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당했다” 학부생·대학원생·교수까지 성폭력 사례 폭로

“의미 있지만 2차 피해 우려, 제도 정비 필요”…국회 움직임도

[한국대학신문 이지희·장진희 기자] 서지현 검사 일으킨 파동이 대학가에도 번지는 양상이다.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대학가에도 일어나고 있다. 피해자가 숨지 않고 적극적으로 경험을 공유하는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이들에 대한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학도 성추문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지난해 동국대·한국외대·홍익대 ‘단톡방 성희롱’은 대표적인 성폭력 사례다. 경희대와 고려대에서는 교수가 제자를 성추행하거나 성폭행 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안겨줬다. 대부분 피해자는 사실을 숨겨왔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문제가 수면으로 떠올랐다.

▲ 대학 내에서도 성희롱과 성추행 등을 고발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모 대학에 걸려있는 선배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대자보. (사진= 이지희 기자)

대학생들 “나도 당했다” 목소리 내기 시작했다= 최근 대학 내 커뮤니티와 익명의 사례 제보를 받는 페이스북 대나무 숲 등에는 ‘나도 당했다’는 대학생들의 사례가 속속 올라오고 있다. 이는 기존에 피해 사실을 ‘폭로’하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피해 사실을 고백하고, 보복이나 처벌의 의미보다는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도록 관심을 촉구했다.

연세대 대나무숲에 익명의 글을 올린 ㄱ씨는 자신도 성범죄의 피해자였다고 밝히면서 피해 당시에는 현실을 피하려 했다고 고백했다. ㄱ씨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누군가 자신을 유추할까 걱정이 되고 용기가 부족해 익명의 글을 쓴다”며 “이제부터는 적어도 방관자는 되지 말아야 한다”는 당부의 말로 글을 끝맺었다.

한양대를 졸업했다는 ㄴ씨도 학생시절 교수님의 성차별적 발언에 상처를 받았던 경험을 토로했다. 그는 “미투 운동을 보며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며 “당시에는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대학 내 성폭력 사례들이 적지 않은 만큼 새 학기 행사를 앞둔 학교도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미리부터 대규모 신입생 행사에 있을 불미스러운 사안들을 차단하기 위한 노력도 곳곳에서 보인다.

서울대는 단과대 차원에서는 ‘새내기 맞이 장기자랑 강요 프리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총학생회는 인권센터와 연계한 ‘서울대 인권학교’도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 나온 내용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도 활용된다.

고려대 양성평등센터도 5일 ‘미리 배움터’ 행사에서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을 진행했다. 총학생회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성·인권 교육에 나설 예정이다.

신재용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성차별 등에 대한 의식 교육은 아주 기본적인 인권 차원의 문제”라며 “비단 미투 운동이 아니더라도 단과대, 총학생회 차원에서 이 같은 교육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지난해 고려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가 대학원생에게 성폭력을 가한 B교수를 규탄하는 학내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대학원생 미투 동참…그러나 학계 퇴출 위험있어= 대학원생들도 ‘나도 피해자’라며 ‘미투(MeToo)'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원생들의 이 같은 움직임이 ’학계 퇴출‘ 등 2차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소재 한 대학의 대학원에 재학 중이라고 밝힌 ㄷ씨는 SNS를 통해 자신이 겪은 성희롱 사례를 폭로했다. ㄷ씨에 따르면, 한 대학원 강사는 “단 둘이 만나고 싶다. 열렬한 관계가 되자”라는 말을 하고, 손을 잡거나 신체를 접촉하는 등의 언행을 이어왔다. ㄷ씨는 해당 강사가 자신의 지도교수와 친분이 있었던 사이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ㄷ씨가 해당 강사를 문제 삼자 지도교수인 ㄹ교수는 “별 뜻 없이 순수하게 좋아해서 그런 건데 나이도 든 여자가 오해가 크다”며 함구하고 학교에 진정을 넣지 말라고 했다. 그 뒤에도 ㄷ씨가 휴학을 하자, ㄹ교수는 ㄷ씨에게 집요하게 연락하며 만나자고 요구했다. 이후에도 ㄹ교수는 추행을 계속했다.

ㄷ씨는 이 사건을 폭로하며 자퇴까지 결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ㄷ씨는 “이 글을 처음 쓸 때만 해도 슬픔을 견디고 싶지 않아 자퇴하려는 결심이었다”며 “두 남자의 성희롱 때문에 내려두었던 법서를 다시 집어 들고 기뻐하려 한다”고 밝혔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곧 대학원생 성추행 제보 사례를 밝히고, 미투 캠페인에 참여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노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지난해 모 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이 성추행을 당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지난 2일 밝혔다. 이 학생은 용기를 내 성추행 사실을 학교에 알렸으나, 해결은커녕 학사 피해만 입게 됐다.

이에 대해 노 의원은 “조교 임용, 추천서 작성 등 학생의 성적을 비롯한 학사 관리의 모든 것이 가해 교수의 손에 달려있었기 때문”이라며 “피해 사실을 제보하면 학생의 졸업과 진로가 흔들릴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학원생들이) 성추행 피해사실을 알리면 알릴수록 피해가 커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했다”며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를 이번 기회에 바꿔볼 것”이라고 밝혔다.

‘미투’ 의미는 있지만…문제는 2차 피해 가능성= 대학가 '미투 캠페인‘ 확산은 학내 성 관련 피해를 공론화한다는 데서 의미가 있지만, 이런 운동이 일회성에 그칠지 아니면 지속가능할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피해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여론의 태도나 가해자의 보복 등 2차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혜숙 경상대 교수(사회학)는 “성폭력 피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러나지 못했던 사건들이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공론화 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면서도 “대학 내에 존재하는 권력관계 때문에 이런 움직임이 계속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미투 캠페인이 대학 내 성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어떤 행동이 잘못됐다는 인식을 갖는 것 자체가 자정작용을 하는 데 기여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모든 대학 내 피해자들이 2차 피해의 위험에 노출돼있지만, 그 중에서도 대학원생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대학원생은 지도교수와의 ‘갑을관계’ 때문에 성희롱·성추행 등 성폭력을 폭로하면, 보호를 받기는커녕 보복으로 인한 연구 중단 등 2차 피해를 입게 되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대 인권센터가 발표한 ‘2016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생 인권실태 및 교육환경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희롱·성폭행을 포함한 인권침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대학원생 중 인권침해에 무대응한 이유에 대해 ‘당사자와의 관계가 불편해지기 싫어서’라거나 ‘학업이나 진로에 불이익이 있을 것 같아서’라고 답한 응답자가 각각 60.5%, 57.4%로 다수를 차지했다. 대학원생들은 성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싶어도 2차 피해가 두려워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투’ 그 이후 대안은?= 전문가들은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나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대학의 규정은 사법 체계보다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다”며 “대학의 규정에서 2차 가해와 피해를 명시하고, 피해자를 구제하는 절차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또 “요즘 논란이 되는 온라인 2차 피해에 대한 규정도 구체화해야 한다”며 “온라인에서 자행되는 성적 가해와 관련한 제도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어 시스템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의식의 전환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현재 초·중·고등학교에서 성평등교육을 필수적으로 실시하라는 국민청원 20만 명을 넘겼다. 이 교수는 “대학이야말로 이런 교육이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공간”이라고 당부했다.

폭로 이후에 발생하는 왕따나, 비난 등의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국회 차원의 움직임도 있다. 국회 더불어민주당 원내 젠더폭력대책테크스포스(TF)는 지난 6일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이후 대안 마련을 위한 현장간담회’에서 직장 등 조직 내 성폭력 처벌과 2차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법안 발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TF팀장인 남인순 의원은 “성폭력 재발을 방지할 수 있도록 국회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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