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공간 남국한 정치 관련 저서 집필중

정치학계 원로 학자이자 한 때 실천적 지식인의 상징이었던 장을병 교수(68세)가 자신을 품어주고 길러준 학계로 돌아왔다. 지난 95년 성균관대 총장 임기를 마치고 정치에 입문 국회의원, 여권 최고위원 자리에 올랐으며 한때 대권주자로 분류됐던 그가 정치권의 모든 영화 를 버리고 한국학 연구의 중심인 한국정신문화원장으로 다시 학문의 도장에 복귀한 것이다. 청계산 끝자락, 흩날리는 은행잎 사이로 고풍스런 기와를 이고 앉은 한국정신문화원(정문연)에서 지난달 20일 그가 정치판을 박차고 나온 까닭, 지식인의 정치참여, 대학개혁과 이 시대 총장의 역할 그리고 앞으로 정문연을 이끌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기자가 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손때가 잔뜩 묻은 한 권의 책을 읽고 있었다. 책 제목은 '한국정치의 이해' 였다. "한국 정치론을 전공한 제가 해방이후 한국정치의 이해라는 과목을 맡아 수업하면서 현대 정치를 쉽게 풀이하기 위해 쓴 책입니다. 임기를 마칠 때까지 다시 쓸 계획입니다. 그런데 요즘 한계에 부딪히고 있어요. 한국정치라 함은 남북한을 통틀어야 하는데 저는 북한을 잘몰라요. 그래서 해방공간의 남북한 정치를 쓸까 합니다." 장 원장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 학자로서 자신이 몸담은 정치학회에 공헌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야기를 돌려 정치 외도후 다시 학계로 돌아오신 소감을 물었다. "정치에 욕심 있어 입문한 것이 아니에요. 당시 정치개혁을 추진하는 젊은이들이 향도가 돼달라는 부탁을 해 고문을 맡은 것이 계기가 됐죠. 그 이후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빠졌어요. 국회의원 출마도 그렇고, 당 최고의원이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을 들어주다 보니 그렇게 됐죠. 하지만 정치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도 항상 이론과 현실 사이를 걸으며 살아왔지요. 정치를 하지 않았어도 몇 안가는 존경받는 인물이었을 텐데…." 그는 직접적으로 얘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정치에 입문하게된 것을 못내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인터뷰의 상당시간을 학자로서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던 과거, 원치 않았지만 정치판에 빨려가듯 함몰된 상황을 일일이 설명했다. 정치학을 전공자이니 그 동안의 이론연구를 현실에 적용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았는지 물었다. "정치참여 경시 풍조는 바람직하지 않아요. 독재시대라면 모를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용은 없습니다. 모두 참여해 비판하고 조언하는 역할을 해야합니다." 장 원장은 그러면서도 정치는 체질이 맞아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치인의 자질로 첫째, 부지런할 것 둘째, 몰염치할 것 셋째, 보폭이 넓을 것을 꼽았다. 특히 정치인은 필요하다면 악마하고도 손잡을 수 있어야 한다며, 지식인의 적극적인 정치참여에 대해서는 조심스런 입장을 취했다. 화제를 다시 바꿔 그가 앞으로 정문연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물었다. 특히 전임 원장에 이어 자신의 원장 취임이 학술기관인 정문연의 정치적 중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일부 의견에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정치적 외풍을 막고 오직 학술연구만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취임사를 통해 밝혔습니다. 그런데 막상 몇 달 지나고 보니 정문연은 정치 바람이 들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한국학 진흥을 위해 연구자들을 최대한 뒷받침하겠습니다." 정 원장은 예전 성대 총장시절과 오늘날 개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학을 비교하며 "지금의 대학은 경영마인드가 지나치게 강조돼 고위 관료출신 인사들의 총장 영입이 늘고 있다"며 정부 도움을 받아야 하고, 정부에 아는 사람이 많아 이점이 있지만 총장의 충분조건은 아니다"고 지적하고 적어도 대학총장은 아케데미즘에 대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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