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등산은 말 그대로 산의 정상에 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등산길은 대부분 정상으로 향해 있고, 우리는 그 길을 따라 작은 산부터 오르기 시작해 좀 더 높은 산을 찾다가 궁극적으로 히말라야 8000m 봉우리들을 꿈꾸게 된다. 이처럼 산은 오른 높이와 코스의 난이도로 평가를 받는 수직적 세계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산에 대한 인식이 둘레길 덕분에 극적으로 전환됐다. 둘레길은 누구나 같이 걸을 수 있는 길, 되돌아서 다시 만나는 길, 정상으로 향하는 모든 길을 만나는 소통의 길, 경쟁이 아닌 상생의 길이 됐다. 산은 이제 등산 전문가만의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린 장이 된 것이다. 

이것은 올레길을 처음 만든 사람처럼, 단절된 길을 새로운 가치로 ‘연결’하는 ‘지능’을 가진 열정적인 그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책 ⟪연결지능⟫은 제목이기도 한 이 단어를 ‘다양한 지식과 경험, 의욕, 인적자원 등을 결합해 연결성을 구축,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창출하는 재능’이라고 정의했다. 사회 각 분야는 지금 연결지능으로 혁신중이다.

그러면 대학은 지금 어떤 모습인가? 교수는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를 지향한다. 옆 동료가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대학행정은 더욱 전문화돼 가는 관료조직의 갇힌 시스템과 규칙 안에서 고독하게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 대학 사회 안에 학생이 있다. 제러미 리프킨은 ⟪엔트로피⟫에서 ‘전문화는 증가하는 복잡성 및 집중화와 나란히 진행된다. 기술사회에서 인간을 위시한 모든 것은 확장되는 사회 메커니즘의 부품으로 전락한다. 사회 전체의 기능이 더욱 복잡해지고 집중화되면서 각 개인의 기능은 더욱 세분화되고 한정되며, 이들의 생존은 시스템 안의 다른 기능에 더욱 의존적이 된다’고 하면서, 그 끝은 종의 멸종이라고 했다. 대학은 지금 이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지 모른다.

극적인 전환이 시급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독한 전문가들을 광장으로 나오도록 하고 교육・연구・산학협력 등 대학 내외의 모든 역량을 연결해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창출할 수 있는 대학 내의 또 다른 역할이 절실하다. 전통적인 대학 사회에서는 이러한 역할을 해줄 새로운 전문가 집단을 뭐라고 부를 수 있는 용어도 통일이 돼 있지 않으니 우선은 그들을 ‘대학 코디네이터(UC; University Coordinator)’라고 부르자. UC는 탁월한 개인들이 모여 형성된 집단적 ‘바보’를 ‘지성’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유엔미래보고서》에서도 개개인의 전문성보다는 집단지성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하면서, 교육(Education) 분야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성되는 곳은 교육 코치, 교육과정 디자이너, 커리큘럼 개발자, 학습캠프 운영자 등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들을 좀 더 세분화해 부르면 교육 코디네이터(EC)라 부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 연구(Research) 분야에서의 코디네이터(이들을 RC라 하자)가 자리를 먼저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크다. 연구 분야는 각자 치열한 연구비 경쟁을 해야 하는 숙명이기도 하지만 집단융합 대형연구의 추세에 함께 해야 한다. 

더 이상 고독한 연구자로만 남아서는 승산이 없다. 연결지능을 통한 협업과 집단지성이 가장 절실한 분야이고 그래서 RC의 역할은 더욱 필요하다. 따라서 코디네이터는 연구에서 교육으로 확장되고, 나아가 UC가 정착될 것으로 보인다. 이 길을 먼저 열어갈 그룹은 한 분야의 정상에 있는 교수일 수도 있고, 대학을 조직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는 행정가일 수도 있다. 어느 쪽에서 먼저 길을 열지 모를 일이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길은 걸어가야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