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 통해 영혼의 부피를 늘리자

길고도 긴 겨울방학이 시작됐다. 벌써 지도를 챙겨 먼길 떠난 이도 있을 테고, 이와는 반대로 높아진 취업문에 새벽 도서관으로 향하기도 하리라. 하지만 학원을 떠나 좀더 넓은 세상과 맞닥뜨리기 위한 준비라는 점에서 이 둘은 공통적이다. 낯선 곳을 향해 첫발을 떼는 것만큼 떨리고 기쁜 일은 없다. 떠나는 자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마음의 '완전군장'이 아닐까? 여행은 주워 듣고 오는 게 아니다. 벌거숭이 자아로 돌아가 타자의 문화를 대면하는 실존의 행위다. 그를 통해 내 영혼의 부피를 늘이는 일이다. 여행을 통해 영혼의 고양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이븐 바투타 여행기'(창작과비평사)를 권하고 싶다. 이 책은 두 가지 점에서 우리를 놀라게 한다.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경험의 양이 이렇게까지 거대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오직 이슬람이라는 관점에서 이질적인 여러 문화들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놀라운 일관성. 이 둘만으로도 온통 독자의 정신을 휘어잡는 책이 다.중국의 명수필가 린위탕(임어당)의 '베이징 이야기'(이산)도 가방에 챙겨 넣기 바란다. 비록 여행기는 아니지만, 베이징이란 도시를 살아있는 생명체로 바라보고 기록한 매우 독특한 매력을 내뿜는 책이다. 린위탕은 마치 애인처럼 베이징의 곳곳을 훑어보는데, 지속적이고 애정 어린 시선을 통해 평범한 사물과 현상의 매력을 찾아내서 이름을 부여하는 창조성, 또 그것을 천천히 흘러가는 아름다운 문체로 보여주는 명필의 우아함이 흘러 넘친다. 고품격 문화 예술 기행서를 표방하는 '열정의 이탈리아' '열정의 그리스'(이상 효형출판)는 여행이 '그림의 떡'인 이들이 방안에서 지중해 문화유산의 풍요로움을 만끽하게 해준다. 무엇보다 유명한 사진작가들이 찍은 수백 컷의 원색화보가 유럽인들의 오랜 관습을 눈앞에 바짝 끌어당겨 놓는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각박한 현실이다. 디지털시대다 정보사회다 해서 요란하지만, 그 배후에는 자본의 숨은 논리가 매섭게 도사리고 있다. 자본이 움직이는 방식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고, 이를 친절히 알려주는 책들도 많이 나와있다. '소유의 종말'(민음사)은 '소유'의 개념과 함께 시작된 산업자본주의가 막을 내리고 대신 '접속'(access)이란 개념을 앞세운 문화자본주의가 외연을 넓혀간다며 접속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한다. 하지만 재산을 소유하지 않고 접속만 할 경우 개인적 자부심과 책임감은 희미해지고 개개인은 타인에게 더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생각할 거리를 충분히 던져주는 책이다. '24시간 사회'(민음사)는 밤과 낮, 주말과 주중이 무의미해지는 24시간 사회가 왔음을 선언하고,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지 다양한 실례를 들어 흥미롭게 분석한다.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은 '밤'이라는 새로운 시간의 공급원을 개척하기 시작했다"는 저자의 징후적인 발언은 24시간 사회를 향한 인간의 또 다른 변신을 시도해야 함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디지털 자본주의'(나무와 숲)은 디지털 시대를 가늠하기 위한 객관적인 시각을 제공해준다. 무엇보다 미국의 새로운 세계지배 전략이 무엇인지 개괄적으로 알려주는데, 신경제의 신화는 이 책 속에서 허황된 신화의 실체를 서서히 드러내며 천천히 몰락한다. 그리고 이 책들을 읽기 전 일본의 대표적 저술가인 다치바나 다카시의 독서론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청어람 미디어)를 먼저 읽어보는 게 더 좋을 듯하다. 정보의 홍수에 빠져 익사하지 않는 방법을 잘 일러주고 있기 때문이다. <강성민/출판저널기자>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