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창 전국대학원총학생회협의회 정책위원(서울대 대학원 총학생회 고등교육전문위원)

지난 한 달간 대학가에서 교육부·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의 대학 입학금 전면폐지합의가 많은 주목을 받았다. 등록금심의위원회를 거치지 않고도 자의적으로 비용이 부과될 여지가 줄어들었음을 환영하면서도 하나 씁쓸함이 남는 까닭은 해당 합의가 마찬가지로 자의적인 대학원 입학금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고등교육 정책이 어디까지나 학부에 집중되어 있으며 대학원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팽개쳐져 있는 한국의 슬픈 현실을 잘 보여준다.

대학원생 기본권과 교육연구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사람들에게 이는 이미 익숙한 사실이다. 지난 3년여간 대학원은 한국 사회 전체를 놀라게 한 경악스러운 인권침해사건들의 주 공급처 중 하나였으며, 대학원 지도의 부실함이나 대학원생 조교들의 열악한 근무여건은 재론이 필요 없을 정도의 상식이 되어버렸다. 유감스럽게도 그에 대한 공적인 해결의 노력은 여전히 미미하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정부와 의회를 비롯한 한국 사회의 주요 의사결정기구 참여자들이 고등교육에 대해서는 여전히 초보적인 인식에 머무른다는 데 있다. 대학원 교육은 여유 있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사치재, 기껏해야 개개인의 '스펙쌓기'에 불과하며 그곳에서 발생하는 제반 문제 또한 개인적인 사안이기에 진지한 정책적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원은 본인의 선택이니 제도적 개입의 대상이 아니며, 가끔 발생하는 심각한 사건 정도만 구제하면 된다는 태도가 두 가지 점에서 타당하지 않다. 첫째, 심지어 모두가 분노할 만한 인권침해를 근절하기 위해서라도 제도를 통한 환경의 개선은 필수적이다. 가령 가장 널리 알려진 유형인 교수-대학원생 간 인권침해 사례를 조금이라도 들여다보면 이것이 단순히 몇몇 가해자의 선악으로 설명될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교육지도·학위취득·졸업 후 진로 등의 제반영역에서 교수가 학생에게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으며 이것이 자의적인 지위·권력남용으로 이어지는 걸 제어하는 제도적 장치가 부재할 때 기본권의 침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현실은 당연하다. 1980년대에 정해진 교원징계양형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 성희롱성추행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공간분리를 포함해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기초적인 피해자보호 절차조차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대학원생 인권이 개선되기를 바랄 수 있는가? 요점은 제도적인 설계 없이는 개개인의 기본권조차도 제대로 지켜질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보다 근본적인 층위에서 특히 대학원 이후의 고등교육과정의 성패는 단순히 개인적 성취가 아닌 한국 사회 전체의 운명과 결부되어 있다. 오늘날 한 사회의 미래가 기술적 진보와 함께 인간·사회의 작동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에 달려 있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지적 성취는 자연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연구자들의 활동 및 육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대학원이 그 중심기구라는 명백한 사실은 현재까지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신성한 비밀로 남아 있는 듯 보인다. 핵심을 말하자면, 대학원 교육연구환경은 개개인의 관점에서 볼 때는 지적·직업적 욕망의 대상일 수 있으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국가·사회의 전망을 결정짓는 전략적 관리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한국이 개발도상국으로서 양적 경쟁력을 획득하는 데만 골몰하던 시기에는 학부교육까지만 신경을 쓰는 걸로 충분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10여 년 전에 그와 같은 시기를 지나쳤으며 이제는 더 높은 수준의 지식과 기술의 육성 없이, 다시 말해 대학원 과정의 전면적인 혁신 없이 미래로의 순항을 지속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늦었지만 아직 가능성이 있는 지금에라도 장기적 관점에 입각한 제도의 재구축이 필요하며, 대학원에 대한 공적인 관심은 그 시작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