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교보문고에서 발표한 ‘2017 분야별 도서시장 점유율 변화’를 보고 좀 놀랐다. 사회과학 분야의 성장 때문이다. 20% 이상 신장되어 전 분야 통틀어 가장 성장률이 높았다. 이는 지난 한 해 정권 교체, 일자리, 페미니즘, 과학혁명 등 사회 이슈가 한국사회를 지배했고 독자들을 견인했음을 간접적으로 말해주었다.

디비피아(DBpia)의 올 한 해 논문 이용순위 지표에서도 이런 경향은 두드러졌다. 통계에 잡힌 1만 편가량의 논문 가운데 상위 1000위를 살펴본 결과 사회과학 이슈가 점유율이 가장 높았다. 과연 어떤 덩어리들이 트렌드를 이루었을까.

▲ [표 1] 2017년 논문이용순위 top 10

■ '4차 산업혁명' 논문 상위 10위 중 6편 차지=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제4차 산업혁명’이다. ‘제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이 전체 논문 중 6804회 이용됨으로써 1위를 기록했다. 그뿐만 아니라 상위 10위 중 4차 산업혁명 관련 논문이 6편이나 되고 200위로 범위를 넓히면 30편 넘게 들어와 있다. 이 주제로 얼마나 많은 논문이 생산되고 있으며 또 읽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2위),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우리의 전략’(4위), ‘4차 산업혁명 핵심, 산업인터넷’(5위), ‘4차 산업혁명 시대, 대학교육과 콘텐츠’(6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지적교육 방향’(8위) 등이 최상위권이고 그 밑으로 인공지능·딥러닝·드론·사물인터넷·빅데이터 등 연관어들을 합치면 분량은 더 늘어난다. “초구조화된 도구들이 범세계적으로 연결된 세상”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대와 우려가 봇물 터지듯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 '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를 위협할까?= 제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를 위협하고 ‘교육’의 방향과 방법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특히 ‘일자리’는 압도적인 키워드로 작용했다.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인공지능과 일자리’ 등 어떤 일자리가 인공지능 시대에도 살아남을 것인가가 전 국민의 화두가 된 듯하다. 미래에 정말 기계가 많은 인간의 일자리를 대신한다면, 인간의 기본 의식주는 국가가 보장해줘야 할 것이다. ‘기본소득’ 이슈가 부상하는 것도 4차 산업혁명과 무관치 않다.

▲ [표 2] 2017년 가상화폐 주제 논문이용순위 top5

■ '가상화폐', '비트코인' 논문 새롭게 주목= 이와 연관하여 올해 새롭게 주목받은 주제로 눈길을 끈 것으로 ‘비트코인의 이해’(28위)와 ‘최근 디지털 가상화폐 거래의 법적 쟁점과 운용방안’(69위), ‘블록체인패러다임과 핀테크 보안’(133위) 등 1000위 안에 관련 논문이 10편 넘게 검색되었다. 비트코인은 처음에는 1BTC에 0.0008달러였으나, 2012년 초 비트코인 거래가 활발해짐으로써 1BTC에 10달러 선으로 올라섰고, 2015년 현재 280달러까지 시세가 올라갔으니 얼마나 급성장해 왔는지 알 수 있다. 주변에 비트코인 거래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수익을 올린 이들의 소식은 많은 이들을 가상화폐 러시로 내몰고 있다. 그만큼 피해자도 늘어나고 있는 형국이라 앞으로 이에 대한 규제와 연구가 더 활성화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 (초)미세먼지, 사드 배치, 가짜뉴스, 동물실험, 젠트리피케이션, SNS, 1인 가구, 청소년 폭력, 트럼프, GMO, 감정노동, 자유학기제, 일본군 위안부, 저출산, 북 핵실험, 촛불시위, 기본소득, 줄기세포, 유전자 편집 등이 100위 안에서 1번 이상 보이는 키워드들이다. 이런 사회문제에 대한 학문적 대응은 트렌드로 보긴 힘들 것이고 현실을 일정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 '과학' 주제 논문 급부상= 반면 ‘과학’이라는 단어를 다시 주목해보면 그야말로 ‘메가트렌드’의 존재를 실감하게 된다. 불과 얼마 전까지 과학은 대중의 삶과 거리가 있었다. 과학은 과학자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고, 우리는 과학이 제공하는 편의성을 누리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과학’이 일상생활에 부수적인 만족을 주는 것을 넘어 삶을 구조화하고 일자리의 대부분을 그것과 연관시켜 생각하게 만들고, 삶의 소소한 이벤트에까지 들어와서 우리를 붙들고 있다.

이러한 과학의 급부상에 비한다면 문학·역사·철학 등 전통 인문학 주제들은 ‘그들만의 리그’에 가까워지고 있다. 문학 분야도 창작을 제외한 비평이나 연구는 점점 소수의 동아리로 되어가는 국면이다. 그런 점에서 ‘과학적 세계관과 인간관’(91위)이 100위 안에 이름을 올린 것은 의미심장하다. ‘과학적 세계관’은 국가 예산의 투자규모나 대학의 학제 시스템, 전 세계적 네트워크와 연구 경쟁 등을 고려할 때 이미 지배적인 세계관이 되었다. 어쩌면 과학은 역사·철학·문학 등의 전통 분과과학을 흡수하는 상위 개념으로 거듭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발 하라리 등의 ‘빅히스토리’가 그 산물이 아니겠는가.  

▲ [표 3] 2017년 페미니즘 주제 논문 이용순위 top5

한편, 지난해 상위권을 휩쓸었던 페미니즘 이슈는 순위에서 대폭 사라졌다. 하지만 이는 수그러든 게 아니라 저변화된 것으로 여겨진다. 전반적으로 논문 편수는 더 증가한 듯 보였고 ‘여성혐오와 젠더차별, 페미니즘’(17위), ‘전략적 여성혐오와 그 모순’(38위), ‘여성혐오적 표현과 표현의 자유의 한계’(99위) 등 여전히 상위권은 ‘여혐’ 관련 논문들이 차지하고 있다. 여성이 사회의 주도세력으로 등장하면서 이것을 침해로 받아들이는 일부 남성들의 과도한 반응이 구조적인 문제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외에 내년 2월부터 본격시행을 앞둔 연명의료결정법 때문인지 안락사(존엄사)에 대한 논문들이 200~300위권에 다수 포진했다. 접근방식은 헌법학적 고찰, 안락사와 존엄사에 대한 개념 정의 등이고 해외사례를 자세히 리뷰해 한국은 어떤 식으로 법을 제도화시켜 나갈 것인지를 모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2017년 발표된 논문 중 많은 관심을 받은 것들을 추려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올해 발표된 논문의 이용순위 상위 500편 중 ‘4차 산업혁명’ 관련 논문이 거의 절반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 이 주제가 뜨겁긴 뜨겁나 보다. 그 외에 앞에서 언급한 키워드를 제외하고 주목할 만한 2017년 발표 논문은 ‘'복학왕'의 사회학(19위), ‘촛불시위, 대통령 탄핵과 한국 정치의 새 국면’(84위), ‘언론의 위기와 가짜뉴스 파동’(165위), ‘비즈니스 패러다임 변화와 그 활용방안’(215위), ‘한미 FTA 재협상 시의 대응방안 고찰’(322위), ‘부동산 시장의 신뢰성 향상을 위한 블록체인 응용 기술’(405위)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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