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주 계원예술대학교 교수(광고·브랜드디자인과)

[한국대학신문 천주연 기자] ‘젖은 나무 장작’. 강윤주 계원예술대학교 교수(광고·브랜드디자인과)가 2000년 이 대학 강단에 처음 섰을 때 마주한 학생들의 첫 인상이다. 나름대로 끼도 있고 자질도 충분한데 이상하게 자신감이 없었다. 누군가로부터 딱히 주목도, 인정도 받지 못했던 익숙함 탓이다.

그저 때가 됐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왔을 뿐 큰 기대 없이 앉아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강 교수는 그들의 가슴에 불을 붙여주기로 결심했다. 디자인·예술 분야에서 창의력은 생명과도 같은데 창의력을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자신감’이 반드시 필요했다. 자신감이 없으면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해 아예 꺼내놓을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 방법으로 ‘성공체험’에 주목했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았을 때 오는 성취감을 통해 자신감이 생긴다는 확신에서다. 또한 그 성취감이 크면 클수록 학생들의 자신감도 비례해 커진다고 생각한 강 교수는 ‘실제 프로젝트’를 고안해냈다.

“학생들이 성공체험을 하게 되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돼요. 그러면 자연스레 자신감이 생기죠. ‘강윤주’라는 교수 한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실제 바깥세상에서 잘했다고 인정받으면 훨씬 그 성취감은 크고 자신감도 그만큼 커질 거예요. 그래서 ‘교수의 아이디어로 가상의 프로젝트를 교실 안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 네 아이디어를 현실의 바깥세상으로 갖고 나가 증명해보라.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잘한 거야’라는 식의 실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거죠.”

강 교수는 ‘실제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2010년부터 8년간 학생들과 수많은 커뮤니티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강아지들과 함께했던 ‘개판 프로젝트’에서부터 대부분 열악한 환경을 가진 우리나라의 협동조합을 디자인해주고 홍보, 마케팅해주는 ‘협동조합 프로젝트’, 천천히 느리게 살기 ‘안단테안단테 프로젝트’, 마이너리티들을 위한 ‘시시한 디자인 시사회 프로젝트’, 창업을 위한 ‘청춘사업 프로젝트’, ‘스몰웨딩 프로젝트’, 산간마을을 디자인하는 ‘신선노리’, 지난 학기에 진행했던 ‘디자인 뉴스’ 등 그 내용도 다양하다.

“‘신선노리’ 프로젝트 때는 학생들이 직접 기획한 파티에 1500명이 왔어요. 이 같은 규모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3~4년 지나야 해요. 그런데 이 경험을 학생들이 한 거죠. 정말 어마어마한 경험이에요. 끝나고는 자신들이 해냈다는 생각에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지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로는 지난해 진행한 ‘백미리 프로젝트’를 꼽았다. 대부도에 위치한 백미리 마을에 사는 어르신 20분의 자서전을 만들어드린 프로젝트다. 학생 세 명이 한 팀을 이뤄 한 분씩 맡았다.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은 2시간 30분 이상 걸리는 백미리 마을을 매주 두 번씩 방문해 취재부터 사진 및 영상 촬영, 편집 등을 진행했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마을 파티를 열었다. 대학 캠퍼스로 모시기도 했다.

“학생들은 한 번 갈 때마다 자서전에 넣을 내용 취재를 위해 몇 시간이고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줘요. 자식들도 하기 힘든 일이죠. 일반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직업은 아닐지 몰라도 80~90세 되신 분들의 삶을 담은 자서전을 펴낸 후에는 출판기념회까지 열었어요. 해외에서도 자제분들이 찾아와 감사의 뜻을 전했죠. 물리적으론 힘들었어도 마음만은 보람찼던 프로젝트였어요. 어르신 중 두 분은 돌아가셨는데 그때 저는 안 가도 그 어르신을 담당했던 팀은 알아서 조문을 가더라고요. 그만큼 끈끈해진 결과겠죠. 인성교육이 따로 필요 없더라고요.”

학생들의 자신감을 찾아주기 위해 시작했던 ‘실제 프로젝트’는 학생들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는 도구로도 사용됐다. 기획부터 실천, 실행까지 모두 해야 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어떤 것을 잘하는지 발견하고 디자인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 제자들도 생겨났다. 발표회 사회를 보다가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는 게 좋아 모델을 하고 있는 제자, 영상을 제작하다가 사운드 분야로 간 제자, 원고를 잘 썼다고 칭찬받은 일을 떠올리고 독일에서 작가로 일하고 있는 제자 등이다.

“디자인과 아트가 좋아서 왔다고 하는데 사실 디자인 아트 분야는 제품 디자인, 시각 프로젝트, 전시, 애니메이션 등 정말 넓어요. 커뮤니티 디자인 또한 허허벌판 수준이죠. 디자인의 A에서부터 Z까지 다 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획, 영상, 디자인 크리에이티브, 커뮤니케이션, 로고 제작, 웹툰 제작 등을 해보면서 자신이 재밌어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요. 꼭 디자인 쪽으로만 가는 건 아니더라고요.”

강 교수는 북 디자이너, 제품 디자이너, 가구 디자이너가 있듯이 교수는 사람을 디자인하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온 학생들은 아직은 부모 혹은 교수에게 의존적인 상태죠. 대학을 졸업하고 나가면 자신이 공부한 것을 갖고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독립된 사람이 돼야 해요. 자신감, 창의력, 협업능력 등을 훈련시켜 그 변화를 이끄는 것이야말로 바로 교수자의 역할 아닐까요.”

강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교수가 되면 그때부터는 다른 연구나 프로젝트에 더 몰입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티칭’에 올인할 수 있는 사회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동료 교수들에게도 ‘티칭’에 올인해볼 것을 강력하게 추천했다.

“대학에서 교수들이 티칭에 올인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해요. 교수들도 막상 티칭에 올인하려면 자신의 시간 등을 투자해야 하는 등 쉽진 않아요.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절대 손해 보는 일은 아니라는 거예요. 한번 해보면 굉장히 짜릿하면서도 뭉클한 기쁨을 느낄 수 있어요. ‘젖은 나무 장작’ 같던 학생들의 눈빛이 어느 순간 어두워진 아파트에 하나 둘씩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하나 둘씩 바뀌는 그런 특별한 경험을 여러분들도 해보시길 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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