 천착하기보다는 SCI에 실릴 수 있도록 해외 동향이나 다른 나라의 문제에 눈을 돌리게 된다면, 우리 연구자 집단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 논문에서 연구자들의 각성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는데.
“지원과 평가의 양날의 검을 가진 한국연구재단의 정책이 어느새 연구자 경시 풍토로 이어지지 않았는지 걱정된다. 지금은 연구재단이 논문의 원문 정보를 영리업체에 나누어 주겠다고까지 발표하는 보도도 접하게 된다. 범법의 우려까지 있는 말도 서슴없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우리 연구자들이 평가 정책에 길들여지면서 우리의 인격이 배인 권리마저 무시되는 지경까지 이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처량함마저 느껴진다. 연구 현장에서의 각성도 필요하다.”

■ BOAI(Budapest Open Access Initiative)란...
학문 저술 등이 상업화되면서 독과점의 경향을 보이는 것을 억제해 보려는 오픈 액세스(Open Access) 운동을 확립한 선언이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모인 연구자들이 지난 2002년 내놓은 선언인 부다페스트 오픈 액세스 이니셔티브(Budapest Open Access Initiative)에서 방향성을 확립했다. 연구자 상호 심사가 이뤄진 연구 논문의 자유로운 이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연구자 아카이빙으로 웹을 통해 스스로 논문을 공개하며, 누구나 제약 없이 연구 논문을 이용할 수 있는 오픈 액세스 저널을 만들어 참여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이용자가 저작물의 원문을 읽고, 내려 받거나 복사, 배포, 출판, 검색, 링크를 허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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