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새해가 밝았지만 대학 곳곳의 청소노동자들에게는 우울한 소식이 전해졌다. 대학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정년퇴직하는 청소노동자 자리를 채우지 않고, 단시간 근로자를 고용하면서다. 고려대와 연세대, 홍익대 등에 근무하는 청소노동자들은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학내에서 투쟁을 지속해왔다. 시민단체가 연대하고,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대학을 찾으면서 고려대와 홍익대에서는 고수하던 입장을 철폐했지만 연세대 등 몇몇 대학에서는 여전히 노동자와 대학이 대치 중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정부에 “비정규직 노동자를 줄이라”는 요구를 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일찍이 2004년에 IMF는 <한국 경제 주요 현안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신규 고용의 70%가 비정규직 노동자다. 이 같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한국 경제를 저해했고, 향후 발전도 제약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13년이 지난 지금은 신규 고용의 비정규직 비율이 80%로 오히려 늘었다. 우리나라는 OECD 가입 국가들 중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가장 높고 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다.

국제금융자본이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그와 같은 인도주의적 요구를 했을 리는 없다. 자신들이 투자한 자본이 정상적인 이윤을 창출하는 데에 방해가 될 정도로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IMF는 “이러한 이중구조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확실성을 높여 소비 저하와 예비적 동기의 저축 증가로 이어지게 되므로 사회적으로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밝혔다. 저임금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아지면 이들의 소비력이 떨어져 건전한 내수가 창출되지 않고 결국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의 기반이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2012년 10월 IMF는 <한국 경제의 지속·포용성장(Sustainable and Inclusive Growth) 보고서>를 통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없어지면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10년간 연평균 1%가량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이 1300조원 안팎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노동시장 개혁만으로 매년 13조~20조원 이상의 부가가치가 새롭게 창출되는 셈이다. 그 분석은 전문가들로부터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는 것이 경제 성장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규명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비정규직 고용은 비정규직 당사자의 삶이 비인간적이고 고통스럽다는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 해롭기 때문에 해소돼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대학들은 지금 그 비정규직 고용조차 유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학이 단기적으로 노동비용을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 고용조차 초단기 아르바이트 노동으로 대체하는 경영방식을 사회가 계속 용인하면 한국의 대학들은 운영 효율을 높이기 위한 다른 바람직한 방식을 추구하지 않은 채 대학으로서의 경쟁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를 나 몰라라하는 대학이 도대체 어떤 이데올로기에 바탕해 사회에 유익한 인재들을 길러내고 지식 인프라 구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비용의 측면을 도외시하는 이상적 주장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철저하게 신자유주의적 경영 기법에 입각한 시각으로 보자. 대학 사회 구성원들에게 최소한의 비정규직 일자리조차 제공할 능력이 없는 대학이 어떻게 바람직한 학문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을까? 초단기 아르바이트 저임금 대학생에게 청소 업무를 맡겨야만 겨우 유지되는 대학, 대학사회 구성원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조차 유지할 능력이 없는 대학들은 치열한 교육시장에서 퇴출시키는 것이 오히려 철저한 경제적 시각이다. “초단기 아르바이트 학생들로 대체해야만 다른 대학들과 경쟁할 수 있다”거나 “청소 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을 계속 고용하면 인건비 때문에 도산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대학이라면 일찌감치 문을 닫는 것이 사회 전체에 유익하다.

대학의 단기적 노동비용 절감이 사회 전체의 이익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경제는 이미 저임금 경쟁력이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다.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조차 유지되지 않는다면 정부가 꿈꾸는 ‘소득 주도 성장’도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