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성화대학 이덕재 교수의 회고…폐교 직전 무슨 일이

재학생 충원율 119%, 항공계열 강해 민항기 기장 배출도
“국비로 조성된 연구비 83%가 사라져…알고 보니 횡령”
산단 회계서만 32억 횡령, 설립자‧친인척 비자금 통장으로

▲ 폐교 직전 2011년 성화대학 행정실 모습. 당시 총장을 비롯해 설립자, 부총장, 보직교수 등이 모두 자리를 비웠다. 대학 관계자는 총장과 설립자 등은 6월 이후로 얼굴을 거의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사진=한국대학신문 DB)

[한국대학신문 김정현 기자] 2012년 폐교된 전남 강진군 성화대학 관광경영과 교수였던 이덕재씨는 요즘도 옛 직장을 찾는다. 연구실에는 폐교될 당시의 집기와 물자가 그대로 놓여 있다. 직장이 사라졌지만 물건을 빼 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성화대학은 폐교될 대학이 아니었다”고 허탈해 한다.

2010년 4월 재학생 충원율 119%(교육부(당시 교육과학기술부) 통계). 항공운항과와 관광경영과를 무기로 특성화를 꿈꾸던 전문대학. 이씨가 기억하는 성화대학의 추억이다. 비록 교육부 감사로 법정 출석일수를 채우지 못한 학생들에게 졸업장을 줬던 것이 드러났지만 이 두 학과는 예외였다. 일반대를 마치고 성화대학을 택하는 학생도 있었다. 졸업생 중에는 민항기 기장도 있다. “학생들을 모집하는 노하우를 배우러 각 대학에서 찾아오기도 했다”는게 이씨의 설명이다.

■ 힘들게 받은 국책연구비가 비자금 통장으로= 지역혁신산업을 위한 (초)경량항공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이하 초경량항공사업). 성화대학이 수행하던 특성화전문대학사업(SCK)의 하나다. 인근 영암군 미암면에는 1Km 길이의 활주로를 갖고 있었다. 이 활주로는 지금 신한에어라는 회사가 사용하고 있다. 현재도 활주로를 갖춘 대학은 전국에 두 곳 뿐이다. 대학에는 경량기 전문 기업 세스나의 기체 6기가 있었다. 지역의 군소 전문대학이 국비를 유치할 수 있던 이유다.

명예롭던 사업명은 이제 판결문에 오점으로 남아 있다. 성화대학 설립자 겸 전 학장(총장)인 고(故) 이 모씨(이하 설립자)는 매제인 사무국장 이 모씨(이하 사무국장)과 공모해 학교 돈 61억7397만원을 횡령한 죄로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사회봉사 200시간을 받았다. 횡령금의 절반인 32억여원이 산학협력단 회계에서 유출됐거나 관련이 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사무국장은 초경량항공사업을 위해 조성된 국비 20억9922만원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산학협력단 특성화사업팀장과 공모했다. 거래 가격보다 높은 금액으로 계약서를 부풀려 작성했다. 거래처에는 원금을 지급하고, 부풀린 만큼의 금액은 설립자의 비자금 통장으로 들어갔다. 같은 수법으로 비자금으로 둔갑하거나 다른 용도로 쓰인 국고보조금만 총 10억8283만원이다. 산학협력단 회계를 담보로 잡고 돈을 빌리거나 교비로 돌려 쓰기도 했다. 학생들의 실험실습기자재를 마련하는데 쓰였어야 할 혈세였다.

▲ 성화대학이 사용하던 활주로의 작년 7월 기준 현재 모습.(사진=네이버지도 캡처)

이덕재씨를 포함한 교수들은 이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하지만 이씨는 이미 지난 2004년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고 고백했다. 당시 그는 대학 유휴시설로 있던 기숙사를 호텔로 개발하는 교육부 주관의 국가 과제를 수주했다. 3년 단위 사업으로, 2006년까지 매년 15억5000만원을 운용하게 됐다. 사업비는 교비에서 3억원, 국비로 7억5000만원이 조성됐다.

학교는 이씨에게 사업비를 산학협력단에서 관리할 테니 사용할 때마다 지급을 받으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사업계획서에 적힌 그대로 사업을 집행할 요량이었다. 견적도 매 차례 산학협력단에 제출했다. 하지만 그 견적서가 실제 쓰이는 일은 없었다. 검찰과 경찰의 조사 결과가 나오고 나서야 진상을 알 수 있었다. 설립자는 한 지역 건설회사의 실소유주기도 했다. 누군가가 부풀린 견적을 다시 만들었다. 견적은 설립자의 건설사 자회사로 제출됐다.

사업이 제대로 됐다면 학교 건물이 호텔로 조성돼야 했다. 이씨는 정작 2004년 2억6000만원밖에 쓸 수 없었다고 밝혔다. 15억이 2억으로 줄었으니 비용을 아껴야 했다. 호텔에 TV를 놓아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 구식 브라운관 TV를 놓는 식이다. 숙박시설 등급을 충족하기 위한 기자재를 도저히 갖출 수 없었다. 이씨는 “학교에 개선을 요구했으나, 산학협력단은 회계를 조작하는 데만 열의를 쏟았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2차년도 사업계획서를 내지 않았다.

■ 산학협력단 주 업무는 설립자 비자금 관리= 옛 성화대학에서 산학협력단은 비자금 마련의 창구였다. 이씨가 과제를 수주한 2003년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산촉법)’이 시행되면서, 산학협력단은 학교법인과 분리된 단독 법인으로 자리 잡았다. 산학협력단장이 직접 법인을 관리하고 산업체와 계약을 체결할 수 있게 됐다.

취지는 좋았지만 빈틈이 컸다. 산학협력단은 교비회계, 법인회계와 분리돼 있다. 하지만 산학협력단 법인 이사는 단장과 감사 각 1인으로만 구성된다. 그리고 산학협력단장의 인사권은 책임자인 총장(학장)에게 있다. 성화대학의 경우에도 설립자와 사무국장이 산학협력단에서 자금을 횡령하는 것을 방지할 방법이 없었다. 지금도 산촉법 28조에는 대학의 장이 임명하는 산학협력단장이 이사를 겸한다고 돼 있다.

오히려 설립자는 이를 이용해 항소, 상고했다. 항소심과 대법원의 판결문을 보면, 설립자는 자신이 산학협력단 자금의 관리 책임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횡령은 인정하지만 관계 법령상 산학협력단장이 책임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와 대법원은 피고인인 설립자가 대학과 산학협력단 운영에 직, 간접적으로 개입했기에 정당하지 않다며 이를 물리쳤다.

실제로 설립자는 산학협력단장에 측근인 정모 교수를 선임했다. 설립자와 사무국장과 산학협력단장 셋은 사실상의 공모 관계였다. 이덕재씨는 “설립자는 대학을 공익적 기관으로 생각한 게 아니라, 개인 회사로 생각했다”며 “입 바른 소리를 하는 인물은 보직을 맡을 수 없었고, 상식 있는 교수들도 보직을 기피했다”고 말했다.

▲ 텅빈 안경광학과 실습실. 교육부는 당시 성화대학의 수업진행률이 17%에 불과하다고 했으나, 재학생은 학교 폐쇄가 보도되는데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며 반문했다.(사진=한국대학신문DB)

이씨는 적발된 금액 그 이상이 새 나갔다고 추정한다. 다른 교수들에게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전기과의 다른 교수는 8000만원어치 실습장비 한 대를 세 가지 용도로 중복 기재했다고 이씨에게 전했다. 교수들은 학교가 벌어들인 돈 만큼의 합당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며 설립자와 대학을 검찰에 고발하고, 감사를 청구하기에 이른다.

연구비에서 간접비를 받아 연구 활동을 지원해야 할 산학협력단 직원들은 회계를 조작하는데 힘을 쏟았다. 이씨는 “타 대학은 사업을 수주한 연구책임자의 통장으로 연구비를 집행하고, 관리책임을 맡겼다. 하지만 우리는 산학협력단의 책임자가 관리했다”며 “회계를 맞추느라 죽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 유죄, 폐교...“남은 것은 정신적 공황 뿐”= 이덕재씨는 교수 시절 대학을 대학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신입생을 모집하기 위해 강원도까지 발로 뛰었다. 다른 교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설립자를 몰아내고 대학 정상화에도 최선을 다했다. 학교가 문을 닫은 뒤 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그는 현재 전국폐교대학교권수호를위한교수연합회 대표기도 하다. 실태조사를 한 결과 90% 가까이가 우울증 등 정신적 공황에 시달리고 있다.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의 결말도 좋지 못하다. 설립자는 2009년 11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3년으로 형이 감형됐고, 재차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2011년 10월 형을 확정했다. 그 후 병원을 전전하던 설립자는 지난해 5월 사망했다고 이덕재씨는 전했다.

마지막까지 설립자는 오점을 남겼다. 폐교 직전 ‘13만원 사건’으로 회자되는 사건이다. 검찰의 수사망이 좁혀 들어오던 시기였다. 교육부는 교비 40억원을 승인을 받은 뒤 사용하도록 해 사실상 동결시켰다. 그러자 설립자는 교직원들의 급여를 월 13만6000원으로 깎았다. 사회적 파문을 불렀고, 교육부가 성화대학의 폐교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됐다. 후일 검찰 조사 결과 깎은 그 급여마저 산학협력단 회계에서 나온 비자금에서 조성됐다는 게 밝혀졌다.

▲ 폐교 전 성화대학 모습.

이덕재씨는 기자와의 통화 내내 애써 웃었다. 그러나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안 된다”고 말할 때에는 한숨을 쉬며 속을 감추지 못했다.

“시골 전문대학에서 밝혀진 것만 총 164억을 빼돌렸다. 교수들이 뛰어 다니며 학생을 받아오고 취업시키는 동안 학교는 점차 무너졌다. 교육부와 정부 당국은 학령인구 감소와 부실로 인해 폐교한다고 우리에게 책임을 돌렸다. 관계 법령을 정비하고 비리를 사전에 예방했는가. 학생과 교수 합해 200명은 나름 지역을 선도하는 대학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남은 건 허탈함밖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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