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표 한양여자대학교 기획조정처장

정부 정책에서 전문대학의 소외는 늘 제기되는 문제다. 그동안 전문대학의 집단적 항의와 요구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인 정책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최근 들어 전문대학이 정부 정책에서 더욱 고립돼 있는 느낌이다. 정책 담당자들은 그 원인을 전문대학이 정책 개발에 필요한 자료나 정보를 제대로 전달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문대학은 전가된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다양한 협의체를 구성하고 정책 제안에 무진 애를 쓰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다. 이미 확정된 정부 정책이나 기본계획에 뒷북을 치거나 모양새를 갖춰줄 뿐이다.

학생 교육이 본업인 교수들이 국가가 지향해야 할 대학교육 중장기 비전 수립이나 발전 방안을 체계적이고 심도 있게 제안하기는 쉽지 않다. 교수들은 대학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현장과 괴리되지 않는 정책 개발을 지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국가적 수준의 교육발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정책과제를 생성하는 것은 거시적이고 폭넓은 안목과 연구 감각을 갖춘 전문가의 몫이다. 일반대학 위주의 고등교육정책 쏠림현상을 과연 일반대학 교수들이 정책담당자에게 필요한 정책 자료나 정보를 직접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전문대학의 정책 소외는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국책연구소에서 전문대학 연구가 사라지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최근 국책연구소에서 전문대학을 대상으로 한 연구사업 산출물을 거의 찾기 힘들다. 우리나라 직업교육훈련 정책 연구의 본산인 한국직업능력개발원조차 지난 정부의 선취업 후진학 정책 도입 이래 고교 직업교육 위주로 연구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수행된 수백 개의 연구과제 중 전문대학 연구는 단 한 건에 불과하다. 국가의 평생교육정책 개발과 실행을 전담하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역시 일반대학 위주의 평생교육단과대학 사업으로 전환하면서 전문대학은 아예 대학 평생교육연구 및 사업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한국교육체제 구축과 현안개발, 미래교육을 연구하는 한국교육개발원은 기관 간 역할분담이라는 명분 아래 전문대학 연구에 손을 뗀 지 오래다. 전문대학에 대한 연구가 국가적 차원에서 방기되고 있는 셈이다.

정책개발 및 실행에 있어서 국책연구소의 역할이나 기능은 매우 지대하다. 우리나라처럼 국책연구소의 규모나 역할이 비대한 국가도 찾기 힘들 것이다. 잦은 부서이동으로 전문성을 갖추기 어려운 현행 공무원 인사제도하에서는 국책연구소가 정책개발의 핵심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정책담당자들이 국책연구소에서 축적된 연구결과나 데이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대학 연구에 손을 놓고 있는 연구자들이 전문대학 정책을 제대로 내놓을 리 만무하다. 전문대학에 대한 축적된 정보나 자료를 갖고 있지 못한 연구자들은 정책담당자의 요구에 적극 대응할 수 없다. 그들에게 모르는 것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현재 전문대학 정책 연구는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산하 고등직업교육연구소에서 수행되고 있다. 빠듯한 예산과 단기 파견 교수들의 부족한 정책 연구역량으로는 영향력 있는 연구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전문대학의 전문대학에 의한 전문대학을 위한 고립된 연구 환경에서는 정책담당자를 설득할 수 있는 국가적 수준의 고등직업교육정책 설계가 이루어질 수 없다.

활발한 전문대학 정책 개발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정책의 생명줄인 국책연구소의 역할이 절실하다. 금번 정부 들어 잇달아 발표되는 전문대학 발전육성방안, 직업교육 마스터플랜, 평생교육진흥 기본계획에서 이렇다 할 전문대학 정책을 찾기 어려운 것은 전문대학 연구 부재에서 비롯된다. 전문대학의 발전 방안은 정규교육, 직업교육, 평생교육, 노동시장이라는 거시적이고 통합적 접근하에서 모색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책연구소인 한국교육개발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고등직업교육의 핵심축인 전문대학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정부나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는 국책연구소에서 전문대학 연구가 비중있게 다뤄지고 그 성과가 실행력 있는 정책 개발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루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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