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재 삼육보건대학교 교수/교수학습센터장

▲ 주현재 교수

이번 주(12/27)부터 영화관에서 상영 중인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2013년 12월, 국내에서 이미 한 차례 개봉됐던 적이 있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소재인 ‘상상’은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기 전, 그러니까 저무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마지막 주에 딱 맞는 키워드이며, 이는 아마도 이 작품의 재개봉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으리라.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한 유명 잡지사에 근무하는 싱글남 월터. 그는 16년째 잡지에 사진을 싣는 일을 하는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회사에서는 딱히 주목받지 못하고, 좋아하는 여성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지만 그에게는 특별한 비밀이 있다. 바로 순간순간 현실세계와 괴리된 상상 속의 세계로 빠져든다는 점이다. 월터는 이 상상 속 세계에서만큼은 매우 용감하고 자신감 넘치는 인물이 된다. 상상은 자유라고 했던가, 월터는 상상 속 세계의 삶을 통해 늘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꿈꾼다.

어느 날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잡지는 폐간 위기에 놓이게 되고 월터에게 마지막 호 표지 사진을 찾아오라는 특명이 주어진다. 상상 속 세계에서 벗어나 실제 모험을 감행해야 하는 순간을 맞은 월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처음 국내를 벗어나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로 떠나게 된 그는 이제 진귀하고도 특별한 갖가지 경험을 하게 된다.

내년 한 해는 모든 대학에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이는 2018년이 문재인정부 주도하에 이뤄지는 고등교육개혁 청사진 인화의 원년이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학역량진단평가가 상반기에 실시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디 그뿐인가, 2017년을 뜨겁게 달군 키워드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교육개혁을 이뤄내기 위해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을 막론, 나름대로의 바람직한 미래를 개척하고 새로운 교육환경을 구축하기에 분주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육개혁의 방향이다. 왜 우리는 개혁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가? 결국 이런 질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여러 번 소개된 적이 있는 미네르바 대학을 떠올려 보자. 2011년 설립된 미네르바 대학은 훗날 최초의 미래형 대학 사례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이 대학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수업을 플립드러닝과 프로젝트 방식으로 진행한다는 점이다. 캠퍼스도 없다. 단지 입학 후 1학년 과정만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낼 뿐 한국을 포함한 6개국에서 한 학기마다 이동하며 생활한다. 미국 대부분의 대학에 비해 학비도 저렴하고, 입학경쟁률이 매해 100대1을 넘을 정도로 우수한 자원이 몰려든다. 미네르바스쿨 설립 학장인 스티브 코슬린 박사는 서울 모 대학에서의 강연을 통해 모든 수업을 온라인 토론식 수업으로 진행하고 그 과정 및 결과를 저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업에서 발생한 상호작용 데이터들을 조금씩 쌓아나가다 보면 그것이 의미 있는 수업개선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대학 체제를 급작스럽게 미네르바 대학과 같은 형태로 바꾸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모든 대학이 현행 수업을 교수자 중심에서 학습자 중심으로 바꿀 수는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리스크와 현실적인 재정문제도 있지만 수업의 개혁 없이는 교육의 개혁도 없다고 본다. 따라서 나는 이번 교육개혁의 방향은 무엇보다 학습자 중심의 교육으로 향한 채 추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소규모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의 교수학습지원센터가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그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펼칠 수 없는 사례가 많다. 대학교육의 고도화를 위해서는 전문성 있는 연구원을 채용하고 온라인 수업을 관리할 수 있는 LMS를 신속히 갖춰야 하는데 현실적인 재정문제가 발목을 잡는 것이다. 이런 경우 개별대학에서 구현이 어려운 최신 스마트 러닝 시스템 개발·보급을 정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등의 대안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체제 마련을 통해 소규모 대학에서는 학습자 중심의 교육환경 구축에 보다 수월하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월터의 상상은 과연 현실로 이뤄졌을까? 작품을 끝까지 감상하고 난 뒤에도 이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월터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긍정적으로 한층 성장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는 상상 속에서만 머물렀던 옛 모습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2018년 새해가 훗날 우리나라 대학이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고 세계 속에서 경쟁력 있는 교육문화를 만들어갔던 눈부신 한 해의 시작점으로 기억될 것임을 상상해본다. 그러나 이 상상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학가에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는 고루한 담론에서 벗어나 교수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혁신적 수업 만들기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만 한다. 물론 이것은 나의 상상 속 매우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수업을 혁신할 수 있다면,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교육 혁신이 이루어진다면, 교수ㆍ학생ㆍ대학은 재미없는 옛날 방식으로 두 번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