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지 기자

[한국대학신문 주현지 기자] “애당초 내가 맡은 업무는 ‘시험지 채점’이었다. 하지만 교수의 지시에 따라 강의 교안을 만들기 시작했고 뒤이어 시험 문제 출제를 비롯한 여러 업무들까지 내 몫이 되었다. 6개월간의 노동에 대한 임금으로는 총 100만원이 전부였다.”

한 대학원생 조교의 푸념이다. 최근 그가 속한 대학원에서는 특정 단과대학 소속 교육조교의 임금을 일괄적으로 삭감했으며, 일련의 논의과정 없이 이를 통보했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 재정이 악화됨에 따라 이들의 임금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조교들의 항의로 허리띠를 졸라매려던 대학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이 사건은 대학 내에서 대학원생 조교의 입지를 확인할 수 있는 단적인 예다.

사실 대학원생 조교들을 향한 부조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들의 업무와 보수는 단 한 장의 근로계약서 없이 교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보통이다. 퇴직금이나 연차수당 등을 지급받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라고 한다. 설령 이러한 관행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할지라도 조교들은 ‘교수의 지시는 거스르면 안 된다’는 묵시적인 원칙을 따라야 했다. 이 같은 권력관계에 의한 침묵으로 조교 노동환경의 실상은 상당 기간 동안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조교들이 대학원생 자신들의 노동성을 주장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집단행동에 나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나섰다. 법원도 이들의 손을 들어 줬다. 

이러한 움직임에 발맞춰 이제는 국가 차원의 관심이 필요한 때다. 최근 교육부는 전국 대학원생 피해 실태 조사, 조교 가이드라인 제작계획 등을 밝혔다. 하지만 여태 이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어 진행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제도 개선보다 국내 대학원을 대상으로 조교의 노동환경에 대한 주기적인 전수조사가 필요하다. 근로계약 체결, 장학금 지급 여부, 임금의 평균치 등을 표준화해서 공개하는 것이 개선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이뤄지는 대학 측의 자발적인 개선은 덤이다.

국정감사에서 조교의 권리문제가 다뤄지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본격적으로 공론화가 되고 있는 만큼 개선의 여지는 다분하다. 기형적인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물꼬가 트여 물이 들어와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노를 저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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