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기본역량진단 , 자율개선대학 전국경쟁·재정지원 연계·대학 운영에 미칠 영향 의견 엇갈려

▲ 지난 1일 공대위가 대학 기본역량진단 공청회 중단을 촉구하자 이에 동조한 참석자들이 공청회장을 빠져나가고 있다.(사진 = 구무서 기자)

[한국대학신문 대학팀] 교육부가 30일 박근혜정부의 2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 대신 ‘대학 기본역량 진단’으로 명칭을 바꾸고 지표를 확정했다. 그러나 지표가 여러 차례 공개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고, 자율개선대학 외에는 평균 정원감축 비중이 늘어나고 일반재정지원도 받을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대학가의 체감도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대학가에서 요구해왔던 쟁점을 정리해 반영했다는 평도 나왔다. 법인의 책무성은 향후 개선계획을 비중 있게 반영하고, 재정지원사업을 통해 학생을 지원한 실적도 인정하기로 했다. 시간강사들이 요구해왔던 ‘전임교원 강의 담당비율’ 지표는 삭제됐다.

천명훈 가톨릭관동대 총장은 “지난번에는 절반을 하위대학으로 분류하는 안이었는데 40%로 줄었고, 그 중에서도 역량강화대학은 특수목적 사업을 받을 수 있단 점에서 대학들의 의견을 반영했다고 생각한다”며 다행스럽다는 소감을 밝혔다.

가장 큰 변경사항은 자율개선대학을 선정 비율을 ‘60% 이상’이라고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일반대와 전문대 모두 5개 권역으로 나눠 자율개선대학을 선정하는데, 권역별 유불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반영해 60% 중 50%는 권역별 경쟁, 10%는 전국 단위에서 점수로 선발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경쟁이 치열한 수도권과 동남권은 우선 안도하는 눈치다.

서울지역 A 사립대 기획처장은 “수도권이 가장 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배려책이라고 본다”면서 “경쟁이 심하지 않은 대학들도 평가에 적극 임할 수 있도록 오히려 전국 평가 비율을 확대해야 형평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B 국립대 기획처장 역시 “서울지역과 경기인천 지역 대학들이 함께 경쟁하면 불리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는데 이제 겨우 자율개선대학 가능성이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지방 대학들은 권역별 경쟁을 강화해야 한다며 다소 불만을 토로했다. 김도종 원광대 총장은 “권역별 평가에 맞지 않는 새로운 기준이 생겼는데, 일반재정지원의 한 기준으로 삼으려는 의도처럼 보이지만 새삼스럽게 나눌 필요는 없다. 권역별 평가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진단과 연계한 일반재정지원, 환영은 하지만… = 재정지원방식에 대해서는 ‘기대 반 불안감 반’이다. 2019년부터 일반재정지원 방식을 도입해 대학들이 각자 발전계획에 따라 폭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점은 환영하면서도, 교부금법 등 법적으로 안정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문재인정부 임기가 끝난 이후 차기 정부에서 일반재정지원 기조가 이어질 수 있을지는 불안한 기색이다. 아직 도입 첫 해 예산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들은 입학금을 폐지하기로 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문재인정부 임기 내에 일반재정지원 규모를 늘리겠다고 밝혔지만 법정 교부금이 가장 확실한 대안으로 보고 있다.

이남호 전북대 총장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또 장기계획을 세울 수 있는 ‘교부금(block grant)’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은 바람직하다”며 “다만 실제로 예산이 증액돼 뒷받침돼야 의미가 있지, 그렇지 않으면 특목사업 예산 지원만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강춘 동의대 기획처장은 “등록금 동결로 인해 대학들이 재정적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일반재정지원을 확대한다는 것은 환영한다”면서도 “정부 기조가 바뀌면 언제든지 다시 특수목적지원으로 바뀔 수 있다. 때문에 앞으로도 일반재정지원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특수목적사업은 교육과 연구, 산학협력으로 통폐합된다. 구체적인 사항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다만 중복지원 우려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수도권 소재 대학이거나 지역에서도 거점 역할을 하는 대형대학들은 교육과 연구, 산학협력 기능을 모두 강화할 계획이기 때문에 중복지원도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지방의 중소규모 대학들은 각 대학이 상생할 수 있도록 교육중심대학과 연구중심대학, 산학협력 중심대학 등 특성화 방향을 설정하고 가능한 중복을 피해 그에 맞게 지원해야 한다고 답했다.

서울의 한 대규모 사립대 기획처장은 “특정 대학이 연구중심인지, 교육중심인지 엄밀히 구분하기 어렵고, 선진국 대학을 보더라도 두 기능을 모두 강조하고 있다. 요즘과 같이 산업현장을 중시는 시대에는 산학협력도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만 택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밝혔다.

심재륜 부산외대 기획처장은 “중복지원이 가능하게 하되, 한 대학이 모든 혜택을 독점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 민주성과 책무성 지표 도입, 실효성 거둘까= 한편 대학의 민주성과 사회적 책무성을 높이고 문재인 정부의 '사학비리 척결' 국정과제에 맞춰 1단계 평가에 도입된 '법인 책무성'(2점), '구성원 참여·소통'(1점) 지표와 부정비리 대학에 대한 페널티 강화 지침의 경우,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여부가 관건이다.

법인 책무성 지표는 대학의 법인전입금과 법정부담금 부담 실적(2017년)과 함께 확보계획(2018년)을 평가한다. 구성원 참여·소통 지표는 1단계에서 정량평가와 정성평가가 병행된다. 교육부는 대학평의원회와 등록금심의위원회, 재정위원회(국공립대), 개방이사 추천위원회(사립) 등 학내 심의 또는 의사결정 기구에 각 구성원을 대표하는 이들이 참여하는지, 민주적인 의사결정과 함께 투명하게 공개하는지 계획을 위주로 살필 예정이다.

최근 고등교육법에서 모든 대학의 평의원회 설치를 의무화 한 데 따라 대학평의원회를 새로 구성하고 설치해야 하는 국립대는 난관이 예상된다. 직원과 학생의 참여비율 논의가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대학평의원회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바로 잡는 것이 먼저라는 의견도 복수 제기됐다. 박순준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사장(동의대 교수)은 “평가에서 외면당했던 민주성 지표가 반영됐다는 점에서 환영한다. 그러나 세부적인 평가 내용에서 그동안 대학평의원회가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는데 이들의 작동 방식을 평가한다는 게 다소 의아하다”면서 “대다수 사립대 대학평의원회는 학교 측의 ‘거수기’ 역할을 했다는 게 중론이다. 민주성 평가에 있어 교수와 학생 등 구성원 단위의 자치 조직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살피는 게 낫다”고 생각을 밝혔다.

김병국 전국대학노동조합 정책실장은 “과거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실제 대학들은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여러 가지 편법을 동원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대학 운영의 민주성을 살피는 지표가 신설됐다고 해서 대학이 갑자기 변할 것인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2015년 3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적발·조치된 대학의 부정비리 정도에 따라 감점·등급 하향 페널티를 강화하는 데 대해서는 대학 구성원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정상화 단계의 대학이 회생하기 어렵게 하고,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국가장학금·학자금대출 기회가 가로막히기 때문이다.

이선희 이화여대 교수평의회 의장은 “우리 대학은 지난해 정유라 사태 등 집행부의 부정비리 사실이 드러나 총장 등이 물러났고, 새로운 집행부가 구성돼 열심히 하려는데 패널티가 적용될 예정이어서 새로 출발하려는 의욕을 떨어뜨린다”면서 “교직원과 학생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감점 부분이 정비돼야 한다. 일부가 저지른 비리 때문에 모두가 연대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신희영 경주대 교수협의회장 역시 “부정비리를 저지른 자에게 책임을 물어야지, 학교에게 책임을 물면 교직원과 학생이 피해를 본다”면서 “대학의 비리를 고발하는 활동을 하면 할수록 학교가 죽는 구조라면 대학이 파행적으로 운영되도 손 놓고 봐야 한다는 말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선재원 평택대 교수회 사무처장은 “법인이나 대학본부는 부정비리가 드러나면 감점 당해 평가가 점수가 낮아진다는 논리로 전체 구성원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무기가 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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