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우 동반성장위원회 전문위원

셰익스피어는 “좋은 와인은 인간관계를 새롭게 만들어준다”고 예찬한 바 있다.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여유를 가지게 되어 정을 느끼게 된다고나 할까. 하늘이 내려준 선물로 칭송받는 와인은 서구문화의 결정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랑을 받아왔다. 와인은 종교의식에서도 자주 사용되었고 때로는 주요한 무역 품목이기도 했다.

가장 오래된 와인 관련 유물은 기원전 6000년께의 것으로 메소포타미아 지방과 카스피해 근방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또한 아라비아반도를 따라 이어진 해안선 부근에서는 포도씨와 저장용기 등의 유물들이 계속 발굴되고 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아르메니아 지역에서 바빌론으로 보내기 위해 선적되는 와인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볼 때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는 이미 와인이 하나의 산업으로 발달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아라비아 지역에서 가져온 포도나무를 나일강 하류의 델타지역에 심고 왕(Pharaoh)들이 와인을 즐겼음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나온다. 당시 이집트인들은 시신을 씻고 내장을 꺼낸 후 신체 내부를 깨끗이 닦는 데 와인을 이용했다. 많은 무덤에서는 시신과 함께 와인이 부장품으로 묻혔는데 이는 와인이 이집트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보여준다.로마인들은 굉장한 와인 애호가들로서 오늘날 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독일·북아프리카 등을 점령하고 그곳에 포도나무를 심어 와인을 생산했다. 점령지의 군단병사들에게 포도재배는 중요한 업무이기도 했다. 로마인들은 주로 강 주변의 계곡에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강의 계곡을 선택한 것은 △계곡의 경사면이 햇볕을 잘 받고 관개가 편리한 점 △운반을 위해 육로보다 강이 유리한 점 △강둑에 있는 숲을 제거하여 적군의 게릴라전이나 잠복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 등의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보르도는 세계 최고의 와인 명산이다. 가론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보르도는 와인 생산을 위한 천연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기원전 4세기에 로마군이 진출하면서 로마인들은 이 지방을 부르디갈라(Burdigala)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변형되어 오늘날 보르도(Bordeaux)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보르도는 ‘물가에 위치한 곳(Bord des eaux)’이 줄어든 말인데 항구라는 뜻이다. 보르도 지방에서는 로마시대 때부터 이미 포도재배가 왕성했다.

프랑스 와인을 이야기할 때 1855년은 기념비적인 해라고 볼 수 있다. 프랑스 제2공화국 이후 1852년 황제로 등극한 나폴레옹 3세는 국민의 인기를 얻기 위해 대대적인 국책사업을 벌인다. 그 일환으로 파리에서 세계만국박람회(Exposition Universelle)를 개최했다. 파리 엑스포는 1851년 세계 최초로 열린 런던, 더블린(53년), 뉴욕(54년)에 이은 네번째였으나 기존 엑스포가 기계류 중심의 신상품을 전시하는 것과는 달리 농산물과 예술 분야를 추가하여 기념비적인 사건이 되었다. 당시 정부는 보르도의 상공회의소에 부탁하여 보르도의 명산 포도주를 소개하도록 했는데 오늘날 보르도 와인의 명성은 이때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보르도 지방에서 생산되는 포도주의 품질이 좋은 이유는 토양·기후·포도품종, 이 세 박자가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토양은 비옥하지 않아 농사에는 부적합하지만 모래나 거친 자갈돌이 많아 배수가 잘되기 때문에 포도나무의 뿌리가 필요한 물과 양분이 흐르는 곳을 찾아 깊숙이 땅속을 파고들 수 있도록 한다. 따라서 다른 지역의 포도나무들보다 평균수명이 더 긴 장점이 있다.

이 보르도의 가론강변에 ‘카파 포르마시옹(CAFA Formations)’이라는 와인학교가 있다. 1986년 문을 연 이 학교는 호텔경영·요리와 함께 와인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와인스쿨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2년 과정의 소믈리에를 양성하는 과정이고 다른 것은 와인 관련 국제마케팅 3년 과정이다. CAFA 와인 스쿨은 프랑스 최초의 와인 전문학교로 프랑스 정부가 승인한 프로그램을 교육한다.

이 과정의 커리큘럼은 포도재배, 포도주 양조법, 시음기술, 포도주 마케팅, 포도주에 담긴 정신(spirit) 등 프랑스와 전 세계 와인 재배지역에 관한 지식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이 과정을 마치게 되면 와인 전문가 장인인 소믈리에 RNCP(전문 자격증 전국 등록부)에 등록된다. 이렇게 배출된 소믈리에는 와인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가진 전문가로서 활동하게 된다.

CAFA 와인학교는 보르도라는 와인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곳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그 명성에 걸맞게 계절별로 수많은 양조장(샤토) 방문을 통해 포도가 자라는 과정과 와인 제조방법·발효과정 등을 아주 상세하게 익히게 된다. 와인 국제마케팅과정은 학사학위를 취득하게 되는데 양조학(Oenology) 및 와인, 리큐어 및 샴페인 등 주류에 관한 전문지식을 익히고 국제적인 마케팅 교육을 추가로 이수하게 된다. 최근에는 와인 관련 사회적 책무(Stewardship)를 집중적으로 교육하고 있으며 이들이 성장하면 국제 와인업계에서 전문가로 활동하게 된다.

CAFA 와인스쿨은 소믈리에를 배출하는 것을 1차 목표로 한다. 소믈리에는 와인을 레스토랑에서 서비스하는 직업인을 지칭한다. 따라서 프랑스에서 소믈리에는 와인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와인을 서빙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CAFA 와인과정을 마치고 보다 전문적인 와인전문가가 되려면 대학의 양조학과의 부설과정인 DUAD를 졸업하면 와인 관련 최고 전문가로 활약할 수 있다. 최고 와인전문가라면 필수적으로 익혀야 하는 양조학은 자연과학의 응용분야의 하나로 생물학·화학·토양학 등에 대한 광범위한 이론적 지식과 실무를 필요로 하는 고급 학문이다.

CAFA 와인스쿨에서는 와인에 대한 기초와 전반적인 것을 배우게 된다. 와인에 열정을 갖고 있으며 와인 시음, 양조 및 관련 지식에 관한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전 세계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 학교 명성을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우수한 학생을 모집하고 철저한 교육을 통해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CAFA 와인스쿨은 그 부분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다. 2년의 교육과정에 1100시간 이상의 수업을 이수해야 한다. 이 학교는 전 세계 150개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어 취업에도 상당히 유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보르도의 적포도주는 보통 3가지 다른 품종을 섞는데 이것을 비티스 비투리카(vitis biturica)라고 부른다. 이 이름은 이 지역에서 살던 골(Gaule)족의 부족명에서 따온 것으로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멜로(Merlot) 등을 가리킨다. 보르도 지방은 부르고뉴 지방 등 다른 지역에서 단일품종으로 포도주를 만드는 것과는 달리 여러 포도품종을 섞어 양조하는 것이 가장 큰 특색이다. 따라서 그만큼 미세한 맛의 차이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시음을 통한 미각훈련을 필요로 한다.

▲ CAFE 와인스쿨 학생들 모습

보르도에는 와인의 명가들이 모여 있다.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1792년 8월 10일 소집된 국민공회에서는 의장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지롱드(Girondins)파가, 왼쪽에는 자코뱅파가 착석했다. 1793년 왕의 처형에 찬성하던 자코뱅파가 집권하고 지롱드파가 몰락하였는데 지롱드파는 보르도를 중심으로 하였던 지방세습귀족들로 구성돼 있었다. 몰락귀족들은 경제적으로 궁핍해지자 포도밭을 쪼개어 야금야금 팔기 시작했고 신흥자본가들은 소규모이지만 독립된 포도원의 주인이 돼갔다.

그들은 새로 사들인 포도원의 중심에 양조장을 만들었는데 귀족의 집을 흉내내어 샤토(château)라고 불렀다. 오늘날 보르도에 있는 포도 양조장을 샤토라고 부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런데 나폴레옹의 집권기간 동안 프랑스 포도주는 영국에 수출이 금지되어 보르도 지역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몰락귀족들은 더욱 생활이 어려워져 포도원을 쪼개어 팔 수밖에 없었고 오늘날 보르도 지역에 3000여개의 많은 샤또가 있는 기원이 된다. CAFA 와인스쿨은 보르도의 와인과 프랑스 문화를 살리는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 포도 양조장(샤토)내부 모습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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