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개헌 연기론’에 자문위원, 전문가들 부정적
개헌특위 끝나도 조문화 기초소위 청원, 공론화 가능

여야 합의 못 이루면 개헌 공은 청와대로 넘어갈 듯

▲ 국회의사당 전경.

[한국대학신문 김정현 기자] 자유한국당은 내년 6월 13일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기엔 이르다면서 새 헌법안을 마련하기 위한 국민적 논의가 부족하다는 것을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전문가들과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 자문위원들은 굳이 미룰 필요가 없다며 이를 물리치는 분위기다.

비록 고등교육 분야 개헌 논의가 수면 위로 부상한 시점이 뒤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개헌특위가 당초 새 헌법 조문을 작성하기 위해 구성하기로 한 기초소위원회를 통해 요구를 반영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끝내 개헌특위가 오는 31일 문을 닫게 될 경우. 개헌 주도권이 청와대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 귀추를 지켜봐야 한다.

25일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개헌특위 연장을 놓고 합의가 불발된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하면서 대립하는 양상이다. 앞서 22일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3당 원내대표는 개헌특위 연장을 놓고 합의를 시도했으나 끝내 불발되면서 이날 예정된 임시국회 본회의도 열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개헌특위를 오는 6월까지 연장하고, 내년 2월 말까지 개헌안을 발의하도록 노력하자는 국민의당의 중재안을 수용했다. 개헌특위 여당 간사인 이인영 의원은 25일 “정치적 합의가 있다면 4월, 그렇지 않다면 3월 13일까지 개헌안이 발의돼야 한다. 2월 말까지 최선을 다해 합의해보자는 것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은 이날도 두 당의 이 같은 제안을 ‘땡처리 개헌’이라 부르며 지방선거와 국민투표를 분리하고 내년 말에 개헌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개헌특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개헌특위에서 논의를 계속해 왔지만 아직 개헌안을 완성하지 못한 상황이다. 계속 연장을 해야만 논의를 이어나갈 수 있다”며 신중론을 내세웠다.

▲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3당 원내대표는 오는 31일로 종료되는 개헌특위 활동 시한 연장을 두고 지난 21일, 22일 협의에 나섰으나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사진=YTN 보도 갈무리)

그러나 개헌특위 자문위원들은 자유한국당의 이 같은 주장을 일축한다. 지난 10개월 동안 운영된 자문위원회와 개헌특위에서 설령 못 담은 목소리가 있더라도 3월 발의-6월 국민투표로 이어지는 개헌 ‘타임라인’과는 별개라는 것이다.

개헌특위는 지난 2월 헌법학자들과 각계 전문가 53명으로 분과별 자문위를 꾸리고 개헌안의 밑바탕이 될 보고서를 분과별로 작성했다. 자문위 기본권 분과는 헌법 31조 4항의 대학 자율성 대목을 같은 조에 6항을 신설해 ‘대학 자치는 보장된다’로 분리하는 의견을 보고서에 담아 제출했으나, 앞서 지난달 23일 열린 국회 개헌특위 집중토론에서는 발제만 되고 논의되지 못했다.

자문위 경제‧재정분과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간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한 과학기술 규정을 새로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고서에 명시했고, 과학기술을 경제 발전에 종속시켰다는 지적을 받던 127조 1항에 '공공복리의 향상에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해 지난달 30일 국회 집중토론에서 발표했으나 역시 논의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에 대해 개헌특위 자문위 기본권‧총강 분과 위원장인 신필균 헌법개정여성연대 공동대표는 “자문위 안이 무시된다 해서 끝났다고 보는 것은 성급하다. 조문화 작업을 할 때 자문위 안을 참고해야만 하며,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국회 밖에서도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자유한국당의 국민투표 연기론이 신뢰를 얻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일각에서는 여야가 정치공학적 측면에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방선거와 국민투표가 합쳐지면 투표율이 높아질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통상 보수 진영에 불리한 선거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자문위 경제‧재정분과 위원장인 김호균 명지대 교수(경영정보학)는 “자유한국당은 현재 분위기 속에서 개헌하면 불리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간사단 회의를 해도 참석하지 않아서 회의 자체가 진전이 되지 않는다”며 “국회의원들의 특권적 지위를 유지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자문위가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을 넣으려 하는데, 이를 안 받으려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고 꼬집었다.

향후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여야 합의를 통해 개헌특위가 연장돼 조문화 기초소위가 열리는 등 예정된 일정이 진행되는 것이다. 개헌을 촉구하는 대학사회 전문가들은 그동안 개헌특위가 정치개혁에만 몰입한 점, 관(官) 주도로 진행된 점은 인정해야 한다며 기초소위에서 민(民) 주도의 밀도 있는 토론과 의견 수렴이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헌법 31조 등 교육 분야 헌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 황준성 한국교육개발원 학교교육연구실장은 “분야별로 최소한 한두번의 공청회를 새로 개최해야 한다.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한두달이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만약 끝내 개헌특위가 종료될 경우, 국회를 대신해 청와대가 개헌의 공을 넘겨받게 된다. 여야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지금에는 가능성이 더 높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직접 개헌안 발의에 나서는 것까지도 점쳐진다. 그러나 이 경우도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참여하는 국회 본회의 표결을 거쳐야 하므로 장담할 수 없다.

신필균 위원장은 이 같은 상황이 빚어진 것은 결국 한국 정치 풍조의 문제라며 정치 개혁과 대학가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서라도 개헌에 힘을 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헌이 6월에 정말 되겠느냐는 우려도 큰 만큼 이번에야말로 헌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함께 내야한다. 국민 주권이 헌법에서 살아나야 한다는 정당한 논리 속에서 자기 분야의 개헌 요구사항을 반드시 살려달라는 요청을 해야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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