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갑과 을이 만나 회의를 하고 A라는 새로운 정보를 만들었다고 가정하자. 정보 A가 갑이나 을의 조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A는 조직에 가치가 있는 유용한 정보일 것이다. 이 정보는 조직에서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갑은 A를 즉각 문서로 작성해서 갑의 내부 조직에 보고했고, 조직에서는 A를 지식자산으로 등록해 내부에서 전파하고 활용했다. A는 왜곡 없이 정보가 필요한 조직 구성원에게 신속하고 폭넓게 확산된 것이다. 갑이 속한 조직은 구성원 모두가 이처럼 자신들의 활동 결과를 기록으로 정리해서 지식자산화하고 빅데이터로 활용한다.

반면, 을은 A에 대한 문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필요한 때에 조직 구성원에게 구두로 간간이 전파했다. 정보를 공유하는 범위는 굉장히 제한적이고 속도도 느렸다. 또한 정보가 조직구성원으로 전파될 때마다 조금씩 왜곡돼 A와는 전혀 다른 정보가 됐다. 결국 A는 을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다가 서서히 잊혀져갔고 조직에서는 A의 왜곡된 정보만 남았다. 을이 속한 조직은 구성원 모두가 을처럼 일을 한다. 자신들의 활동 결과를 기록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으로만 남는다. 그래서 을이 속한 조직의 정보시스템에 의미 있는 지식자산은 거의 없고 관리와 통제에 필요한 매뉴얼만 넘쳐난다.

당연히 갑이 속한 조직은 을이 속한 조직에 비해 조직적 역량이나 성과가 뛰어날 수밖에 없다. 기록의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다.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아 집을 짓듯 행정은 하나하나의 정보를 연결하고 축적해서 완성된다. 행정정보는 개인 또는 조직의 기억과 경험 밖으로 나와서 기록돼야 한다. 기록되지 않은 것들은 부정확하고 왜곡돼 전파되고 시간이 지나면 결국 소멸한다. 기록된 이후에야 그 기록이 행정시스템 안에서 살아 움직일 수 있다. 나아가 기록은 모든 조직, 특히 정부를 비롯한 모든 관료제 조직이 움직이는 근간이 된다. 헌법 제82조에는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써 하며, 이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다. 군사에 관한 것도 또한 같다.’라고 명시돼 있다. 기록된 문서로써 국법상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기록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조직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있다. 즉 기록된 최소단위 정보 자체의 일차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각 정보들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이차적 가치도 고려해서 평가돼야 한다.

을이 갑보다 가치 있는 정보를 창출해낼 수 있는 개인능력이 뛰어날 수 있다. 이는 개인 역량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조직적 차원에서는 기록할 줄 아는 능력 또한 매우 중요하다. 기록하는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조직 차원에서 구성원에 대한 기록의 의무화, 표준화된 문서 양식 제공, 문서 관리 및 활용시스템 등을 갖춰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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