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수 지음 ≪왕유(王維) 시전집≫

중국 당나라(618∼907) 시의 거장 왕유(王維) 시 연구의 국내 최고 권위자인 박삼수 울산대 중국어․중국학과 교수가 20여 년 간의 연구를 총정리해 ≪왕유 시전집≫(전 6권)을 새로 펴냈다.

이 책은 박 교수가 2008년 출간한 ≪왕유 시전집≫(현암사)의 개정 증보판. 이백, 두보와 함께 당나라 3대 시인의 한 사람으로 ‘시불(詩佛)’이라 불리는 왕유의 시 308편 376수를 모두 우리말로 옮기고, 각 시마다 상세한 주석과 명쾌한 해설을 덧붙여 독자의 시 작품 감상은 물론 중국 고대 문화에 대한 상식과 지식을 높이는 데 노력한 점이 돋보인다.

당시(唐詩)의 문학적 가치와 고전적 향기는 오늘날에도 불후의 생명력을 발휘하며 전 세계 문학 애호가들을 매료한다. 시불 왕유는 시선(詩仙) 이백, 시성(詩聖) 두보와 함께 당시의 황금기를 이끈 대시인이다. 왕유는 또 동양화 역사상 수묵산수화를 창시한 대화가(大畵家)이기도 하다.

이백이 풍류 넘치는 삶을 살며 호방한 필치와 낭만적인 서정으로 시운을 만나지 못한 개인적 시름과 울분을 토로했다면, 두보는 우국 우민(憂國憂民)의 충정을 바탕으로 침울하면서도 사실적인 필치로 전란(戰亂)의 고통에 신음하는 사회 민생을 여실히 반영했다. 반면 불교에 심취했던 왕유는 역관역은(亦官亦隱)의 고뇌에 찬 삶을 살며 담박하면서도 고아한 필치로 세속적 번뇌에서 초탈하고 해탈한 정서를 묘사했다. 그 때문에 왕유의 시는 자연의 정취와 불가(佛家)적 선취(禪趣)가 넘치는 것으로 유명하며 이는 속세를 떠난 서정의 극치로 이어진다. 그러나 왕유의 시적 재능은 은일(隱逸)한 서정에만 머물지 않았다. 적극 진취적인 처세를 보인 전기에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정치적 이상을 표출하는가 하면, 현실 사회의 불합리를 풍자하기도 했다. 또한 생애 전반에 걸쳐 창작된 교유시(交遊詩)와 증별시(贈別詩), 그리고 일상생활의 다양한 감정을 담은 작품에서 묻어나는 은근하면서도 온후한 정감은 감탄을 자아낸다.

입신 현달(立身顯達)의 꿈을 품고 열다섯 살에 고향을 떠나 장안으로 가던 왕유는, 굳이 진시황릉을 찾아 애절한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흥망성쇠에 대한 깊은 감개를 토로할 정도로 어려서부터 이미 인생에 대한 통찰이 남달랐다. 그러므로 그는 가정적인 불행에 정치적 실의와 실절(失節)이 이어지는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결코 비관하거나 염세하지 않고, 인간의 내면적 생명 가치를 추구하며 정신적 해탈에 이를 수 있었다.

오늘날 치열한 생존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어느 누구도 현실적인 고뇌와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소중한 일상 속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기는커녕 왕왕 상대적 빈곤과 열등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힘들어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몸소 밭을 갈며 인생의 참뜻을 깨닫고 희열의 노래를 부른 전원시인 도연명(陶淵明)보다는, 고통과 시련의 삶 속에서도 인생에 대한 통찰로 자신을 지켰던 왕유에게서 더욱 매력을 느낀다. 왕유의 시는 분명 고단한 현대인에게 초탈과 해탈의 지혜를 일깨워 줄 것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 / 전 6권 12만 원)

 

[왕유 시 감상]

<죽리관>

그윽한 대숲 속에 홀로 앉아

금(琴) 타다 길게 휘파람을 부는데

깊은 숲 속이라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밝은 달빛만 살며시 다가와 비추어 준다

竹里館

獨坐幽篁裡, 彈琴復長嘯. 深林人不知, 明月來相照.

 

<전원의 즐거움>

복사꽃 붉은 데다 간밤 빗방울을 머금었고

버들잎 푸른 데다 짙은 봄 안개에 휩싸였다

꽃송이 떨어지는데 아이놈은 아직도 쓸지 않고

꾀꼬리 우는데 산객(山客)은 여전히 잠만 자고 있다

田園樂

桃紅復含宿雨, 柳綠更帶春煙. 花落家僮未掃, 鶯啼山客猶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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