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세금을 예산으로 편성해 대학에 지원하려면 최소한 경제부처 등 대국민 설득이 필요하다. 그런데 잘 아시다시피 극소수의 대학이지만 설립자 비리가 있다든가, 교육력이 약해 충원율이 30% 미만인 대학이 있는 것도 현실이다. (중략) 실제 각 대학들이 학생 등록금보다 더 많은 재원을 교육 프로그램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교협을 중심으로 국민들에게 등록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재정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점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교육부 고위 관교는 지난달 대교협 총회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교육부가 과연 제3자로서 ‘대국민 설득 및 홍보’를 강조할 수 있는가.

사립대 입학금 축소 및 폐지 시 교육부는 대학을 대상으로 여론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가 지금까지 입학금 징수를 인정해왔다는 점, 국정과제에 맞춰 대학의 등록금을 제재하고 입학금도 줄이지만 대학에 지원하는 재정규모는 경제규모의 손톱 끝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학이 입학금 폐지 조건으로 등록금을 인상해달라고 요구했다면서 적폐 대상으로 몰았다. 학생 대표단이 화살 끝을 불특정 대학들에 돌리는 동안 교육부는 뒷짐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대학을 여론전에 몰아넣고, 악한 대학을 처벌하는 영웅이 되길 자처하는 행태는 변하지 않았다.

고등교육을 책임질 수 없어 대학준칙주의에 따라 대학을 양산하고 고등교육 80%를 민간에 맡겨놓은 국가의 정부라면, 최소한 대국민 설득 과정에 당사자로 임해야 한다.

고등교육 재정 확보를 위해 뛰다보니 예산당국이나 정치권 논의 과정에서 겪는 피로감은 이해한다. 일부 대학과 교수의 부정비리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김도 샐 것이다. 그러나 국정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도록 부처 간 논의, 대국회 논의 일선에서 돌파하는 역할은 기본적으로 교육부 소관이다.

적어도 고등교육 재정 논의에서 ‘유체이탈 화법’은 어울리지 않는다. 2014년도 기준으로 정부는 고등교육 재정을 GDP 대비 0.84%만 투자했고, 0.16%는 전년도에서 넘어온 이월금이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대학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내년도 일반재정지원을 기대하고는 있지만, 법으로 정해지지 않은, 평가에 따른 선별적인 지원은 희망고문일 뿐이다.

‘대학 공공성 제고’가 시대정신인 만큼 대학들도 발맞출 필요는 있다. 최근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 개선, 미투(Me Too) 운동이 거세지는 이유는 결국 대학과 학계의 권위주의와 맥을 같이한다. 대학은 사유재산이 아니라 공적 기관이며, 스스로 자정하고 발전할 역량이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입증해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 총장들이 대학의 존립에 골몰하는 환경부터 개선해야 한다. 수년간 대학 총장들은 각종 협의회를 열 때마다 국가에 재정지원을 늘려달라고 요구했고, 직접 국회와 기획재정부에 뛰어다녔다. 내부 거버넌스 혁신과 미래 교육 및 연구 변화에 대비하기는 역부족이다.

부실한 대학부터 빠르게 처리하고 고등교육 생태계가 정상화되도록 교육부와 대학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 국가는 우선 경제규모에 걸맞은 재정지원 책무를 다하고, 대학들이 알아서 자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대학은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공동체로서 발전하는 사이클이 정착될 때에야 지금과 같은 악순환은 멈출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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