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희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새해가 시작됐다. 새해가 되면 새로운 각오들이 넘쳐나고 덕담도 주고받는다. 어느 해였던가? 유학 시절 한국에 잠깐 들어와 보니 모두 한결같이 주고받는 덕담이 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부자 되세요’라고 외쳐대는 것이었다. 당시 인기가 많던 여배우가 광고에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향해 ‘부자 되세요’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던졌고, 나라 전체가 경제적 위기에 처해 있었던 탓인지 순식간에 가장 유행하는 인사말이 됐다고 기억하고 있다. 부도나 파산이 줄줄이 이어지던 그 당시 그 외침은 얼마나 절박하고 절절했을까? 사회적 아픔을 생각하면 가장 따뜻하고 힘이 되는 덕담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외국에서 살다 들어온 나로서는 나라 전체가 경제적 가치에 휘둘려서 너도 나도 부자가 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인사라는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의 가치 척도와 문화적 수준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가 될 터인데,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가 썩 석연치는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건강하세요’라든지 ‘행복하세요’라는 말은 실제로 주고받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현실성이 있는 인사인 데 비해, ‘부자 되세요’라는 말은 허공에 떠다니는 뜬구름 잡기식의 인사라고 여겨졌다. 우리 사회에서 과연 진짜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몇 퍼센트나 있을까? 그리고 어느 정도의 부를 가져야 자신을 ‘부자’라고 여긴단 말인가? 우리가 생각하기에 충분히 ‘부자’라고 여겨지는 사람들도 항상 조금이라도 더 재산 증식을 하려고 애쓰는 것을 보면 그들도 자신을 ‘충분한 부자’라고 여기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가 불편한 것은 실은 내가 부와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루지 못할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제주도에 내려와서 처음 정착한 동네는 여기저기에 빈 공터와 텃밭들이 허다했다. 당시 우리가 살던 임대 아파트의 가격은 서울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낮은 가격이었고, 마음만 먹으면 단지 앞에 노는 땅 몇 백 평을 푼돈으로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지 않았다. 땅을 사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 땅들에는 빽빽하게 상가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가격은 강남의 땅값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가끔 ‘우리는 왜 조그만 땅이라도 사두지 않았을까?’라는 애먼 소리를 부부가 서로에게 하기도 한다.

작년 초에 남편이 어떤 모임을 다녀오고 나서 ‘가상 화폐라는 게 있는데 누가 조금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했으니 사볼까?’라고 묻는 걸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세상이 흉흉하니 별 사기가 다 있구나 하면서 그런 말에 혹한 남편을 타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게 요즘 한창 떠들썩한 ‘비트코인’인다. ‘그때 사두었더라면 지금 어느 정도 가격이 되었을까?’라는 생각은 ‘절대로’ ‘결단코’ 하지 않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듯 남편에게도 다짐을 받는다. 이렇듯 부의 축적과 증식에 대해 무개념의 상태로 살고 있으니 앞으로도 내가 부자가 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좋다.

3~4년 전부터 제주도 사람들의 가장 주요한 화두는 ‘부동산 투자’다. 너도 나도 갑자기 ‘땅부자’가 돼 버렸으니 신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면 뒤처지고 무능한 사람이 돼 버린다. 또한 실시간으로 가격을 검색해야 하는 ‘비트코인’으로 인해 컴퓨터 앞에서 자리를 뜨지 못해 좀비와 같이 전락해버린 젊은 청년들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의 인기는 시들해졌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 척도와 삶의 목표는 ‘부’인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게 갑자기 들어온 ‘부’가 얼마나 허망하게 사라지기도 하는지, 그리고 ‘소유’하려고 하는 순간 지키고 확장시켜야 하는 마음으로 얼마나 전전긍긍하게 되는지, 또는 그 ‘부’의 대가로 혹독하게 지불해야 하는 무언가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추억과 사랑과 희망이 넘쳐나는 ‘마음 부자’가 되지 않으면 물질적 부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음을 되뇌며, 우리가 가진 것을 누릴 수 있는 진정한 부자가 되길 꿈꾸어 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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