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통제 중앙집권적 '힘'에서 '돈'으로 탈바꿈

교육의 질 여부와 상관없이 평생을 보장하던 서울대 졸업장 가치는 글로벌화 시대를 맞아 효력이 다해 간다. 영악한 일부 상류층 학부모들은 이를 눈치 채고 아이들을 조기유학 보낸다. 기업들은 이제 국내 최고 기업이라는 애칭보다는 세계 일류기업이란 호칭에 점점 익숙해져 간다. 굳이 고비용으로 재교육 시켜야만 하는 국내 대졸자를 채용하기보다 월급 더 주더라도 교육 잘 받은 외국대학 출신을 고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대학교육의 수요자인 학생과 기업의 선택 폭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대학이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지 않는 한 도태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경쟁력을 제고할 방법은 무엇인가. 우선 전국 1백93개 대학의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해 보자. 2002년도 대학입시에서 우려되는 변화 중 하나는 서울대를 비롯해 국내 유수 대학에서 학생들의 이공계 진학기피로 미달사태가 빚어졌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부랴부랴 '이공계 진학 활성화 대책'을 성안해 청와대에 보고하고 각 대학에 교차지원 허용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 줄 것을 권고했다. 말 그대로 '권고' 수준이었으나 이후 대부분의 대학들이 2003년 입시요강에 교차지원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발표함으로써 사실상 정부 권유에 화답했다. 또 다른 예도 있다. 몇 년 전부터 교육부가 대학에 교수계약제를 도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부는 관계법령도 바꾸었다. 교수사회의 효율성을 경쟁을 통해 높여 보겠다는 의도이다. 좋은 시도일수 있다. 그러나 대학사회는 이로 인해 혼란스럽다. 교육부가 그토록 싫어하는(?) 교수노조 세 확산은 이로 인해 더욱 탄력을 받는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정부에 의해 강제 권유되는 각종 평가제, 연봉제, 학부제 등의 제도들이 오히려 대학 경쟁력 강화는 커녕 대학을 병들게 하는 원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 된다. 이와 함께 아직도 중앙집권식 '힘'에서 '돈'으로 수단만 바뀐 정부의 통제가 대학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이 교권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북대 김의수 교수(철학)는 "도덕성을 결여한 교육 관료들이 실패한 정책에 대한 책임감이나 교육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도 없이 여전히 무소 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한다. 대학 통제 비난의 대표적 표적이 바로 대학입시제도이다. 현행 교육법은 교육부 장관이 대학입학전형 기본계획을 수립, 각 대학에 시달하고 각 대학은 이 계획의 범위 내에서 학생을 선발하도록 하고 있다. 그 결과 전국 대학이 비슷한 기준 속에서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통해 학생을 뽑는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21세기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수능 점수 비중이 축소되었다고는 하지만 중요 선발 요소로 작용해 대학들이 여전히 등급화, 서열화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수영 포항공대 교수(산업공학)는 "지난 40여 년 간 정부는 모든 방법을 사용해 왔으나 사교육비가 늘고 학력이 저하되는 부작용만을 초래했다. 더 이상 정부가 대학입시를 주도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말한다. 그는 "대학입시의 완전자율(본고사 포함)만이 우리나라의 교육을 정상화하는 길이며 오랫동안 본고사 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대학들은 그에 따르는 출제와 채점 등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본고사를 피하고 다른 방법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헌법 제31조 제4항은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과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이는 대학에 대한 공권력 등 외부세력의 간섭을 배제하고 대학 구성원 자신이 대학을 자주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진리탐구와 지도자적 인격의 도야라는 대학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경실련 사무총장을 지낸 이석현 동국대 겸임교수(법학)는 "선진국 어느 나라에서도 대학의 자율성,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이 우리처럼 정권적, 관료주의적 차원에서 훼손되고 있는 나라는 없다"고 지적한다. 원로 과학자 임관 삼성종합기술원 회장도 "국·공립이든 사립이든 우리 대학들은 학교경영이나 학사행정에 자율성이 부족하다"며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정부의 규제를 최소화하고 대학마다 나름대로의 특성을 살려 스스로 자리 매김해 나갈 수 있는 폭넓은 자율의 틀 마련이 시급하다"고 공감을 표시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정부주도의 관료주의적 땜질식 처방보다 대학교육체제의 전면적 개편을 주장하는 말에 잠시 귀 기울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이영 한국개발원 연구위원은 "대학도 시장논리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쟁개념을 대학에 도입하고, 모든 것을 대학에 맡겨야 한다"고 말한다. 대학이 자율을 누리되 정부에서 우려하는 사태가 생길 경우 책임을 묻는 방식이 합당하다는 것이다. 원로 교육학자 정범모 한림대 석좌 교수는“1960년대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자율권은 사라지고 관료권위주의 행태가 교육계를 뿌리깊게 지배했다”며 "교육부의 규모를 축소하고 입시의 완전자율화 등 교육계 전반에 자율적인 풍토 조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20세기의 대학자율은 무지막지한 군사권력으로부터의 자유였다. 군화발에 짓이겨진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대학자율이라는 이름으로 찾고자 노력했다. 대학자율은 대학 자신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대학은 국가가 생기기도 이전에 지역 주민들의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긴 '자치'조직 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21세기 대학 자율은 좀더 색다른 시각 접근이 가능하다.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그것은 시장 원리가 잘 작동할 수 있는, 교육소비자들의 상황에 맞게 대학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변화할 수 있도록 각종 제도를 손질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점 이다. ssanun@un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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