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재 삼육보건대학교 교수/교수학습센터장

제목이 도발적이어서 눈길을 끄는 영화가 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그렇다. 영화를 다 본 후에야 악마와 프라다란 브랜드가 왜 영화 제목이 됐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영화는 2006년 상영작이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웰 메이드 영화다.

영화 속 이야기는 최고의 패션 매거진 ‘런웨이’에 새로 입사한 주인공 ‘앤드리아’(앤 해서웨이)와 절대 권력을 가진 카리스마 넘치는 편집장 ‘미란다’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대학을 막 졸업한 ‘앤드리야’는 언론인을 꿈꾸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그러던 중 세계 최고의 패션 매거진 ‘런웨이’에 기적같이 입사하게 된다. 문제는 ‘앤드리아’가 패션과 명품 등 뷰티산업에 별 관심이 없고, 스스로의 외모를 가꾸는데도 별 재주가 없다는 점. 게다가 그녀의 직무는 기사작성과 같은 글 쓰는 일이 아니라 악마처럼 자기중심적 행동과 무리한 지시를 일삼는 편집장을 보좌하고 사생활까지 지원하는 비서업무다. ‘앤드리아’는 편집장 ‘미란다’의 무시무시한 질타에 못 이겨 회사를 그만둘 위기에 처하기도 하지만, 경력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1년은 버텨보기로 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는 악마처럼 묘사되는 편집장 ‘미란다’란 캐릭터 속에 있다. ‘미란다’란 인물은 패션과 삶에 있어 스스로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있는 존재다. 최고의 잡지를 만들기 위한 그녀의 집념은 과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미란다’의 아랫사람을 대하는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외모 비하 발언을 차치하더라도 그녀는 자신이 설정한 높은 기준을 타인에게도 그대로 대입함으로써 상대방이 만약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가차 없이 질책한다. 사실, 이러한 특성은 일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특성이기도 하다. 특히 자수성가형 인물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랫사람이 일을 잘 못하는 경우 쉽게 비난하기 마련이다. 미란다가 딱 이러한 유형에 속해있다.

하지만 만약 미란다의 시점으로 앤드리아를 본다면 이 영화는 새롭게 다가온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미란다는 자신이 업무에 전념할 수 있기 위해 그녀의 일상을 완벽히 지원할 수 있는 유능한 비서를 찾는 내용이 나온다. 미란다의 절실함 때문에 이전과는 다르게 그녀는 앤드리아를 직접 인터뷰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앤드리아는 패션에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미란다는 자신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장점을 어필하는 당당한 패기가 마음에 들었다. 결국 앤드리아를 채용한다. 아마도 미란다는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는 인재를 찾는데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괜찮은 원석을 찾은 후 가르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문제는 미란다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에 서툴다는 점이다. 최근 나는 미란다의 입장에서 영화를 다시 보았다. 그리고 미란다에게는 학습동기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학습동기가 증가하면 학습자의 학습 태도 및 참여는 자연히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모든 교육적 활동에는 학습동기가 중요하기 마련이다. 학습동기를 증진시키는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국 교사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전 고려대 교수였던 임규혁에 따르면 교사가 학습동기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열정과 교사의 온정과 감정이입(empathy) 그리고 교사의 기대 등이 중요하다고 한다. 특히 온정(Warmth)은 교사가 학생들을 인간으로서 대우하고 관심을 보여주는 능력이며, 감정이입은 학생들의 느낌과 그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다. 만약 미란다가 온정과 감정이입을 통해 앤드리아의 학습동기를 증진시켰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앤드리아는 입사 후 빠르게 회사의 가치와 문화에 녹아들었을 것이고, 미란다에게 큰 힘이 되는 비서로 일찍이 성장했을 것이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학 교수들도 논리적 사고가 중요한 업무가 주를 이루다 보니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서툰 사람이 많다. 하지만 더 나은 교육적 효과를 거두고 싶다면 학생과의 친밀감 등 정서적 측면에서의 연결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대학에서도 강의평가 점수가 낮은 일부 교수들을 대상으로 교수법 특강이나 수업 컨설팅을 반복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문화적 감수성을 향상시키면서 학생과의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줄 필요가 있다. 교수자의 열정도 물론 중요한 동기부여 요소지만 학습자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학습효과가 극대화되기 어렵고 오히려 미란다 같이 무시무시한 별명이 생길지 모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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