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 법률에 내맡겨 제한했으나 위헌시비 끊이지 않아
헌재, 대학가에서 낸 위헌 소송 인용한 경우 단 1회 불과

전문가들 “개헌 통해 법률로 제한된 기본권 틀 벗어나야”

▲ 헌법재판소 재동청사.

[한국대학신문 김정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약속한 개헌 시점이 다가오면서 대학가에서도 관련된 헌법 조항을 개정하자는 논의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시민사회단체가 연 토론회에 소개되는 것을 비롯해 최근 한국교육개발원(KEDI)과 대한교육법학회가 교육 분야 개헌의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연 것이 대표적이다.

단연 주목해볼만한 대목은 대학 자율성에 관한 개헌 논의다. 현행 헌법 31조 4항의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는 조문에서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를 삭제하거나, 이를 다른 조항으로 옮겨 조문을 신설해 대학의 자율성을 더욱 강화하자는 것이다.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를 삭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낸 이는 임재홍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법학)다. 임 교수는 현재도 헌법과 관계없이 대학 자율성에 반하는 각종 관계 법령이 제ㆍ개정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행 헌법이 대학 자율성을 입법자가 법률을 만들어 제한하도록 하는 ‘제한적 법률유보’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또 현행 조항만으로는 대학 자율성이 운영자(법인, 대학당국)의 것인지 구성원(교수, 직원, 학생)의 것인지 해석이 모호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교육법학회 등은 대학의 자율성을 독립된 구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헌법재판소의 과거 판례를 보면 헌법상 대학의 자율성은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기에, 이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헌법 22조로 옮겨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지며, 대학의 자치는 법률로 보장한다’라고 고치자는 것이다.

방식은 다소 다르나 맥락은 같다. 대학 자율성은 구성원의 것이라는 점을 헌법에 명확히 하자는 것이다.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개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도 이들에게 힘이 실리는 이유다.

지난 2006년 교육공무원법이 국립대 총장 선거에서 간선제를 강요하고 있다며 교수들이 낸 위헌 확인 소송(2005헌마1047)에서 헌재는 “(대학 자율성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대학의 장에 대한 관계에서는 교수나 교수회가 주체가 될 수 있고, 국가에 의한 침해에 있어서는 전 구성원이 자율성을 갖는 경우도 있다”고 유보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헌재가 대학 자율성을 침해한다며 현행 법령이나 행정조치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판례는 극히 드물다. 본지가 현행 헌법 31조를 참조해 헌재가 판단한 결정문을 살펴본 결과, 대학과 관련된 22건의 소송에서 위헌 결정이 내려진 것은 단 한 건에 그쳤다.

이마저도 법학전문대학원의 일부 정원에 대한 모집 정지를 당한 대학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대학의 손을 들어준 것임을 감안하면, 대학 구성원들이 낸 위헌 소송에서 헌재가 이들의 손을 들어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소송을 낸 이들 중에는 교수, 학생, 직원은 물론 사학법인까지도 포함된다.

▲ 헌법 31조에 대한 개헌 요구가 대학가에서 수면 위로 오르고 있다. KEDI와 대한교육법학회는 지난 8일 교육분야의 개헌을 위한 연차대회를 국회입법조사처에서 열었다.(사진=한국대학신문DB)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리고 있음에도 고등교육법과 사립학교법 등 관계 법령이 대학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시비는 끊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가장 많이 위헌 심판대에 오른 법령은 교원지위 향상, 대학평의원회 등을 규율하는 사립학교법으로 총 8차례 소송을 겪었다.

이기우 인하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지난 2010년 낸 논문에서 “헌법 31조는 학문의 자유를 다시 강조해 대학 자치를 보장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고등교육법에서는 이에 대해 매우 소극적이다. 헌법 취지에 반하는 법률 규정”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와 국회의원 등 입법자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고려하도록 헌법 상 대학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황준성 KEDI 학교교육연구실장은 “법률로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된다는 대목 때문이다.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항으로 옮기면 대학 자율성은 ‘제한적 법률유보’에서 벗어나게 된다”며 “학문의 자유처럼 대학 자율성을 보장하고 지원하는 법률을 두도록 하는 ‘형성적 법률유보’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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